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하겠다"는 문 대통령 초심 잃었나 [핫이슈]

입력 2021/07/22 09:13
수정 2021/07/22 11:51
대법원이 21일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연루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17년5월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 지사가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당선을 위해 사조직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선의 적법성과 정통성에 심각한 흠결이 생겼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2017년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을 '최대 수혜자'로 지목하며 즉각적인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김 지사는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수행비서를 지낸 최측근으로 '친문 적자'로 불린다.


또 댓글조작을 공모한 '드루킹'(김동원씨)을 김 지사에게 처음 소개한 사람은 송인배 전 청와대 제1부속관이었고, 드루킹측의 인사 면접을 본 사람도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민주당 경선 당시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는 드루킹이 주도한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를 찾아 격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드루킹과 친분있는 인사들이 모두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당시 문 대통령이 이 사건을 몰랐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선 당시 경쟁주자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야권에서 일제히 "현 정권의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김 지사의 상선(上線) 공범도 밝혀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정권으로선 이제라도 응분의 책임을 느끼고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번 판결에 대해 "별도의 입장이 없다"며 얼버무리는 분위기다.

김 지사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며 법정구속한 1심 재판장을 한직으로 쫓아내고 그를 '사법적폐'로 몰아 기소까지 했던 정권으로선 이같은 눙치기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이 정권이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지 않고 버틴 경우가 어디 이 뿐이던가.

문 대통령은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승조원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우리 군이 신속하게 군소송기를 보내 전원 귀국 조치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군을 질책했다.

사상 초유의 방역 대참사가 발생했는데도, 군 통수권자이자 방역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는 총리에게 미룬 채 군 당국만 나무란 것이다.

국가안보의 초석인 우리 군 장병들이 높은 자긍심을 갖고 강인한 군인정신을 발휘하려면 정부가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줘야 한다.

군 장병을 포함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자 의무다. 그것은 곧 국가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책임이기도 하다.

정부와 군 당국의 방역무지와 무관심, 무능 때문에 꽃다운 나이의 청해부대 장병 270명이 감염돼 생명의 위협을 겪고 있는데도 대통령이 한마디 사과도 없이 침묵하는 것은 책임 회피로 볼 수 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월성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 등에서 부처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줄줄이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는데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백신 대란과 부동산 실정, 고용참사, 인사 실패 때도 계속 외면하다가 비난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인 것이 고작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하겠다"며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초심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문 대통령이 지금 보여주는 행태는 국민들이 바라는 지도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초월적인 존재나 신의 능력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책임을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국민의 상처와 고통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달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진보진영이 박근혜 정권에 요구한 것처럼, 국민이 절망과 어려움에 빠질 때 국가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보여달라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진실된 노력을 쏟고, 잘못과 실수에 대해선 솔직히 용서를 구할 때 국민은 신뢰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실수와 잘못은 '남 탓'으로 돌리고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지도자에 대해선 불신과 체념만 커질 수 밖에 없다.

중국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지은 치세술의 명저 '정관정요'에는 군주가 갖춰야할 도리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중 첫번째가 "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이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군주가 남을 탓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윗사람이 훌륭히 다스리려고 노력하는데 아랫사람들이 혼란스런 경우는 없으며, 늘상 군주 자신을 상하게 하는 요소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욕심에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좀 더 겸허한 자세로 여론을 경청하고 국민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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