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시생 전유물 옛말…대학 새내기도 줌으로 '기상 인증 스터디' [스물스물]

명지예 기자
입력 2021/04/18 11:09
수정 2021/04/20 11:16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기상·공부 인증
코로나블루 극복하려 강제적 생활 패턴 만들어
저학년 때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분위기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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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19학번 엄혜영 씨가 개설한 기상 스터디. 멤버들이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에 참여해 각자 공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다. [사진=엄혜영 씨 제공]

올해 고려대 서울캠퍼스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정채영(19) 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화상 회의 프로그램 줌(Zoom)에 접속한다. '기상 줌 스터디'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총 6명의 스터디원이 오전 6시 5분까지 화상 회의에 접속해 오전 7시까지 각자 공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송출한다. 이 스터디 모임은 지각 벌금 500원, 결석 벌금 1000원 등 엄격한 규칙을 두고 있다. 정 씨는 "늘어지기 쉬운 코로나 시국에 자기계발에 더 힘써야겠다고 생각해 이 스터디에 참여했다"며 "스터디 덕분에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대학가의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생활스터디' 모임을 찾는 대학 새내기가 늘고 있다.


생활스터디는 자신의 기상 시간이나 하루 공부 시간을 인증하는 모임으로 그간 취업준비생이나 고시생이 흔히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생활태도가 느슨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최근에는 대학 저학년들도 비대면 생활로 인해 느끼는 무기력함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활스터디를 찾는다.

매일경제가 이달 1~16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등 서울 시내 주요 대학 4곳의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확인한 결과, 생활스터디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이 일주일 평균 약 5개씩 올라 왔다. 기상 스터디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 고려대 19학번 엄혜영(21) 씨는 "스터디 멤버 중에는 로스쿨을 준비하거나 취업 활동중인 사람이 아닌 일반 재학생들이 더 많다"며 "올해 들어 1~2학년의 가입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간호학과 21학번 이시온(21) 씨는 하루에 서로 다른 세 개의 스터디 모임에 참여한다. 기상 인증 스터디, 독서실 출석 체크 스터디, 공부 인증 줌 스터디 등이다. 이 씨는 일어난 즉시 타임스탬프 어플(사진에 실시간 시각이 찍히는 서비스)로 바깥 풍경을 찍어서 단체 카카오톡에 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8시까지는 독서실이나 카페로 향해 공부하러 나왔다는 것을 사진으로 인증한다. 밤 10시에는 줌에 접속해 공부하는 모습을 스터디원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이씨는 "대학교 공부량도 고등학교 못지않게 많은데 부모님이나 학원이 강제하지 않으니 공부 시간 확보가 어려웠다"며 스터디 가입 이유를 밝혔다. 그는 "절대평가라서 학점 관리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라며 "1학년은 놀아도 된다고들 하지만 수업을 소화하려면 고등학생처럼 지내야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 인증 줌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는 연세대 20학번 박찬호(21) 씨는 "코로나 때문에 취업이 더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지금부터 공부 습관을 들여놓으려 한다"며 "저학년 때부터 학점을 높게 받으면 유리하다고 해서 학점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강의로만 대학 생활을 접한 저학년은 실제로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정 씨는 "강의실에 직접 가서 수강하는 게 아니라서 고등학교 때처럼 수행평가 하는 느낌"이라며 "혼자서는 과제를 미루게 되니까 생활스터디로 강제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으로 관계 맺는 데에 익숙한 세대라 비대면 스터디 모임도 활발하게 생기는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구 교수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대학 저학년도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공부에 몰두하고 경쟁하게 된 것"이라며 "공동체를 위해 토론하는 대학 본연의 취지가 흐려지고 대학이 학원화되는 것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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