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니 탓이야" 드라마보다 더한 대장동 패밀리 회피본능 [핫이슈]

입력 2021/10/14 09:16
수정 2021/10/14 10:51
1단계 도피, 이왕이면 해외
2단계 무조건 부인하다가
말바꾸며 책임 떠넘기기

성남시 압수수색도 안한 檢
수사 의지마저 의심케 해
김만배 구속이 첫 걸음돼야
법조계에선 '일도(一逃) 이부(二否) 삼백(三background)'이라는 은어가 있다. 범죄를 저지르다가 일단 걸리면 도망치고, 잡히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부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백'을 쓰라는 얘기다. 잡범이나 권력형 범죄자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 같다. 대장동 사업을 진행하며 수천억원의 '배당금 잔치'를 벌였던 동업자들도 하나같이 이런 원칙을 잘 따르고 있다. 하지만 국민적 분노가 커지면서 '백'을 동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각자도생 중이다. 검찰에 녹취록·자술서를 제출하고 언론 인터뷰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특혜 비리 구조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인 남욱 변호사는 의혹이 불거지자 미국으로 도망갔다.


검찰과 경찰이 출국 금지를 하지 않아 남 변호사의 배우자가 회사서 휴직하고 지내던 샌디에이고로 피한 것이다. 소환 여론이 들끓어 외교부에서 여권 반납 명령을 내리고 여권 발급 제한 조치를 밟기 시작하자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주요 혐의를 부인했다. 2015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후에는 토지 수용에 협조하는 것 외에는 사업과 관련한 역할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그는 김만씨 씨가 거짓말을 진짜 많이 한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넘겼다. "곧 귀국해서 조사받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수사의 칼날이 무뎌진 뒤 돌아오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750억원의 뇌물 혐의 등으로 오늘 구속영장실질 심사를 받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는 한술 떠 뜬다. 이번 대장동 개발 사업 기획부터 실행, 이익배분 등을 주도했고 법조계와 성남시의회 로비 의혹도 받고 있다.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다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억지 논리로 만들고 있다. 언론사 법조팀장으로 서초동에서 숱한 범죄자를 지켜본 경험인지 주눅도 들지 않고 당당하다.

그는 영장심사를 앞두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배임·횡령·뇌물공여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검찰이 자금흐름 추적을 통한 입증도 하지 않은 채 주주끼리 이익 배분을 놓고 다투며 허위·과장 발언을 한 걸 녹음한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만을 근거로 영장을 청구했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에 녹취록을 제출한 정 회계사에 대해 "정영학은 동업자 저승사자"라며 "옛날부터 관여한 사업마다 동업자를 감방에 보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무조건 부인하다가 안되면 말바꾸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 분'논란이다.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씨는 1208억원의 수익을 배당받은 천화동인 1호에 대해 "절반이 '그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윗선'을 떠올리게 되면서 실소유주 논란까지 불거진 상태다.

이에 대해 김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완전히 부인했다. 그러다 "구 사업자 간 갈등이 번지지 못하도록 그리 말한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이후 다시 "장시간 조사로 정신이 없어 잘못 말한 것"이라고 뒤집었다. 남욱 변호사도 '그분'은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아니라고 말해 '그 분'의 실체에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유동규 전 본부장의 측근인 정민용 변호사는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에서 "유 전 본부장이 천화동인 1호는 자기 것이고, 김씨에게 차명으로 맡겨 놨다고 여러 차례 내게 말했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김씨는 권순일 전 대법관과의 재판거래 의혹은 얼토당토않은 얘기라고 부인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 최종심을 전후해 판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권순일 대법관을 김씨가 수차례 방문한 기록이 확인됐지만 "대법원 구내 이발소에 가려고 했다"며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다음 단계는 계속해서 들통이 나면 알고 있는 온갖 배경을 동원하고 '백'을 써서 법꾸라지처럼 법망을 피하는 것이다. 김씨는 왠만한 로펌을 방불케 하는 법조계 거물급의 호화법률 자문단을 갖고 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을 비롯해 박영수 전 특검, 김수남 전 검찰총장,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검찰내 특수통으로 통했던 김기동·이동열 전 검사장,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를 맡았던 이경재 변호사 등이 화천대유의 고문·자문을 맡거나 김씨의 변호인단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좋아하던 형님들이라 모신 것이지 대가성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거물급 자문단이나 녹취에 나오는 '그 분'이 움직일 시점이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대장동 사건의 특징은 김만배, 유동규, 정영학, 남욱 등 의혹 핵심 인물이 로비자금 분담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는 점이다. 대질 심문과 자금 추적 등으로 정관계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로비를 벌였고, 얼마나 돈을 뿌렸는지를 밝힐 수 있다. 검찰 수사의 실마리는 정영학 회계사가 녹취록을 제줄하며서 제공한 셈이다. 이 녹취록은 '유동규 700억원 배당' '50억 클럽' '정관계 로비 350억원' '전 성남시의회의장 30억, 성남시의원 20억' 등등 폭발력있는 단서들이 담겨 있다.

문제는 검찰과 경찰이 성남시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어 수사 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이런 식의 수사면 사건의 실체를 유동규, 김만배, 남욱 등의 개인적인 일탈로 규정한 뒤 꼬리 자르기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김만배씨의 영장실질심사 이후 구속 여부가 결정된 뒤 검찰이 이를 대장동 실체를 밝히는 첫 걸음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결국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윤상환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