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인류난제 푼 '수학스타'의 첫 꿈은 시인…경계 넘나드는 무한한 상상력이 나의 힘 [인터뷰]

입력 2021/05/07 16:48
수정 2021/05/10 21:33
[Weekend Interview] 세계가 주목하는 수학자 허준이 美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
44251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수학계 난제였던 리드추측을 증명하면서 약관의 나이에 대수기하학과 조합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떠오른 허준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허 교수가 KAIST 고등과학원 수학부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충우 기자]

수학과 박사과정 진학 첫해, 1968년 이후 난제였던 '리드 추측'을 증명한 수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요한 폰 노이만, 쿠르트 괴델,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세기의 두뇌가 거쳐간 프린스턴고등연구소(IAS)에서 30대 나이에 '롱텀 펠로우'를 제안받은 역사상 3인 중 1인.

또 다른 난제 '로타 추측'과 '다울링-윌슨 추측' 증명에 기여하면서 발표 논문 하나 하나가 묵직한 질량을 가지게 된 수학계의 라이징 스타.

허준이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39)를 이해하는 몇 가지 열쇠들이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이공계생이었던 허 교수를 세계 수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작년 일시 귀국한 허 교수는 서울 동대문구 KAIST 서울캠퍼스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에 머무는 중이다. 최근 허 교수는 "조합과 기하라는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사유의 대상 사이에 허 교수가 건설한 '다리'는 인류의 이해를 지속해서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허 교수의 수상은 한국 수학계 위상뿐 아니라 호암상 자체의 권위를 증진시킬 것이며, 역사는 그의 결과들을 기억할 것"는 평을 받으며 상금 3억원의 삼성호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달 대학수학회가 개최한 연구발표회의 기조강연자도 그였다.

고등과학원 3층 그의 연구실 책상에는, 오직 펜과 메모지가 전부였다. 컴퓨터도 켜져 있지 않았고, 책장에는 책 한 권 꽂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손으로 꾹꾹 눌러쓴 수백 페이지의 노란 메모지에는 뜻을 알 수 없는 상상력의 기호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난 천재가 아니다. 구구단도 늦게 뗐다"며 웃는 얼굴로 기자를 맞는 허 교수와의 세 시간 대화를 전한다. 분량 관계상 문어체로 쓴다.

​◆유년의 난제, 수학문제집

442512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근황이 궁금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에 귀국해 고등과학원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스탠퍼드대 학생과는 영상으로 수업한다. 곧 6월께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유년 시절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인 건 아니라고 들었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뜻하는 은어)'였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구구단 떼는 것도 꽤 늦었다. 초등학교 2학년 돼서야 다 외웠다고 한다. 수학에 별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웃음).

―평범하던 학생이 현재 위치에 올랐다는 사실을 일반 독자는 믿기 어려울 텐데.

▷길을 찾기까지 오래 걸린 늦깎이다. 아버지께 어린 시절 딱 한번 크게 혼났는데 하필 이유가 수학 때문이었다(웃음). 통계학자이신 아버지(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께서 내게 문제집 숙제를 내주셨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해답지를 보고 베꼈다. 그걸 알게 되신 아버지께서 해답지를 뜯으셨는데, 굴하지 않고 서점에 가서 같은 문제집을 찾아내 또 베꼈다. 그게 또 걸렸다. 어머니(이인영 전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께서도 알파벳 가르치다가 포기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평범했다(웃음).

―학부 졸업을 앞두고,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교수(90·1970년 필즈상 수상) 수업을 들으며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

▷대학을 6학년까지 다녔다. 천문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F'가 많아 11학기를 다녔다(웃음). 히로나카 교수님이 서울대에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이미 워낙 세계적 수학자이셨다. 당시 수학이나 물리 전공하던 학생 가운데 수강 신청하지 않은 학생이 없었을 것이다. 서울대 자연대 27동 대형강의실에 200명 넘는 학생이 꽉 찼다. 그러나 두 번째 수업에 딱 절반인 100명, 세 번째 수업에 다시 50명으로 줄더니 마지막 강의에 5명 남았다. 많은 학생들이 드롭(drop·수강 철회를 뜻하는 은어)한 이유는 강의가 말도 못하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돈된 수업과 거리가 있었다. 내겐 터닝 포인트였다.

442512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전공도 아니면서 노벨상에 준하는 필즈상을 받은 교수의 강의를 이해했다니, 숨겨진 천재성이었을까.

