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파리떼' '자리사냥꾼'에게 토사구팽과 공성신퇴가 주는 교훈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

입력 2022/01/19 06:01
수정 2022/03/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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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청와대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95]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10월 최측근인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갑자기 내쳤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뒤 김형욱은 악역을 도맡았습니다. 무엇보다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던 3선 개헌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민주화운동 인사를 잔혹하게 탄압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회유·협박하며 정권 유지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1963년부터 6년 넘게 중앙정보부장 자리에 있으면서 악명을 떨쳤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그를 한칼에 쳐냈습니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안에서도 그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명분 없는 3선 개헌으로 민중의 저항이 커지고 정치적 입지까지 좁아지자 박 전 대통령은 희생양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김형욱을 버린 겁니다.


이는 전형적인 '토사구팽'에 해당됩니다.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토사구팽'을 처음 말한 사람은 월왕 구천의 참모이자 당대 최고 전략가 범려입니다.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패권을 차지한 뒤 결정적인 공을 세운 문종과 범려를 중용합니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와신상담'의 복수극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구천이 오나라에 억류돼 있던 시기에 문종은 월나라에서 차분하게 국력을 키웠습니다. 백성이 흩어지지 않도록 돌보았고 병력을 꾸준히 늘렸습니다. 왕이 없었는데도 월나라가 지탱될 수 있었던 것은 문종의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에 있었습니다. 범려는 더 어려운 일을 맡았습니다. 구천이 오나라에 감금됐을 때 함께 고난을 겪었습니다. 귀국 후에는 숨은 인재들을 발굴했고 강력한 군대를 만드는 데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구천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조언했던 사람도 범려였습니다.

변방의 신흥국 월나라를 패권국으로 우뚝 세운 문종과 범려 앞에는 부귀와 영화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최고 절정에서 두 사람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범려는 국정이 안정되자 즉시 용퇴 의사를 밝힙니다.


이에 구천이 나라를 나눠 주겠다며 극구 말렸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신하는 왕이 치욕을 당하면 죽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왕께서 오나라에서 치욕을 당할 때 제가 죽지 않은 것은 원수를 갚아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일을 모두 성취하였으니 왕께서 치욕을 당할 때 죽지 못했던 죄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관직을 놓고 제가 떠나려는 이유입니다." 구천 앞에선 이렇게 말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제나라로 떠난 뒤 월나라에 남아 있는 문종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토사구팽의 출처가 바로 이 편지입니다. "날아오르는 새가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두어지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는 법이오. 월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쪽하니 어려움을 함께할 수는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나눌 수 없는 관상이오. 그대는 왜 월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이오?" 문종은 범려의 간곡한 당부에도 "설마 월왕이 공이 많은 내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물러날 시기를 놓쳤습니다.

범려의 예언은 적중했습니다. 구천은 많은 백성이 좋아하는 문종의 인기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월나라를 위협했던 외부의 적이 사라지고 국정이 안정되자 문종과 같은 인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구천은 말도 안 되는 억지 이유를 들며 문종을 제거했습니다. "그대는 오나라를 칠 수 있는 계책을 일곱 가지나 가르쳐주었소. 나는 그중 세 가지만 사용해 오나라를 물리쳤소. 나머지 네 가지는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죽은 선왕을 따라가 나를 위하며 그것을 시험해보기 바라오." 범려가 우려했던 대로 문종은 이렇게 '토사구팽'되고 말았습니다.

노자 '도덕경'에는 '공성신퇴(功成身退)'라는 격언이 나옵니다. "재물이 집안에 가득하면 지킬 수 없고 부귀하면 교만해져 허물을 남길 수 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끝까지 쥐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공을 이뤘으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큰 공을 이룬 사람일수록 공수신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문종은 망해 가는 월나라를 구했다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혼신을 바쳐 이룬 성과를 뒤로하고 떠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명예와 부귀가 넘치는 잔을 받고 싶었겠죠. 하지만 때로는 빛나는 성공이 독배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결실이 권력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범려는 상황이 바뀌면 권력자는 반드시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성신퇴'를 결단했습니다.

3월 대선이 끝나면 승리한 진영에서 공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이른바 '파리 떼'와 '자리사냥꾼'도 고개를 내밀겠죠. 이들 중에 요직을 차지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기회를 잡지 못해 낙심한 이들도 있을 겁니다. 어느 쪽이 됐든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토사구팽'과 '공성신퇴'가 그것입니다. 떠나야 할 때를 모르고 설치다가는 허물만 남길 수 있습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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