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파워엘리트] 이준석①…박근혜·유승민 ‘인연' 가진 엄친아 당대표

박제완 기자
입력 2021/09/20 10:02
수정 2021/09/23 10:32
[레이더P] 재학 중 국회인턴,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주목 받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985년 서울 성동구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지역구가 된 상계동으로, 이어 목동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 대표는 상계동과 목동을 "딱 중산층의 위치를 대변하는 지역"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대통령 장학금 국비유학생으로 수학했다. 2011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영입되며 정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지난 6월에는 정치권의 당초 예상을 꺾고 2위 나경원 후보와의 상당한 표차를 기록하며 국민의힘 당대표에 선출됐다.


하버드 '엄친아'

이 대표는 정치권에서는 드문 이과 경력, 해외 대학 졸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온곡초등학교를 다녔고 이후 목동으로 옮겨와 월촌중학교를 졸업했다.


이 대표는 상계동을 두고 "내가 살던 때에는 구 전체에 패스트푸드점이 노원역 앞에 있는 롯데리아 하나였을 정도"라고 그렸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이 대표는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다.

이후 카이스트에 진학했지만 중퇴한 후 하버드대에 입학했는데, 이때 전공한 과목이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이다. 이 대표가 국내 대학이 아닌 하버드에 다닌 것은 이 대표의 정치 경력 내내 '사교육의 수혜자'라는 꼬리표가 되어 따라붙었다. 이에 이 대표는 "서울과고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고 당시 서울 종로구의 대부분 학생들은 수능 시험을 보지 않았다"면서 '사교육 없는 학교'를 다녔고 '16년 학창 시절의 떳떳한 자부심'이라고 표현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 선출 이후 주요 공식적인 자리 뿐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직접 영어나 중국어로 소통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 대표의 외국어 실력은 어린 시절의 해외경험과 더불어 미국 대학에서 직접 수학한 경력으로 대변된다. 이 대표는 증권사에서 국제영업부장을 지낸 아버지 이의 해외 발령으로 싱가폴과 인도네시아에서 1년씩 유학생활을 보냈다.


봉사활동·토익·배나사…창업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전 이 대표의 삶은 여느 국내 20대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때는 봉사활동을, 2학년때는 토익시험, 3~4학년 때는 인턴십을 통한 경력 쌓기에 공을 들였다. 그는 대학교 2학년 ‹š는 국내 증권회사의 금융공학 팀에서 인턴십을 경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특히 군복무를 산업기능요원으로 지내면서 22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이 대표가 처음으로 직접 운영했던 단체는 2007년 시작한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초기 이름은 '흑기사여름영어학교'로 주로 하버드대 재학생들이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귀국, 중구 신당동에서 무료 영어 강좌를 개설한 것이 모태가 됐다. 이 대표는 당시 이 단체의 활등을 두고 자신의 저서에서 "개개인의 지위보다 역할에 비중을 두는 단체"라고 표현했다. "우열반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나름의 교육철학을 접목시기키도 했다.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로 시작한 이 대표의 아이디어는 '클라세스튜디오'로 창업으로 이어진다. 이 대표는 대학 졸업 이후 귀국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기업인 클라세스튜디오를 창업했다. 이 대표가 만든 교육 자료 분류 시스템에서 시작된 서비스로, 문제 은행 형태로 어학과 자격증 시험 문제집을 온라인으로 서비스했다. 또 사용자가 직접 푼 문제를 기반으로 맞춤형 문제 데이터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했다.


박근혜와 인연

이 대표에 따라붙는 꼬리표는 '박근혜 키즈'라는 별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당시 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찾았다. 이 대표는 "두툼한 서류 대신 직접 학생들이 공부하는 현장을 보여드렸다"면서 "언제 어느 때라도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부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때의 인연을 계기로 2011년 이 대표를 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했다. 비대위원으로 영입된 뒤에도 이 대표는 이 활동 경력을 이력 삼아 교육, 복지 정책 등 분과 회의에 참석했다.


유승민 의원실 인턴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첫 발을 딛게 된 계기를 2011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영입된 것을 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대표가 처음으로 정치를 경험한 것은 하버드대 1학년 재학 중 여름방학이었던 2004년 유승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다.

이 대표가 인턴으로 일하게 된 계기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6월 전당대회 당시 경쟁상대였던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전 최고위원의 아버지와 유 전 의원이 친구인 친구인 특별한 친분이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증권사 지점장과 국제영업부장을 거쳤는데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시절 유 전 의원과 동창이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2017년 대선 당시 유승민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경북고 동기로 방송에 출연한 바 있다.


