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배민 '봉진이형' 수도공고 후배들이 "확실한 외모 스타일 고수 이유" 묻자… [스물스물]

입력 2021/03/15 10:54
수정 2021/03/16 09:34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모교 수도공고서 토크콘서트
"스스로 '나'를 정의 내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 의해 정의 내려집니다. 무엇으로 살아가고,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나'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많이 고민해보기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장은 "남의 칭찬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익숙해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이 만든 기준대로 살게 된다"며 "스스로 만든 기준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며 지낸다면 진짜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이하 수도공고·교장 장동원)는 지난 10일 김 의장에게 '제 1회 자랑스러운 수도인상'을 시상하고 진로탐색 프로그램으로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고 15일 밝혔다.


'뭐든지 다물어봐 봉진이 형에게'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강연은 1995년 수도공고 전자과를 졸업한 김 의장이 모교 후배들에게 자신의 암묵지(暗默知)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강연은 수도공고 학생들의 물음에 김 의장이 하나하나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김 의장과 수도공고 학생들 간 일문일답.

24378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사진=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유튜브 캡처)

―확실한 외모 스타일 고수하고 있다. 이유가 있나.

▷수도공고를 나와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술대학교)을 졸업한 뒤 디자이너로 시작할 때 다른 유명한 학교를 나온 친구들과도 경쟁을 많이 했다. 제가 디자인 실력은 있는 것 같은데 자꾸 프레젠테이션(PT)에서 떨어지니 고민이 들었다.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찾아봤다. 드라마를 보니 잘나가는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머리를 빡빡 밀고, 까만 뿔테안경을 끼고, 수염을 기르고, 까만 티에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모습을 바꾸니 사람들이 "디자인 되게 잘하게 생겼다"거나 "사진 작가세요?"라고 물어봤다. 주변에서도 "저 사람 디자인 잘할 것 같다"고 했다. 여러분들도 자기가 어떤 직업을 꿈꾸거나, 꿈이 있다면 그 모습을 먼저 자신의 외모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패를 계속 겪고도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

▷실패할 때는 너무 힘들다. 그걸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르겠다. 살다보면 계획과 다르게 안 될 때도 너무 많다. 계획과 다르게 너무 잘될 때도 많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다. 그럴 때일수록 하던 일을 꾸준히 하고, 기본기에 충실히 하는 게 가장 좋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기회는 온다. 힘든 시기엔 그걸 벗어나기 위해 너무 발버둥 치면 오히려 더 힘들다. '나는 왜 이렇게 안 되지.' '우리 부모님은 왜 나한테 돈을 많이 주지 못 했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이런 때는 '힘든 시간이구나' 받아들이고 내가 하려고 하는 것들을 조금씩 꾸준하게 해보는 게 더 중요하다. 될 일은 되게 돼 있다. 안 될 일은 안 되게 돼 있다.

―창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창업을 결심하고 '배달의민족'을 만든 게 아니다. 이런 게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아서 만들었다. 여러분들도 살면서 마음이 당기는 것들을 하다보면 훨씬 더 큰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당시는 아이폰이 한국에 막 들어오려고 하던 때였다. 뉴스를 보면서 아이폰이 시장에서 많이 쓰이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생각했다. 전단지를 모아보면 재밌겠다 싶었다. 그때 저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친형, 중학교 친구, 오래 같이 일한 친구와 그 친구의 고향친구 등과 주말마다 만나서 가볍게 만들어서 앱스토어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바로 일등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는 그게 창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가끔 업데이트만 하며 6개월간 방치했다. 각자 일은 해야 했고, 앱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어느 날 주변에서 투자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 본격적으로 창업을 하게 됐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아이폰이 들어오면 세상이 바뀔 거라는 걸 알았다. 왜 저는 조금 더 빨리 알았고, 확신을 가졌는지 말씀드리고 싶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디자인은 잘 하는 편이었다. 창의성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10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보니 무언가 안 되는 게 계속 있었다. 꾸준함이 부족했다.

