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황희 장관 한 마디에 비수도권 뿔났다 [방방콕콕]

입력 2021/05/26 11:46
수정 2021/05/26 13:43
황 장관, 이건희 미술관 건립 계획 앞두고
'국민 접근성' 강조하며 수도권에 힘실어
유치 추진 비수도권 지자체·정치권 반발
"지방 편향적 시각, 노골적으로 드러내"
전문가 "기증 작품 지방 분산 배치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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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지자체 `이건희 컬렉션` 유치 당위성. [자료=지자체 입장 재정리]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으로 추진되는 미술관 신설 계획이 6월께 나올 예정인 가운데 정부발로 수도권 유력설이 흘러나와 후폭풍이 거세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건희 컬렉션' 건립 방향과 관련해 '국민 접근성'을 강조한 것이 발단이 됐다. 문화부는 "전문가 의견 수렴 단계로 확정된 것은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속내를 드러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비수도권 정치인들도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26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경기도, 인천시, 부산시, 대구시, 세종시, 서울 용산구, 경북 경주시, 경기 용인시, 수원시, 평택시, 오산시, 경남 의령군, 진주시, 창원시, 전남 여수시 등 10여 곳이 '이건희 컬렉션'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중 부산 대구 세종 경주 의령 진주 창원 여수 등 절반 이상은 비수도권 소재 지자체들이다. 대부분 고 이건희 회장 일가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유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유치위원회까지 가동한 상태다.


황희 장관 '접근성' 강조에 '수도권 vs 비수도권' 희비 교차


그러나 황 장관의 한마디가 끓어오른 유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근 황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입지로 수도권을 기정 사실화 했다.

황 장관은 "많은 국민이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보하는게 정부의 도리"라면서 "수도권은 많이 볼 수 있는 접근성이 있는데, 미술관을 지방에 둘 경우 '빌바오 효과(스페인의 도시 빌바오가 구게하임미술관 유치를 통해 예술도시로 부상한 것)'는 나타나지 않고 유치 경쟁 과열 등으로 엄청난 국고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한마디에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표정이 엇갈렸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유치전에 뛰어든 용산구는 발빠르게 용산가족공원에 문화부 소유 용지(용산동6가 168-6) 활용을 제안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이 가까워 향후 용산국가공원 조성시 관광객이 급증할 것이라고도 했다.

경기도 지자체들도 반기고 있다. 고 이 회장의 유족이 미술품을 기증한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 있는데다 고 이 회장의 묘소와 삼성 본사가 수원에 있어 기대를 한껏 높이고 있다.

반면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정선희 전남 여수시 이건희미술관유치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제는 비수도권도 문화 향유의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면서 "(정부는) 호남과 경상지역에 규모는 적더라도 각 각 하나씩 만들어 균형 발전과 문화 향유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이건희 컬렉션 건립 계획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 있고, 근처에 삼성그룹 모태인 삼성상회터가 남아 있는 대구시도 "아직 확정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면서 "정부는 문화균형발전차원에서 비수도권을 배려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추진위원회는 전날 창원시청 현관에서 황 장관 비판 성명을 냈다.

이들은 "황 장관이 이건희 미술관 유력지로 수도권을 꼽은 이유로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기를 바란 기증자의 정신'을 들었는데 수도권에 밀집된 사람들 만을 위해서 이건희 컬렉션이 이용돼야 한다는 것이 기증자의 뜻이냐"면서 "황 장관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균형발전전략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북항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해 세계적 미향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건 부산시는 한발 더 나아가 전국 공모를 통해 후보지를 확정할 것을 주장했다.

앞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건희 미술관이 지방에 건립돼야 하는 이유로 "우리나라 문화시설은 전국 2800여개 가운데 36%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특히 미술관은 전국 200여개중 5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의 힘을 전 국토로 확장시켜서 나라 전체를 품격 높은 문화국가로 격상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자체간 경쟁이 치열하고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 전에 자료를 만들어 전국 공모를 공식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수도권 정치인들도 반발 가세...정부는 침묵


비수도권이 지역구인 야당 의원들도 황 장관의 발언에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부산 중구영도)은 "수도권 위주의 정책과 투자는 비수도권을 홀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이 규정한 가치를 위배하는 것"이라면서 "이건희 미술관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비수도권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대구 북구을이 지역구인 김승수 의원은 "황희 장관은 지방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이달곤 의원(창원 진해)과 같은 상임위 소속인 최형두 의원(창원 마산합포)은 공동으로 "정부는 극심한 문화양극화에 따른 지역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귀 기울여야 한다"면서 "문화역량 배분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은 역대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였다는 것을 문체부 장관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 장관의 발언으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지만 정부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수도권 유력설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듣는 단계이고 아직 확정이 된게 없어 드릴 말이 없다"면서 "6월 중에는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국가 문화 정책 차원서 방향 수립해야"


전문가들은 최소한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예술품들이 여러 지자체에 분산 배치돼서는 안된다는 공통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회장 유족들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이중섭의 '황소',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등 이 회장이 평생 모아온 개인소장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중 인왕제색도 등 고미술품 2만1600여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 현대 미술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김종영, 허백련, 박수근 등 컬렉션의 일부는 작가 연고지가 있는 지자체 박물관과 작가 미술관에 기증됐다.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는 "기증 작품은 한데 모여 있을때 책임 소재가 명확해 지고 집중적으로 공동 전시·기획, 연구, 유지관리 등이 가능하다"면서 "(지자체 반발을 고려해)각 지자체로 작품을 나눠 보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수미 비채아트뮤지엄 관장은 "이건희 컬렉션이 분산 배치되면 작품을 받은 곳은 각자의 입장이 있어서 기증 취지를 살리기 힘들 것"이라면서 "코로나19가 끝나면 국내·외 관광객들의 명소가 될 수 있는 만큼 분산 배치는 지양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김성환 경기도박물관장은 "이번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은 회화, 고문서, 공예 등 전 분야에 걸쳐 한국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하는 정도의 수준"이라면서 "각 지자체의 유치 당위성 이유 보다 국가의 문화 정책 차원에서 방향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지자체에서 욕심을 낼 수 있지만 이건희 컬렉션은 큰 틀에 묶여 있어야 힘이 유지되고, 증폭이 된다"면서 "일반 국민에 대한 공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보존이고 연구다. 미래 후손들에게 어떻게 잘 가꾸고 보존해서 잘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이런 측면에서 분산 배치가 된다면 최악의 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방방콕콕'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생하는 따끈따끈한 이슈를 '콕콕' 집어서 전하기 위해 매일경제 사회부가 마련한 코너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소식부터 지역 경제 뉴스, 주요 인물들의 스토리까지 다양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현장에서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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