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두 서울법대, '품바' 윤석열과 '세인트' 최재형 [노원명 칼럼]

노원명 기자
입력 2021/08/01 09:19
수정 2021/08/01 09:22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프로필을 살피다보니 한가지 사실에 눈길이 간다. 12명중 무려 5명이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박진 윤석열 원희룡 장기표 최재형씨가 그들이다. 더불어민주당 6명 주자중에서는 이낙연씨가 법대 동문이다.

과거에도 서울법대 출신 대선주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으나 이번에는 유독 많은 것같다. 두말 할 필요 없이 서울법대는 한국 엘리티즘의 본산과도 같은 학부다.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기존 신분질서가 완벽히 해체된 한국 사회에선 꽤 오랫동안 학력이 신분을 대체했다. 서울법대는 로스쿨 도입으로 학부가 해체되기 전까지 '학력 질서'의 최정점에 있었다.

서울법대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성을 감안할때 지금까지 대통령을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느 나라나 정치 엘리트는 최고엘리트 대학에서 충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 총리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분점하다시피하고 우리와 대학서열 구조가 비슷한 일본은 역대 내각 총리대신중 도쿄대 법학부 출신만 12~13명에 이른다. 요시다 시게루, 사토 에이사쿠, 기시 노부스케,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그 면면도 무척 걸출하다.

한국은 지금까지 12명, 대(代)수로는 19대째 대통령을 배출했는데 서울법대는 한명도 없고 서울대 전체를 통털어 김영삼 전 대통령 한명뿐이다. 물론 대통령제 역사가 짧은만큼 통계적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77대, 스가 요시히데 일본총리는 99대째다). 그러나 서울법대 출신 대통령이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것은 짧은 민주주의 역사보다는 지도자 선출 방식에 기인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영국, 일본 같은 내각제 국가에서는 집권당 경선을 통해 총리를 뽑는다. 인력풀이 의원들인데 이들 대부분은 소수 대학 출신이다. 영국에서 옥스브리지, 일본에서 도쿄대 출신이 총리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피한 일이다. 한국이 내각제를 했다면 진즉 서울법대 출신 총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조 바이든까지 역대 대통령 45명(대수로는 46대)중 학부 기준으로 하버드가 5명, 예일이 3명, 프린스턴과 웨스트포인트가 각각 2명씩을 배출했다.


유력 대학에서 많이 나오긴 했지만 압도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은 독학을 했고 20세기에도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인 대통령(해리 트루먼)이 나왔다. 이는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제에서 '고학력'은 큰 장점이 못됨을 시사한다. 대중은 위대한 대통령, 거의 완벽하고 신에 가까운 능력의 지도자를 꿈꾸는 한편 동시에 매우 서민적이고 친구같은 대통령을 원한다.

역대 한국 대통령은 거의 지방출신이며 그 중에서 부농 출신은 드물었다.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한 이승만은 글로벌 기준의 엘리트이긴 했으나 몰락한 양반 후예로 고학을 오래 했다. 서울 명망가에서 태어나 영국 유학을 한 윤보선은 국민이 아니라 내각제 의회가 선출한 대통령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비교적 유복했다는 김영삼 역시 아버지가 멸치어장주로 기득권과는 무관했다. 특히 김대중과 노무현은 상고 졸업장이 최종 학력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은 능력은 뛰어나면서 출신이나 학벌이 대중에게 위화감을 주지는 않아야 한다. 더 가난할수록, 인생역정이 험난할수록 유리하다. 그런 점에서 여당 대선주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인생이 고달팠다는 것이다. 대선주자에게 달린 서울법대 꼬리표는 지금까지는 확장성에 마이너스로 작용해왔다. 두번 대선에 출마해 두번다 상고 출신에게 패한 이회창은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나왔다. 출신학교 때문에 졌다고 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그의 초엘리트적 이미지가 그의 확장성을 방해했던 것은 사실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은 같은 서울법대 출신이면서 풍기는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윤석열은 입당 며칠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치맥 회동을 했는데 약 100분간 500cc 생맥주 6잔을 마셨다는 보도가 있었다(그 느낌이 궁금해 술깨나 밝히는 지인 2명과 2시간 동안 생맥주를 마셔보았다. 윤석열보다 10살 안팎 젊은 남자들이 작심을 하고 들이켰지만 다섯잔이 한계였다. 취재기자들에 따르면 그날 3잔 마신 이준석은 얼굴이 벌개진 반면 윤석열은 티도 안났다고 한다). 부산에 내려가서는 돼지국밥에 대선소주 반주를 걸쳤다. 그는 뭔가 먹을때, 특히 술을 앞에 놓고 있을때 표정이 자연스럽다. 무척 신나 보인다. 코로나 상황에선 '먹방'에 강한 후보가 절대 유리하다. 먹을때만 마스크를 벗을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과 화면으로 느낌을 대중에게 전달할수 있다.

어쨌든 윤석열은 서울법대의 전형적 엘리트 이미지는 아니다. 그는 건들건들거리고 실없는 소리도 곧잘 하고 여당 의원 주장에 따르면 스님 영결식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 캐릭터다. 벙거지에 모시적삼을 입히고, 엿장수 가위를 쥐어주면 꽤나 잘 어울릴것 같다. 결례가 되는 표현이겠지만 '품바 윤석열' 이다. 그의 청춘에는 흑역사였을 '사시 9수' 경력도 서울법대 이미지를 희석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최재형은 윤석열에 비하면 '서울법대'에 더 가깝지만 그도 전형적이지는 않다. 그는 엘리트를 뛰어넘어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거룩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과 집안은 봉사와 희생, 애국, 미담으로 넘쳐난다. 서울 법대를 나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나. 그가 말하면 왠지 잘 들어줘야만 할것같은 부담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다. 약간 과장을 보태면 '세인트(saint) 최재형'이다.

최재형은 후발주자로 아직 대중적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한 단계다. 그런데 마스크 쓴 얼굴만 보도되니 큰 핸디캡이 아닐수 없다. 얼굴이 아니라 메시지로 다가가야 하는데 아직 귀에 박히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최재형이 윤석열과 무리 싸움을 해서는 별로 승산이 없을 것이다. 애국심과 거룩함을 본인 상표로 밀고 나가야 한다. 용기있는 메시지로 광야의 예언자처럼 보수 정신을 위로하고 일깨워야 한다.

일반적 엘리티즘을 벗어난 두 서울법대 동문이 각자 매력과 강점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 바란다. 한국 국민들이 엘리트 지도자에 매력을 못느꼈던 것은 그가 나온 학교와 직업이 그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본인만의 매력과 세계관이 있다면 학교를 어디 나왔는지가 뭔 상관이겠나.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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