▷전혀 아니었다. 이해를 못했지만 꾸준히 강의를 들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10대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게다가 이공계를 나왔으니 대학 시절 꿈은 과학기자였다. 히로나카 교수님의 1990년대 베스트셀러 책 '학문의 즐거움'을 중학교 시절 읽었는데 기자가 되면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를 첫 번째로 인터뷰이로 삼겠다는 다짐으로 수업을 들었던 거다(웃음).

―히로나카 교수님 수업이 전환의 계기가 됐다.

▷당시 강의명은 '대수기하학개론'이었다. 히로나카 선생님은 참 훌륭한 교육자셨다. 학자가 본인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을 가진 청중이 있어야 하는데 그분은 배경지식이 불충분한 청중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디테일은 생략하며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수학이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수학을 하다'라는 행위로서도 가능함을 느꼈다. 교수님은 칠판에서 '날것 그대로의 수학'을 보여주고 계셨다.


―'날것의 수학'이란 뭘까.

▷히로나카 교수님의 필즈상 업적은 '특이점 해소'였다. 특이점 해소의 가장 중요한 케이스를 커버하긴 했지만 '가능한 가장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 교수님은 30여년 전의 본인 스스로를 뛰어넘는 결과를 내려 연구하시던 시기였다. 그래서 본인의 전날밤 연구를 학생들과 공유하셨다. 수학과 학생은 보통 200년 전 학자들이 하던 수학을 재구성(refine)하는 강의를 듣는다. 따라서 수학과의 대학생이 배우는 강의는 '대리석처럼 매끈해진' 수학이다. 그러나 교수님의 수학은 '날것'이었다. 비전공자이긴 해도 '날것을 구경이나 하자'는 심정이었다.

◆명제와 추측의 숲에서

442512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미국 대학원에 진학한 첫해 1학기에 '리드 추측'을 증명해 수학계를 놀라게 했다. 천재성을 부인하기에는 대단한 성과가 아닐까.

▷서울대에서 수학과 석사를 마치고 미국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수학의 조합론 분야는 전혀 몰랐고 부끄럽게도 리드 추측이란 문제도 잘 알지 못했다. 석사 시절, 히로나카 교수님 아래서 특이점이 있는 공간을 조금 연구했었다. 전혀 무관한 대상이라고 느꼈던 문제와 특이점 이론 간에 구조적 유사성이 많았다. 문제를 알기 전 답을 알게 된 케이스였다. 운이 좋았다.

―매달린 게 아닌데도 다가서다 보니 문제가 풀려 있었다는 우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수학적 대상은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이산(離散)수학적인 대상이 있다. 한 개, 두 개, 세 개 등 셀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다음으로 대수(代數)적인 대상이 있고 또 흔히 기하학이라고 하는, 공간에 관한 구분도 있다. 그런데 수학에서의 이런 구분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인간적인' 구분이 아닐까.

―조금 쉽게 설명을 부탁드린다.

▷인간이라는 종(種)은 특정 상황 속에서 진화해왔다. 수학에서의 사유는 인류의, 인간으로서의 경험이 쌓이면서 그 축적된 경험 위에서 발전해 왔다. 한번 가정해보자. 우리가 지금과 달리 크기가 굉장히 작은 종이어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인 현상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면? 원자처럼 사이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고, 모든 건 확률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우리의 수학적 대상과 주제, 나아가 사유의 방식도 지금과 같았을까? 조합론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상, 기하학이라고 생각하는 대상, 대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상들은 엄밀하게는 순수 사유의 결과지만 그 사유의 방식은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의 일상의 경험이 쌓여 발전됐다는 의미다. 조합론적인 문제를 기하학적인 직관을 사용해 풀었다는 건 인간 입장에서는 뜻밖의 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종의 입장에선 이게 자연스러운 접근일 수도 있다.

―인간이 현재와 같은 신체·환경이 아니었다면 문명의 외형도 달라졌을까.

▷현대수학에서 빈번한 방식은 이산수학을 이용해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기하학을 통한 직관을 사용해 결론을 낸 뒤 그 결론을 다시 그래프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흔히 관찰되지만 만약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면 전혀 다른 방식의 증명이 더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을까.

―SF소설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영화 컨택트 원작)'에 나오는 이야기 같다. 종의 언어가 신체와 환경에 지배받는다는 말은 SF적이다.

▷수학을 하다보면 수학이 인간적인 사유 행위냐 아니면 절대적인 사유의 대상이 있고 그걸 인류가 '대상 바깥'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거냐를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종의 입장에서 인간과 논거가 다를 수 있음을 수학은 리마인드해준다. 인류는 자신 외에 스스로의 지성에 비견될 종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는 가설이다.

