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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여가부, 위안부 피해자 영문 증언집 만들고도 2년 넘게 '쉬쉬'

입력 2021.02.24 07:10   수정 2021.02.2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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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일본어판은 이미 출판…'개인정보 수록·저작권 분쟁 우려' 이유로 미공개 국문본 집필한 서울대 교수, 영문판 출간 위해 사용 신청…여가부는 승인 안 해 "보신주의 때문" 비판 나와…"영문판 전 세계 주요 도서관에 비치해야"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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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집 '강제로 끌러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여성가족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영문 증언집을 만들고도 2년 넘게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학계의 출판 요청에도 사실상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나랏돈 4천500만원 들여 2019년 영문판 증언집 완성…여태 공개 안 해

24일 여가부와 학계에 따르면 여가부는 2019년 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의 증언을 담은 책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의 영문 번역본을 완성했다.

이 증언집은 여가부가 2001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서울대 측에 의뢰해 발간한 같은 제목의 국문 증언집 개정판(풀빛출판사, 2011)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영문판 제목은 국문판 원제와 같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 기억으로 다시쓰는 역사'(Forcibly Taken Korean Military 'Comfort Women' for History Rewritten Through Memories)다.

위안부 피해 신고자 70명 중에서도 기억이 비교적 명확하고, 내용을 대조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있는 9명의 증언만을 추려낸 저작이어서 일제와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피해를 증명하는 객관적 자료로서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문판 집필은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서울대 박사과정생 등이 꾸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이하 증언팀)이 맡았다.

증언팀은 초판에서 띄어쓰기 등만 바로 잡은 개정판을 2011년에 냈는데 이 개정판은 현재 전국 국공립 도서관뿐 아니라 시중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증언팀은 이 책의 저작권을 여가부로부터 넘겨받아 일본어판 증언집까지 출간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가부가 이 국문 증언집 개정판을 영문 책자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국문 증언집 출간 18년째를 맞은 2018년 12월이다. 당시 여가부 산하 일본군위안부문제 연구소와 4천500만원 상당의 계약을 맺고 진행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 영어 번역 및 감수' 용역 작업이 그 결과물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 연구소 측은 2019년 2월 영문번역 작업을 완수해 여가부에 영문 증언집 책자를 넘겼다.

그러나 이 영문 증언집은 완성된 지 2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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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지키는 소녀상

◇ 여가부, 영문 증언집 출판하겠다는 원저작자 요청에도 승인 안 해…"저작권 문제 복잡해 전문가에 자문 중"

이처럼 완성된 책자를 보유하고도 2년 넘도록 출판 등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가부는 위안부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와 저작권 침해·분쟁 우려 등을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국가가 업무상 작성해 공표한 저작물이나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보유한 저작물은 누구나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개인의 사생활 또는 사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경우' 등은 예외로 하고 있는데 여가부는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영문 증언집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국문 증언집의 경우 정대협과 서울대 측이 저작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책으로 출간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영문 증언집의 저작권은 여가부에 있기 때문에 현행법상 개인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여가부 관계자는 "당초 영문 증언집 발주를 할 때도 (외부에) 배포까지 하는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할머니들에 대한 민감한 개인 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현재 여가부의 이용승인을 받은 기관이나 개인만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같은 내용이 이미 국문 증언집으로 출판돼 공공기관과 민간에 배포됐다는 지적에도 "원저작물이 발간·배포됐다고 해서 2차 저작물에 똑같이 (원칙이) 승계돼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답변했다.

여가부는 증언집의 최초 집필자인 양 교수의 이용 신청마저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양 교수는 영문 증언집을 외국에서 출판하기 위해 인문·사회학 출판에 권위가 있는 영국 루트리지 출판사와 협의를 하고, 지난해 12월 여가부에 영문 증언집 이용 신청을 했다.


그러나 여가부는 현재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여가부의 다른 관계자는 "서울대 측에 이용 승인을 해주면 서울대 측이 특정 출판사와 독점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여가부가 가진 저작권에 대한 침해 우려가 있고, 출판 계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 배분에 대한 문제 등이 있어 현재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에게 저작권 관련 자문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가부가 언급한 '전문가 자문'이 언제쯤 완료될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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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도 '위안부 논문' 비판…영 김·미셸 스틸 "역겹다"

◇ "보신주의" 비판도…"영문판 전 세계 주요 도서관에 비치해야" 목소리

이 같은 여가부의 태도를 두고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위안부 망언' 논문이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상황에서 지나치게 방관자 같은 태도를 고수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학계 등에서 나온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지식인·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도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위안부 피해의 실상과 일본군의 만행을 제대로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책자를 묵혀 두고 있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증언집 집필 과정을 자세히 지켜봤다는 한 교수는 증언집 공개가 2년 넘도록 미뤄지는 배경과 관련해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여가부의) 보신주의가 아니겠느냐"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연구자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알릴 수 있도록 후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여가부가 이런 역할을 안 하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영문 증언집은) 세계인들에게 올바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알리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당연히 영문으로 공개를 하고 전 세계 주요 도서관에 기증해서 비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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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한인들도 '램지어 규탄' 청원운동…위안부 기림비서 규탄대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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