그때 네이버 오픈캐스트라는 서비스를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웹사이트나 영상물 같은 것들을 하루에 한 번 소개했다. 2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올렸다. 토요일, 일요일, 명절, 무슨 일 있어도 올렸다. 계속 올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제일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해외 뉴스라든가 스마트폰 변화도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뭔가를 하겠다면 꾸준하게, 루틴하게 하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해보기를 추천한다.

―17살 고1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학창 시절 때 정말 후회되는 게 영어공부를 안 한 것이다. 영어를 할 줄 알면 기회가 훨씬 더 많이 열린다. 진짜 영어 공부는 꼭 했으면 좋겠다. 제가 공부하라는 얘기 절대 안 하는데, 영어 공부만큼은 얘기한다. 영어 공부는 시간이 지나면 더 하기 어렵다. 꼭 하기 바란다.

―원래 화가를 꿈꾸셨다. 만약 공고 대신 예술고에 가고, 미대를 갔다면 화가가 될 수도 있었다. 후회되거나 아쉬운 게 있나.

▷좋은 예고를 가고, 좋은 대학을 갔다면 제가 지금 배달의민족에서 하고 있는 디자인은 못 했을 것이다. 엘리트 집단에선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어떤 스타일을 고수해야 한다.

배달의민족 서체는 사실 안 예쁘다. 기존 디자이너라면 정갈하고, 가독성 높고, 깔끔한 서체를 만들어야 했다. 그것으론 그들과 경쟁할 수 없었다. 완전히 다른 방법을 찾았다.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디자인을 배웠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 했기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하는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저는 전자과 학생이었다. 일주일에 11시간 이상 납땜을 했다. 납땜하는데 마지막에 '점프선'이 안 예쁘면 못 하겠더라. 회로가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는 저한테 중요하지 않았다(웃음). 점프선을 얼마나 예쁘게 빼느냐가 중요했다. '저항'도 빨간색, 파란색 각각의 역할보다는 그 색이 너무 예뻐서 모았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많이 안 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과학적인 방법이나 기술에 대해 조금은 배웠다.

제가 디자인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지금은 '플래시'라는 게 없어졌지만 당시엔 인터랙션디자인이라는 게 있었다. 인터랙션디자인은 시각적 디자인뿐 아니라 코딩을 해야 한다. 코드를 짜서 사람의 행동에 따라 반응하도록 한다. 그냥 데생만 하고, 미술만 하고, 디자인만 했던 친구들은 코딩 자체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는 '이거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인터랙션디자이너로 일했다. 진짜 버릴 게 없다.

―가장 '핫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힘든 점은 무엇인가.

▷플랫폼 서비스라는 한계가 있다. 고객들은 쿠폰 받아서 더 저렴하게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 한다. 사장님들은 수수료를 덜 내고 싶어 한다. 라이더 분들은 배달료를 더 많이 받고 싶어 한다. 반면 고객들은 배달료를 안 냈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느 한쪽에서만 보면 이게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어서 중심을 잡는 게 어렵다. 상충되는 지점들이 있다.


또 한국에서 인재들이 가장 오고 싶은 회사를 만들려면 월급도 많이 줘야 한다. 주주들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줘야 한다. 밸런스를 맞추는 게 정말 어렵다.

―스스로를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살면서 중요한 부분이 '나'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가이다. 스스로 정의 내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정의를 당한다. 그렇잖아요.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는 자기 스스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나는 삼성에 다니는 사람이야' '나는 시인이야' '나는 무엇이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지금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내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다. 제 명함에도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적어 놓고 있다. 사업을 하면 옷도 좀 CEO처럼 입고 다녀야 하는데 그냥 디자이너다운 모습으로 다닌다. 오히려 또 좋아하는 분들은 좋아하기도 한다. 평생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 내릴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분들도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솔직히 답변해주기 바란다. 배달의민족 말고 다른 배달앱을 사용해본 적이 있나.

▷'쿠팡이츠'를 자주 쓴다. 다른 것들도 많이 쓴다. 그래야 경쟁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의민족이라는 참신한 앱을 만든 아이디어의 근원지가 어디인가.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보면 거기서 순간적으로 어떤 게 떠오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건 없다. 뭔가를 계속 하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 회사에 혁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놓은 게 있다. 운동 경기에서 혁신한 사람들 이야기를 소개해드린다.