한나라당 비대위원

이 대표가 정치인의 길을 걷게된 계기는 2011년 12월 26일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서다. 같은해 12월 23일 박 전 대통령은 이 대표에 직접 연락해 비대위원직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게 "참여하는 과정에서 할 말은 하겠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은 "당연히 그러셔야죠"라며 흔쾌히 승낙했다고 전했다.

당시 이 대표의 나이는 26세로 '박근혜 키즈'라는 별명도 이때부터 따라붙기 시작했다.


이 대표의 '용도'는 새누리당이 역점을 두고 있었던 젊은 정당으로의 탈바꿈이었다. 한나라당이 2012년 2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이 대표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냈다.

당시 이 대표와 함께 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냈던 인물들은 이 대표와 함께 '외부3인방'으로 불렸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안철수의 멘토'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를 포함해 김세연 전 의원, 주광덕 전 의원, 이양희 전 당무감사위원장(당시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를 포함해 11명 가량이다.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황우여 전 의원이었다. 이 대표는 비대위원으로 인선이 확정된 직후부터 학자금 대출 문제와 더불어 공대생 출신 이력을 살려 디도스(DDoS)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건의했고 검증위원장도 맡게 됐다. 2014년에는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을 지냈다.


'0선' 이준석 노원병 3전3패

이 대표는 2012년 총선 당시 안정적 당선권인 비례대표 8~9번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고사했다. 이후 서울 노원구병 당협위원장을 지내다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노원병 지역구는 진보계열 정당들의 지지세가 확고했던 지역이다. 19대 총선에서는 고(故)노회찬 통합진보당 의원이 승리했고, 2013년 치러진 4.24 재보선에서도 무소속이던 안철수 당시 후보가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면서 당선됐다. 총선 뿐 아니라 지방선거에서도 진보계열 정당들이 자리를 차지해왔다.

이 대표의 20대 공천은 우선공천 중 하나인 청년우선지역으로 노원병이 선정되면서 이뤄졌다. 경쟁 상대는 노회찬 전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였으나 노 전 의원이 창원으로 지역구를 옮기면서 이·안 2파전이 치러졌다. 결과는 안철수 52.33%, 이준석 31.32%로 이 대표가 패배했다.

이 대표는 2018년 재보선에서도 같은 지역에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민주당 김성환 의원에게 패배했다.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 또 한번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김성환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당시 득표율 차이는 10%p 안쪽이었다.


박근혜 탄핵 주장

'박근혜 키즈'로 불리던 이 대표지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련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자 박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에는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 대표는 당시 원외 당협위원장이던 김상민·김진수·이기재·최홍재 위원장과 함께 이 대표의 사퇴,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요구하며 당대표실 앞 복도에서 단식농성에 나서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언론 인터뷰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견을 개진했다.

사실 이 대표가 박 전 대통령에 공개적으로 비판을 제기한 것은 당시 정치권에서는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 대표는 비대위원을 맡아온 이후 줄곧 "정수장학회 문제는 털고 가야 한다"는 등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에는 박 전 대통령의 사법적 탄핵과 탄핵 전 자진 하야하게 될지에 대한 행보 문제가 이슈였다. 이 대표는 2016년 11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하야와 탄핵 중 오히려 탄핵이 헌법 절차에 맞게 질서 있는 후퇴의 모양새"라고 주장했고 TV조선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두고 "국기 문란의 가장 적확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바른정당 합류

2016년 12월 김무성·유승민·정병국·주호영·남경필·하태경 등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중 35명이 탈당해 개혁보수신당을 조직했다. 당은 2017년 1월 바른정당으로 당명을 개정하고 공식 출정했다. 이 대표는 2017년 6월 26일부터 이혜훈 전 의원을 대표로 활동을 시작한 2대 지도부에 청년최고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최고위원은 2022년 대선에 출마한 하태경 의원, 김영우 전 의원 등이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를 맡으면서 추진했던 여러 '정치적 시도'들을 바른정당 시절 최초로 시도했다. 이 대표가 청년최고위원을 맡은 시절 바른정당은 청년 대변인 선발을 위해 최저임금, 원전폐쇄 등의 현안을 주재로 스탠딩 토론회를 구성했다. 보수 야권에서는 유일한 청년 정치인 양성 프로그램으로 불렸던 '청년정치학교', '목민관 프로젝트'도 바른정당에서 최초로 시도했던 기획들이다.

바른정당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둔 5월부터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행렬이 이어졌다. 3차례에 걸친 탈당·복당으로 바른정당에는 최종적으로 9명의 의원만 남게 됐다. 당시 이 대표는 복당 인사들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내놨다.

그는 바른정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던 2017년 5월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14인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와의 회동을 두고 "배신자들은 그들에게 과분한 칭호", "적절한 칭호는 저렴한 표현이지만 '쫄보'라고 본다"며 날을 세웠다.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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