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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마윈 알리바바 회장 | 잭 마 잭팟을 터뜨리다

정혁훈 입력 2014.09.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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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주식이 신규 상장돼 첫 거래가 시작된 날 뉴욕증권거래소. 증시 개장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마윈(Jack Ma) 알리바바 회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알리바바 주식 시초가가 시세판에 뜨지 않았다. 알리바바주 매수 주문이 폭발적으로 몰리면서 매수·매도 호가를 맞추는 작업에 시간이 걸린 탓이다.

주문폭주 개장 2시간 후 거래 시작

다음 일정에 쫓긴 마 회장은 결국 시초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나야 했다. 결국 장이 시작된 지 2시간 이상 지나서야 알리바바 주식은 시초가 92.70달러에 거래를 시작했다. 첫날 거래는 공모가 68달러 대비 38.1% 급등한 93.89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예고된 ‘상장 대박’이었다.

거래 첫날 종가 기준으로 알리바바는 시가총액 2314억달러(약 242조원)를 기록했다. 단숨에 페이스북 시가총액(2016억달러)을 넘어섰다.


이는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1531억달러)과 이베이(650억달러)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알리바바는 미국 IT 상장기업 중 애플(6045억달러)과 구글(4060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3916억달러)에 이어 네번째로 시가총액이 큰 거대기업으로 부상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 1706억달러도 가볍게 뛰어넘었다.

시가총액 상장 첫날 삼성전자 앞질러

알리바바는 글로벌 기업공개(IPO) 역사를 새로 썼다. 이번 IPO를 통해 조달한 금액이 무려 217억7000만달러에 달했다. IPO 주간사가 추가로 공모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초과배정옵션(그린슈)을 행사해 총 공모액은 250억달러로 늘어났다. 미국 증시 역대 최대 공모액을 기록한 비자(196억달러)는 물론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 동시 상장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농업은행(220억달러)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마윈 회장은 알리바바 주식 평가액이 치솟으면서 총자산 220억달러 이상을 보유한 중국 최대 부호가 됐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막대한 ‘실탄’을 확보한 알리바바의 향후 행보에 쏠리고 있다. 마 회장은 “알리바바가 IBM과 MS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월마트보다 더 큰 회사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가 이번 IPO를 통해 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한 만큼 중국내 사업 확장과 함께 공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 공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아마존, 이베이 등과 진검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리바바의 이런 성공에 중국의 젊은이들도 환호하고 있다. 마 회장은 보잘 것 없는 학력에 집안이나 배경의 도움이 전혀 없이 오로지 자신의 아이디어 하나로 글로벌 기업을 일군 진정한 벤처기업가이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제2, 제3의 마윈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줄줄이 창업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3수해 대학 간 평범한 가정 출신

마 회장은 알리바바의 본사가 위치해 있는 저장성 항저우의 평범한 가정에서 1964년 태어났다.


그는 학교에서도 그다지 두각을 나타낸 학생은 아니었다. 대학 입시에 두 차례나 연거푸 떨어졌지만 굴하지 않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3수를 감행했다. 그럼에도 4년제 대학에 갈 성적이 안됐던 그는 결국 전문대로 분류되는 항저우사범학원 영어과에 입학했다. 그는 영어를 무협지만큼이나 좋아했다. 유명 관광지인 항저우 서호를 찾아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말을 걸면서 실전 영어를 익혔다. 그는 1988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항저우전자과기대학 야간부에 영어교사로 취직했다.

그러나 교사 생활이 적성에 맞지는 않았다. 사업가 기질이 강했던 그는 7년간의 교사 생활을 정리한 뒤 30세에 첫 창업을 했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전문통역회사를 설립한 것. 그가 인터넷 업계에 발을 딛게 된 계기도 이 회사가 만들어주었다. 저장성 교통청 위탁을 받아 미국의 한 기업에 채무를 독촉하는 일을 맡았던 그는 덕분에 MS 본사가 있는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로 출장을 가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했다.


“중국 기업 자료를 수집해 인터넷으로 판매하면 장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1995년 4월 7000위안의 자기 자금과 여동생과 매형, 부모 등 친척에게 빌린 돈 2만위안으로 하이보넷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하이보넷은 B2B 전자상거래 사이트 ‘차이나 페이지’를 운영했다. 창업 이듬해 700만위안의 매출을 올리는 작은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빡빡한 자금 사정 때문에 대기업의 투자를 받았다가 경영상 마찰이 생겨 회사를 포기했다. 이후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국제전자비즈니스센터(EDI)에 지분 30%를 투자하면서 경영 참여를 했지만 국유기업이 그의 생리에 맞을 리 만무했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는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새로운 인터넷 기업을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 캐나다인으로부터 ‘알리바바닷컴’이라는 사이트 주소를 1만달러에 사들였다. 모두가 하루 16~18시간 동안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일하다가 지치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기 일쑤였다. 마 회장은 “가장 큰 실패는 포기”라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렇게 해서 1999년 3월 알리바바 사이트가 공식 출범할 수 있었다. 저장성 항저우 호반화원빌딩 16동 3층 사무실에서 책상 몇 개와 소파 하나로 시작한 알리바바에는 마 회장 이외에 17명의 동업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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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전문가 잘 기용해 성공

그들 중에서도 차이충신(蔡崇信) 부회장과 루자오시 최고경영자(CEO)를 빼놓고는 알리바바의 성공을 논할 수 없다. 인베스터AB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던 차이충신을 마 회장이 만난 것은 1998년이었다. 그는 당시 70만달러 연봉을 받고 있었지만 새로운 사업에 대한 마 회장의 열정에 감화돼 500위안의 월급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창립 멤버들에게 주식회사 제도를 직접 가르치면서 조직의 기틀을 잡고 알리바바의 기업 등록을 마쳤다.

알리바바의 미국 증시를 주도한 것도 투자와 재무부문을 총괄하는 그였다. 알리바바가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고, 미국 야후로부터 10억달러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는 평가다. 루 CEO는 일찌감치 마 회장의 후계자로 낙점된 인물이다.


네트워크통신회사를 창업한 경험이 있는 그는 알리바바에 근무하던 친구 추천으로 2000년 알리바바에 합류했다. 알리바바 B2B서비스 화남지역 책임자로 일하던 그는 2003년 본사로 자리를 옮긴 뒤 알리바바의 제3자 결제서비스인 즈푸바오(알리페이) 설립 임무를 맡았다. 결과는 대성공. 그의 추진력 덕분에 즈푸바오는 중국 결제 서비스시장 점유율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지금 중국에서 알리바바의 질주를 막을 수 있는 기업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성장세가 갈수록 더욱 빨라지는 추세다. 지난 2분기에는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한 157억1000만위안(약 2조6400억원)을 기록했다. 특별이익이 반영된 덕분에 순이익은 무려 179% 증가한 124억위안(약 2조800억원)에 달했다.

상반기 전체로는 매출액 278억위안(약 4조7000억원), 순이익 179억위안(약 3조원)을 올렸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무려 64.4%에 달했다.


중국에선 지금 알리바바가 IPO를 통해 조달한 막대한 자금으로 이번엔 또 어떤 ‘마법’을 부릴지 세상은 다시 마 회장을 주목하고 있다. 한편 야후의 오너이자 알리바바의 지분 32%를 보유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번 알리바바 상장으로 재산이 17조원으로 늘어 일본 최대 갑부가 됐다.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9호(2014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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