442512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수학을 관통해 인류를 바라보는 통찰이 놀랍다.

▷수학에서의 증명이란, 유한개의 긴 문장으로 구성된 명제들의 배열이다. 한줄에서 다음줄로 넘어가려면 '이미 참으로 하기로 한' 다른 명제나 '우리가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공리 중 하나를 사용한다. 당연한 명제로 시작해 마지막 줄은 자신이 증명하고 싶었던 명제로 끝낸다. 그런데 유한개의 명제들이 꼭짓점처럼 떠 있는 가상공간을 상상해보자. 모든 명제들 사이에 연역이란 사슬이 작동해서 꼭지점들이 선(線)으로 연결된 공간을 상정해보자. 그 모습을 멀리서 본다면 결국 세계에는 '참'과 '참이 아닌 것'이 남겨진다. 우리가 이해하는 증명에서의 연역이란 너무 형식적이다. 진리는 형식적이지 않고 오직 자연에의 관찰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고 생각해 학부 때 천문학을 선택했던 이유도 있다.

―학문은 인간을 이해하는 길일까.

▷가능한 모든 명제가 놓인 지도를 다시 생각하면 모든 증명이란 지도에서 길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길을 찾는 과정에서 수학자는 인간의 사유에 대해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수학자는 수학을 할수록 인간이 어떤 생각하는지를 점점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이 수학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학문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방향이자 노력이다.

―수학은 창조일까, 발견일까.

▷만약 한 수학자가 새 논문을 발표해 전혀 새로운 이론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그 이론은 특정한 인간이 창조한 것인가, 아니면 발견한 것인가. 인간은 과연 그걸 구분할 수 있을까. 다른 분야와 달리 수학은 그 경계를 엄밀하게 나누기 어렵다. 수학에서는 '이거다'라고 말하기 모호한 일들이 많다. 창조와 발견을 가를 수 없는 저 모호성이 수학의 매력이라고도 생각한다. 연구를 시작하며 첫 명제를 쓸 때는 마지막 명제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그 어떤 수학자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를 다 풀고 이론을 만들고 난 뒤 다른 이론과 잘 어울리는가를 판단해보면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그런 아름다움 속에서는 신이나 절대적인 어떤 존재의 솜씨를 의심하게 된다. 어떤 절대적인 사유의 대상이 있고 그걸 인류가 조금씩 발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인간은 영원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현대수학은 집단지성…함께 머리 싸매면 못풀 난제 없죠


◆길 없는 길 : 창조와 발견

442512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히로나카 교수는 "수학에서의 기쁨은 창조의 기쁨과 맞닿는다"고 했다. 수학자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성에 있다"고 했고,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은 올바른 시각으로 보면 진실뿐 아니라 궁극의 미(美)를 담고 있다"고 했다. 창조의 기쁨, 자유성, 미적 순간을 느끼는 순간이 잦은가.

▷수학은 연역의 학문이다. 딱딱한 학문, 쉽게 말해 '유도리'가 없다(웃음). 그러나 수학은 동시에, 좀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최소한의 규칙'만 지키면 어떤 식으로 전개해도 전부 자유로운 영역이기도 하다. '논리(logos)'라는 최소한의 규칙만으로 이토록 다채로운 세계를 건설해 나간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바둑을 생각해보자. 규칙은 정말 미니멀한데 엄청난 다양성이 생긴다. 수학은 더 복잡하지만 동시에 더 자유롭다는 의미가 된다.

―수학자에게 늘 창조와 발견의 기쁨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증명이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영화도 보고 유튜브도 보는 30대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지낸다.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저도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평범한 아빠다.

―천재 수학자를 다룬 영화도 봤는지 궁금하다. '무한대를 본 남자'의 실존 인물인 인도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1887~1920), '뷰티풀 마인드'에서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수학자 존 내시(1928~2015·1997년 노벨경제학상·2015년 아벨상),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세계대전 기간을 단축해버린 엘런 튜링(1912~1954) 등의 수학자는 늘 대중의 호기심의 대상이다.

▷존 내시 선생님은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에 재직하던 시기에 같은 동네에 살며 몇 번 뵈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내쉬 선생님의 삶을 고증한 영화로, 흥행에도 성공해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영화로서는 흥미롭지만 현대수학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린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이전 세대 수학자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특정 집단이 공통으로 가지는 고정된 견해) 인물을 재생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천재인데 외골수, 의사소통 능력은 부족하지만 순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전인류적 성과를 내는 영화 속 천재 수학자는 현대수학자 모습과 차이가 있다.

