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문재인정부의 적폐 청산은 개혁인가 복수극인가

입력 2021/05/08 08:00
수정 2021/05/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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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66] 문재인정부는 출범과 함께 '적폐 청산'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고 건강한 국가로 환골탈태하겠다는 것이 명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적폐로 몰린 쪽에서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복수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똑같이 복수당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정권이든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복수의 칼날을 피하고 싶기 때문일 수 있겠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수는 이야기의 단골 소재입니다. 국립극단이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도 대표적인 복수극입니다.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두 명의 의인을 중심으로 권력 투쟁과 암투가 긴박하게 펼쳐집니다.


기원전 580년 전후로 실제 일어난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열국지에 나온 스토리는 픽션이 많이 가미됐습니다. 보통 인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간 내면에 숨겨진 열정과 세상사의 다면성 등 많은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사건을 촉발한 인물은 진(晋)나라 대신인 도안고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폭군이었던 진영공과 막역한 관계였습니다. 영공 재위 때는 큰 권력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조씨를 비롯한 진나라 유력 가문들이 영공을 시해하고 새 군주로 성공을 세우면서 도안고는 위기에 몰렸습니다. 숨 죽이고 조용하게 살던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은 성공이 세상을 떠나고 성공의 아들인 경공이 즉위한 직후였습니다. 경공이 권좌에 올랐을 당시 진나라의 실질적 권력은 조씨 가문이 잡고 있었습니다. 영공에서 성공으로 군주를 교체하는 거사를 주도한 일로 조씨의 영향력은 계속 커졌습니다. 그 결과 군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가문이 된 것입니다.

도안고는 경공의 이런 불만과 불안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공을 죽인 조씨 가문에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그는 경공에게 영공 시해사건의 부당함을 호소했습니다.


아무리 군주가 정치를 못한다고 해도 신하가 군주를 죽이는 것은 반역이라며 조씨 가문을 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씨의 권력이 두려웠던 경공은 도안고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조씨를 멸족하는 것은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경공은 도안고에게 조씨 가문을 제거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기회를 잡은 도안고는 당시 조씨 당수였던 조삭을 비롯해 수백 명의 조씨 일가를 도륙합니다. 단 한 명의 조씨도 남겨두지 말라고 수하들에게 명령합니다. 도안고의 광적인 토벌로 진나라의 명문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하늘이 조씨를 도와주는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조삭의 아내는 성공의 누이인 장희였습니다. 현 군주인 경공의 고모였던 것이지요. 도안고가 조씨 일족을 마구 죽일 때 장희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도안고는 조씨의 피를 가진 모든 남자를 처단해야 후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희가 남자아이를 낳으면 어떻게든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때 장희와 아이를 돕는 의인들이 등장합니다. 정영과 공손저구라는 인물입니다. 그들은 조씨 가문의 은혜를 입은 문객들이었습니다. 조삭과 가까웠던 한궐의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은 조씨의 혈족을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조씨를 죽이는 데 혈안이 돼 있는 도안고를 속이려고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꾸밉니다.


정영은 장희가 낳은 조씨의 마지막 혈족을 몰래 숨기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자기 아들을 공손저구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도안고를 찾아 공손저구가 장희가 낳은 조씨의 남자 아기를 몰래 기르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도안고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는 공손저구를 저주하며 확실하게 의절했다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도안고는 처음에는 정영을 의심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는 병사들을 공손저구가 있는 곳으로 보냅니다. 공손저구도 정영의 아들이 조씨 혈족이라는 것을 믿게 하려고 진짜같이 연기를 합니다. 그는 아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숨기고 도안고를 향해 욕을 합니다. 결국 그는 장렬하게 죽고 정영의 아이도 희생됩니다. 은혜를 베푼 조씨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해 자기 아들의 목숨을 내놓는 정영의 결단과 행동은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정영은 조씨의 마지막 혈족을 자신의 아들처럼 키웁니다. 도안고는 조씨 가문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정영의 공이 크다고 여겨 그를 우대하고 그의 아들을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아이를 양아들로 삼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됐던 것이죠. 이야기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청년이 됐습니다. 군주도 진도공으로 바뀌었습니다.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된 청년은 진나라 유력자인 위강과 한궐의 지원을 받아 복수에 나섭니다. 권력을 농단했던 도안고에게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조씨의 한 점 혈육을 중심으로 뭉칩니다. 진나라 민심도 억울하게 멸족된 조씨에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청년은 도안고를 죽이고 원한을 갚습니다. 조씨 가문을 재건한 그의 이름은 조무입니다. 훗날 진나라는 조와 위, 한나라로 분열되는데 그는 조나라의 시조로 추앙받습니다. 문재인정부의 적폐 청산은 개혁으로 평가 받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복수의 씨가 될까요.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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