수영에서 '플립턴(flip turn)'이라는 게 있다. 수영장 레인 끝에 닿으면 돌아서 발로 차고 나오는 기술이다. 수영 경기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원래 경기 규칙에선 몸이 벽에 닿고 돌아오면 되는 거였다. 처음엔 다들 손을 찍고 왔다. 누군가가 매일 훈련을 하다보니까 몸을 돌리면서 발로 찍고 발돋움해서 나오는 플립턴을 개발했다. 사람들이 처음엔 반칙 아니냐고도 했지만 나중엔 모두가 따라했다. 플립턴을 처음 한 사람도 수영 배우자마자 플립턴을 했던 건 아니다. 매일 훈련하다가 자기의 기록을 개선하기 위해 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배달의민족 앱엔 회원 등급이 있다. 김봉진 의장은 등급이 무엇인가.

▷제 등급은 '귀한분(월 5회 이상 주문)'이다. 포인트는 총 10만3000원 쌓여 있다.

―수도공고 후배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려운 책은 여러분들이 안 읽을 테고(웃음). '부자의 그릇(이즈미 마사토 지음)'이라는 책이 있다. 에세이처럼 나와 읽기 편하다. 돈이라는 게 어떤 건지 철학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톨스토이)'를 추천한다. 내용은 조금 어렵지만 분량은 몇 페이지 안 된다.

―CEO로서 가장 뽑고 싶은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일단 자기 색깔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친구를 저는 좋아한다. 요즘에 힘든 게 면접을 들어가 보면 똑같은 얘기들을 한다, 모두가 똑같이 외워 온다.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합격하기 위해 하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다. 저희 회사 같은 경우는 그런 때 약간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자기 생각이 없고 그냥 무조건 맞춰서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살다보면 '왜 나는 안 되지' 회의감과 난관에 부딪힌다. 이겨내는 방법이 있는가.

▷얼마 전에 모 대기업 회장님과 식사했다. 이런 얘기를 하셨다. "나도 왜 다른 사람들한테 자격지심이 없겠냐. 해외에 나가면 영어 쓰는 게 어색하다. 유럽사람이나 미국사람이 봤을 때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 자기네 소사이어티에 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본다. 나도 해외에 나가면 어렵다."

상대를 어떻게 비교하는지는 본인이 판단한다. 늘 이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경쟁에서 이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경쟁하지 말라' 이런 얘기가 아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첫 번째 방법은 상대방이 나보다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저 사람보다 절대 작지 않다' '내가 저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 그 자세가 중요하다. '나는 왜 안 될까' 이런 고민보다는 자신이 만들어갈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저희 회사가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크지만, 글로벌로 보면 굉장히 작은 회사다. 제가 재산 1조 원 중 절반을 기부했다고 하지만, 제 앞에 기부하신 분들 중에선 제가 제일 작다. 왜냐면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가입 커트라인이 재산 1조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여러분들보다 낮은 곳도 있고 높은 곳도 있다. 비교라는 건 상대적이다. 크다, 작다 하는 것도 상대적이다. 여러분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김봉진 의장에게 마지막 꿈은 무엇인지?

▷언젠가 제가 죽었을 때 제 비석에 '경영을 혁신한 디자이너'라고 새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게 제 삶에선 가장 큰 가치다.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키팅 선생님이 학교에 부임하고 첫 수업에서 학생들과 같이 그 학교의 역사가 전시된 방으로 간다. 그리고 졸업생 선배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50~60년 전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다.

거기서 키팅 선생님이 말한다. "이 분들도 고등학생 때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바꿀 거라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 죽었다." 그리고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라고 얘기한다. 현재에 충실하라고. 놀고먹으며 살라는 게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고, 나 자신을 잃지 말고, 그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여러분들에게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중요한 것들이 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내 스스로 '나'를 정의 내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 의해 정의 내려진다. 내가 추구하는 '나'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삶을 살지에 대해 많이 고민해보면 좋겠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의 칭찬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익숙해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이 만든 기준대로 살게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칭찬은 고래도 훈련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칭찬이란 기준에 의해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스스로가 기준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면 진짜 여러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문광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