―영화와 실제는 어떻게 다를까.

▷존 내시 선생님은 천재성이 명백한 분이었지만 현대수학자는 골방의 책상에 앉아 혼자 몰입하는 모습과 다르다. 오늘날 논문은 대부분 공저자 형태로 발표된다. 문화의 변화라기보다는 사회 여건이 무르익으면서 인류가 추상적 대상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방식에 이르렀다. 추상적인 대상에 관해서도 수학자들이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됐다.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라마누잔은 인도에서 영국에 손편지를 쓰는데, 발신과 수신에 걸리는 시간, 답장을 주고 받는 시간을 감안하면 단 1초 사이 지구 반대편 상대방과 이메일이 오가고, 낮밤도 없이 화상으로 대화하는 모습은 혁명적이다. 현대수학의 집단지성을 나는 '조용한 혁명'이라 부르고 싶다.

―함께 해내는 사유란 어떤 풍경일까.

▷수학이 다루는 대상은 추상적이고 난해해 공유가 어렵다. 그러나 이제 세계 수학자들은 추상성과 난해성을 공유한다. 수학자들이 모이는 방식은 세 단계이다. 먼저 학회나 모임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또 친분이 쌓이면 '요즘 나는 이런 걸 생각하고 있다'고 공유한다. 문제를 공유하면 미스터리한 일은 여기서부터 벌어진다. 수학자 1인이 풀지 못했던 문제가 2인, 3인일 때는 풀리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누가 이걸 풀었는지를 판단해보면 그걸 모른다. 문제가 '뿅' 하고 풀린다는 건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화학작용이다. 누가 논문을 대표 집필하느냐의 세 번째 단계는 형식적이다. 저 두 번째 단계의 화학작용은 이전의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이다.

―누가 풀었는지 모르는데 이미 풀려 있다니, 신비롭다.

▷이전 세대의 수학 세계에서는 한 천재가 혜성처럼 등장해 난제를 해결했다. 분명한 건, 1000년쯤 지나 인류가 그때까지도 살아 있다면 수학적 연구 결과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2020년대를 기억하리란 점이다. 우리가 연역적 사고를 도입하기 시작한 2000년 전 그리스 사람들을 기억하듯이, 후대 인류도 현 인류의 가장 중요한 변화 원인으로 실시간 소통능력을 꼽을 것이다.

―섬광과도 같은 직관, 꾸준하고 치밀한 노력. 수학적 진보의 계기는 어느 순간에 올까.

▷독일 태생의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1928~2014·1966년 필즈상 수상)의 유명한 글을 빌려 답하고 싶다. 그로텐디크는 수학에서의 진보가 일어나는 이미지를 다음처럼 은유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을 때 대상 주변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만 같지만 저 멀리서 바다로부터 서서히 물이 차올라 조수간만이 달라져 어느덧 대상 주위를 물이 감싸 결국 대상의 껍질을 스스로 녹인다. 수학의 그렇게 진보를 이룬다.' 그로텐디크의 말처럼, 단단한 껍질의 호두를 한 천재가 망치로 깨부수는 것이 과거 수학이었다면 현대수학은 집단지성으로 껍질을 녹인다.

◆천재 수학자, 문학을 꿈꾸다

442512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허준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조합론 모델을 판서하고 있다. 허 교수는 "수학자들은 칠판과 분필을 좋아하는데, 화이트보드 등장으로 우수한 분필이 사라지고 있다. 필기감 좋은 분필이 `멸종`하고 있다는 점이 현대수학의 최대 난제"라며 웃었다. [이충우 기자]

―'천재 중의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고는 못하실 것 같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증명이 고통스럽지는 않은지.

▷수학자로서의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내가 못 풀었기 때문'이 아닐까(웃음). 멋진 논문을 써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심리적 고통을 낳는다. 그러나 분명한 건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충분히 성숙해 나가고 있고 그로센딕의 비유대로라면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하더라도 분명하게 멀리서 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내가 풀지 못하더라도 나 아닌 많은 수학자들이 이미 그 대상으로 진입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몇 해 전 미국 수학·과학 전문매체 '콴타(Quanta) 매거진'의 옛 인터뷰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10대 시절 허준이 교수는 시인이 되기를 꿈꿨다(As a teenager he dreamed of becoming a poet)." 세계적인 수학자의 학창시절 치고는 너무 의외였다.

▷고교 시절엔 진심으로 시를 꿈꿨다(웃음). 학교 다닐 시간에 시를 쓴다면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고, 특히 기형도 시인의 시를 특히 흠모했다.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뒀을 정도로 자의식이 강하던 시기였다. 검정고시로 대학을 갔지만 그 시기의 일을 후회하는 마음이 없지 않다.

