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너나없이 주더니" 재난지원금 5조 뿌린 지자체…재정자립도 50% 무너졌다

입력 2021/09/22 17:11
수정 2021/09/23 08:04
자립도 24% 포천, 금액은 1위
◆ 지방재정 빨간불 ◆

코로나19가 발생한 작년 초부터 올해 6월까지 위기 극복을 명목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민들에게 지급한 보편적 재난지원금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지급이 개시된 정부의 코로나19 상생 국민지원금 소요 예산 11조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특히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한 지자체들도 너도나도 보편 지원에 뛰어들면서 사상 처음으로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 50%가 붕괴되는 등 지방 재정에 경고등이 켜졌다.

22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2020~2021년 광역·기초 지자체 재난지원금 지급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지자체들이 지급한 자체 보편지원금은 총 5조4486억원에 달한다.


행안부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줄곧 50%대를 유지하던 전국 재정자립도는 올해 48.66%로 주저앉았다. 문제는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지자체들도 보편재난 지원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시민 1인당 80만원을 지급해 가장 큰 규모의 보편지원금을 지출한 경기 포천시의 경우 올해 재정자립도는 24.19%에 불과했다.

재정자립 최하위 화천군도 지원금…선거 앞두고 지자체 현금살포

너도나도 보편지원금 지급에 시·군 재정 거덜날판

포천시 1인당 지원금 80만원에
다음달 또 10만원 퍼주기 예고
재정 비교적 탄탄한 하남시는
소상공인 선별지원 대조적
경기도내 55만원이상 지원금差

"자치단체 도덕적 해이 심각
미래세대 부담으로 돌아올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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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는 지난해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3개월 만인 작년 4월 591억원을 들여 주민 1인당 40만원을 재난기본소득 명목으로 지급했다. 포천시가 지급한 액수는 작년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지방자치단체를 통들어 가장 컸다.

올해도 포천시는 1인당 20만원의 보편지원금을 지급했다. 경기도가 광역 차원에서 지난해와 올해 2회에 걸쳐 1인당 10만원씩 지급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까지 더하면 포천시민은 2년간 총 80만원의 자체 지원금을 받은 셈이다.


포천시가 지난해와 올해 자체적인 보편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쓴 예산만 914억원에 달한다.

반면 서울, 인천, 충남, 대전, 세종, 광주 등 6개 시도의 주민들은 광역과 기초를 통틀어 지자체가 지급하는 보편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들 6개 광역지자체와 광역 내 위치한 기초지자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휴·폐업한 소상공인이나 일정 중위소득 이하에 해당하는 가계 사정이 어려운 주민에게만 '선별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로나19 국내 발생 이후 지급된 지자체들의 자체 보편지원금이 광역시도뿐 아니라 기초지자체 단위에서도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같은 타 지자체보다 떨어지는 경우에도 보편지원금을 남발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파악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인 보편지원에 또 나서고 있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재정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매일경제가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보편지원금 지급에서 가장 큰 격차는 경기도에서 나타났다. 같은 도내에 살아도 주민이 받은 지자체 보편지원금은 최대 55만원까지 차이를 보였다.

포천시민의 경우 2년간 자체 보편지원금과 경기도 재난기본소득까지 합쳐 총 80만원을 받은 반면, 하남시민의 경우 지난해 1인당 5만원과 2년간 경기도 보편지원금에 해당하는 20만원 등 총 25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이 같은 격차를 보인 이유는 하남시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취약계층에 '선별 지원'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내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에게 1인당 5만원의 선별지원을 한 하남시는 올해엔 36억원을 들여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로 피해를 본 집합금지·집합제한 업종 소상공인에게 각각 100만원과 50만원을 지급했다.

지자체 간 격차가 두 번째로 큰 시도는 강원도였다. 강원 홍천군·화천군은 지난해 보편지원금으로 각각 1인당 30만원을 지급해 도내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강원 원주시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통틀어 지급한 보편지원금은 8만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지자체들이 지급한 보편지원금이 재정 상황과 상관없이 집행됐다는 점이다. 가령 경기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원금을 지급한 포천시의 경우 올해 재정자립도 24.19%로 30%를 밑돈 반면, 취약계층 선별지원에 집중한 하남시는 올해 재정자립도가 47.3%로 도내 시·군 가운데 4위로 준수한 편이었다. 윤 의원은 "전국 지자체들이 무차별적 지원금 지급에 나서면서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피해가 많은 곳,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계층에 충분한 지원을 집중하는 원칙 재정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지자체들이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뿐 아니라 자체 보편지원금 지급에도 열을 올리면서 지방재정에는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지난해 50.39%였던 전국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올해 48.66%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50%대가 무너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체 보편지원금 지급에 나서는 지자체는 계속 나오고 있다. 이달부터 경북 경주시는 모든 시민에게 1인당 1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포천시 역시 10월 중 시민 1인당 10만원, 총 149억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추가로 지급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기초단체까지 보편지원에 나서는 것은 '매표 행위'라며 지원에 앞서 재정력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보지 않은 급여 생활자까지 보편지원을 하는 것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매표 행위"고 꼬집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도 "내년 선거를 겨냥해 보편지원에 나설 유인이 많이 있다"면서도 "자치단체들의 재정이 악화된 것을 보면, 보편지원을 남발한 지자체의 행위는 일종의 '눈속임'이자 도덕적 해이"라고 말했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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