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세금 빼 '루나' 몰빵했다"…한강 상담전화 늘었다

입력 2022/07/04 17:50
수정 2022/07/05 09:20
    
주식·코인 투자실패에
우울증 호소 크게 늘어


자산가치 버블에 투자 붐
코인 투자자 60%가 MZ
올들어 폭락장에 큰 손실

한강 다리위 '생명의전화'
상담건수 1년새 8%P 늘고
2030 상담자가 절반 달해
◆ 베어마켓 블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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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직장인 김 모씨(32)는 지난해 2월 가상화폐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는 소식에 큰 결심을 하고 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연일 상승장이 계속되자 김씨는 급한 마음에 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주식과 가상화폐에 1000만원, 4000만원씩 나눠 투자했다. 그러나 김씨가 투자를 시작한 이후 하락장이 이어졌고, 그는 가상화폐 자산을 시작으로 종목 일부를 소량씩 되팔다가 결국 보유하고 있던 가상화폐를 전부 정리했다.

1억원이 넘는 자산이 들어 있던 김씨의 주식 계좌는 현재 3000만원이 넘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김씨는 "어차피 평생 월급을 모아봐야 집도 못 사는 세상이라 기회라고 생각해 시도해본 투자"라며 "이런 방식의 '영끌' 투자는 위험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크게 좌절했다.

공기업에서 근무 중인 이 모씨(45)는 전세자금대출로 5000만원을 마련해 가상화폐 루나에 투자했다가 이혼 위기에 처했다. 이씨는 약 1년 전 가치가 급상승 중이었던 코인 시장을 믿고 대출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다.

최근 폭락 사태로 루나를 구매했던 투자금 전액을 잃고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뒤 가정 불화가 시작됐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씨 부부는 이혼 절차를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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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의 열기가 차갑게 식으면서 공격적인 투자에 뛰어들었던 MZ세대(1980~2000년대생)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가상화폐 투자자 중 MZ세대가 가장 많고 최근까지도 꾸준히 늘고 있다.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이 지난 5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투자자 중 20·30대 비중은 62.4%를 차지했다. 전체 투자자 10명 중 6명이 MZ세대였던 셈이다. 이는 지난해 조사된 49% 대비 13.4%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연령별로 가장 많았던 투자자는 30대(44.7%)로 조사됐으며 20대도 17.6%를 기록했다. 젊은 세대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가상자산은 비트코인, 리플, 이더리움 순이었다. 이들이 거래한 해당 3개 종목 비중은 지난해 19%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분기에만 32.9%로 뛰었다.

이렇게 가상화폐와 주식 투자로 큰 손실을 본 2030세대를 중심으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한국생명의전화에 따르면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올해 1~6월 한강 교량에서 상담 전화를 건 MZ세대는 전년 대비 8%포인트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위기상담 건수 총 466건 중 20·30대 상담은 각각 146건(31.4%), 51건(11%)이었는데 올해 상반기 걸려온 20·30대의 상담 건수는 79건(36%)과 32건(14.6%)으로 비중이 높아졌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극단적 선택을 고려하고 있는 젊은 층 비율이 42.4%에서 50.6%로 급증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위기상담 건수는 220건으로, 이 중 119가 현장에 직접 출동한 건수는 71건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강 교량을 찾는 상담자들의 문제 원인에서도 주식·코인 투자가 직결된 '경제' 분야 비율이 높아졌다. SOS생명의전화에 걸려오는 상담 문제 유형으로는 가족, 대인 관계, 진로, 건강 문제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담자 비율은 지난해 8.8%에서 10.5%로 늘어났다. 최근 주식과 코인 시장에서 폭락장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추세는 올해 하반기에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온다.

투자 손실 규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비트코인에 2000만원을 투자한 직장인 강 모씨(25)는 1년 가까이 버티기를 고수하고 있다.

강씨는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자 '물타기 투자'(주가가 떨어질 때 주식을 더 사서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것)에 나섰지만 결국 1500만원 이상 손실을 봤다. 강씨는 "17만원이었던 코인 가격이 4만원대까지 떨어졌다"면서도 "이마저도 잃을 수는 없어 '존버(버티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30대 직장인 정 모씨는 "너도나도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니 작년 9월 비트코인에 투자했다"며 "코인이라면 이제 꼴도 보기 싫지만 언젠가 다시 오를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 <용어 설명>

▷ 베어마켓 블루 : 주식 시장에서 약세장을 말하는 '베어마켓(bear market)'과 '우울감(blue)'을 합친 말. 최근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서 가격이 급락하면서 투자자 사이에 퍼진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뜻한다.

[고보현 기자 / 한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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