―시와 수학은 오직 '펜과 종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또 인간의 상상력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닮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시와 수학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첫째,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종이 위에 고체화 시킨다. 둘째, 읽거나 읽히기가 쉽지 않다. 셋째, 그래서 읽는 사람이 없다(웃음). 수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직접적이고 또 누구에게나 소통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행위로서 시를 쓰거나 수학 증명을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내가 뭔가를 느끼고 본 것을 기록해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지 않을까. 수학자도 음악가도 종이에 인식을 적지만 악보와 달리 수학 증명은 연주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독주가 아닌 협주를 위해

442512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수학의 기호적 소통은 즐거운지.

▷수학이 본질적으로 소통이 어려운 장르인지를 묻는다면 또 그렇지도 않다. 천천히 진행될 뿐이다. 논문을 발표하고 한 5년쯤 있으면 세계 맞은편 어느 수학자가 내 사유를 이해한 뒤 이를 응용해 전혀 다른 변주곡을 들려준다. 이런 소통은 수학자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집단지성의 협주곡같다.

▷천문학 전공자로서, 이런 이미지도 있다. 별과 별은 너무 멀어 지금 인류가 보는 별빛은 수천만 년 전의 빛이기도 하다.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도 '8분 전의 태양'이다. 태양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8분이 걸린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의 빛'을 본다. 수학이라는 우주에도 시차(時差)가 있다. 수학자들의 소통 방식은, 광년까지는 아닐지라도, 몇 년 주기로 천천히 발전한다. SF적인 상상력으로 본다면 인류 문명이 발달해 대중과도 수학적인 소통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런 날을 상상해보곤 한다.

―이 질문은 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묻게 된다. 한국계 필즈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허준이 교수를 '0순위'로 꼽곤 한다.

▷기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난 필즈상을 '아주 높은 확률로' 받지 못할 것이다(웃음). 현대수학은 소수의 천재가 이끌지 않고 인류가 하나의 '원 팀'으로서 활동한다. 도드라져 보이는 꼭짓점이 한둘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젊은 수학자만 모아도 이 세상에 수백 명이다. 난 수학자로서 거대한 엔진이 되길 원치 아니하고 엔진의 작은 톱니바퀴로서 기능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여러 톱니바퀴들이 모여 만든 현대수학이라는 엔진이 잘 작동하고 있으므로, 나는 엔진 어딘가에서 순간순간에 감격할 뿐이다. 수학하는 행위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증명은 '나'로부터 대상에 몰입하는 아름답고 고귀한 순간이다.

―수학은 자체로서 가치를 지닐까.

▷수학자로서의 증명과 그 증명을 통한 소통은 헤르만 헤세의 유명 소설 '유리알 유희'에 견줄 만한 일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제프 크네히트는 전설적인 유리알 유희의 명인이다. 헤르만 헤세는 크네히트를 통해 '조화와 균형'을 탐구했다. 아름다운 유리알을 보며 유희하는 것은 현대수학자의 수학 행위와 닮았다. 수학의 진보가 멈추지 않고 지수함수적으로 폭발하는 시대를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그 사실에 감사드린다.

―마지막 질문이다. 히로나카 교수님의 책에 '대망(大望)'이란 단어가 나온다. '수학자 허준이'의 대망이 있다면.

▷대망까진 아니고 소망(小望)이 있다.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것. 그리고 수학을 향한 호기심을 끝까지 유지할 것. 아직 30대여서 이런 말을 하기에 이르다는 걸 알지만, 날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분명한 팩트는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막이 내리기 전에 어떤 발견을 하고, 다른 사람의 발견의 순간을 궁금해하는 것. 이로써 나와 타인이 궁금증과 그 결과물을 편지이자 유산처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충족감을 없을 것만 같다. 수학자의 진짜 유희란 그런 것이 아닐까.

▶▶ He is…

△1983년 출생 △검정고시로 서울대 입학 △울대 물리천문학부 졸업 △서울대 수리과학부 석사 △일리노이대 어바나 샴페인 입학 첫해 '리드 추측' 증명 △미시간대 박사 △클레이수학연구소 클레이 펠로(2014~2019) △프린스턴대·프린스턴고등연구소(IAS) 베블런 펠로(2014~2017) △IAS 방문교수(2017~2019) △IAS 페른홀츠 방문교수(2019~2020)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2020~현재) △KAIST 부설 한국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스칼라 교수(2015~현재)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