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울회생법원 막내판사들이 말하는 '요즘 법원' [스물스물]

입력 2021/06/19 09:29
수정 2021/06/20 14:08
법원, 법조일원화로 MZ세대 유입 느린편
다른조직 세대갈등 반면교사로 자정노력
부장판사 되기 전 세대갈등 예방 교육도
합의부 부장·배석판사 공동체문화도 변화중

요즘 판사, 법정 들어갈때 서류 대신 태블릿PC
태블릿PC 재판활용법 코트넷에 공유하기도

서울회생법원, 지난해 회생·파산사건 5만건 처리
파산자 낙인 씌우는 채무자회생법 개정 화두
재산이전 등 도덕적 해이 발견되면 면책 불허
부작용 방지 위해 노력…도산 제도 순기능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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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회생법원 회의실에서 김성인 판사와 한옥형 판사(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법원은 서울회생법원이다. 경제 고도화에 따라 회생·파산사건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법원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17년 3월 출범해 올해로 만 4년차다. 부도난 기업을 회생시켜 근로자 고용을 유지하고, 요건을 갖춘 채무자의 빚을 면책해 사회로 복귀시키는 일을 맡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코로나19가 덮친 지난 한 해만 5만건 이상의 회생·파산사건을 처리했다. 올해로 만 4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법원의 막내판사들로부터 '요즘 법원' 이야기를 들었다.

아래는 1문1답.

- 자기소개를 해달라.

= 한/ 한옥형 판사다. 83년생이고, 연수원 41기다. 연수원 수료후 곧바로 판사로 임관했다. 판사로 일한지 올해로 10년째다. 연수원 출신 법관 가운데서는 막내급이다. 작년부터 서울회생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 김/ 김성인 판사다. 82년생이고, 변호사시험 3회 출신이다. 재판연구원을 마치고 변호사로 일하다가 2018년 법관에 임용됐다. 올해로 4년차 판사다. 회생법원 법관 중 기수 기준 막내다.

- 신임 판사와 고참 판사 간 세대갈등은 없나.

= 김/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세대갈등은 존재했다고 하지 않나. 법원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는 만큼 갈등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다른 조직 대비 두드러지는 것 같지는 않다. 판사들 사이 업무적으로 지시관계가 없는 영향인 것 같다. 법원은 법조일원화로 MZ세대 유입이 느린 편인데, 유입속도가 빠른 다른 조직이 먼저 겪은 세대갈등을 반면교사 삼아 자정작용이 이뤄지는 면도 있다.

= 한/ 세대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도 있다. 지법 부장판사가 되기 전 초임 부장판사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연수 과정 중에 이같은 갈등을 예방하는 내용의 교육이 있다. 법원 내 고충처리위원회도 있다. 갈등이 생겼을 경우 초반에 해결하기 위한 제도다.

- 요즘 법원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나.

= 김/ 디지털 기기를 재판업무에 능숙하게 사용하는 법관이 많아졌다. 민사사건의 경우 전자소송이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게 편해지기도 했다. 법정에 종이서류 대신 태블릿 PC를 지참하는 판사도 많다.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서 태블릿PC를 재판에 유용하게 활용하는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 자기 표현에 적극적인 젊은 판사들이 유입되면서 SNS를 하는 법관도 늘어났다.

= 한/ 합의부 배석판사들이 같은 부 부장판사와 꼭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도 옛말이다.


10년 전 제가 초임일 때만 해도 이같은 '공동체 문화'가 공고했지만 몇년새 각자의 자율을 보장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혼밥'을 좋아하는 부장판사는 자처해서 따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부장판사가 앞서 걷고, 배석판사가 양쪽에서 뒤따라 걷는 '학익진' 풍경도 요새는 보기 힘들다. 걸음이 빠른 사람이 앞서 걷는다.

외부에서는 법원사회가 극히 보수적일 것이란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외로 변화에 열려 있다. 여러 법적 다툼을 해결하는 게 판사들 일이지 않나. 일적으로 합리적이고 유연해야만 하는 만큼 일상생활에서도 '꼰대'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을 다들 갖고 있다.

- 근무처인 서울회생법원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 한/ 회생·파산 제도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도산절차는 속도가 생명이다. 신청자가 신속하게 절차를 마무리하고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제출 서류를 간소화했다. 파산과 관련해서는 채무자회생법 개정이 화두다. 파산자에게 씌워지는 낙인효과를 염려해 파산신청 자체를 꺼리는 개인과 기업이 많다. 파산과 얽힌 부정적인 이미지를 용어 변경을 통해 개선하려고 한다. 마치 사형선고를 연상시키는 '파산선고'를 '파산개시결정'으로 변경하는 등이다. 도산제도 실무서인 '채무자회생파산실무' 책 개정판에 개인도산과 관련해 변화된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회생법원 판사들이 교재 개정 TF를 꾸려서 작업중인데, 9월까지 마무리하는게 목표다.

- 회생법원 법관으로 일하며 자주 드는 생각은.

= 김/ 법인회생 업무를 하면서 본 많은 회사들이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버티고 버티다 너무 늦게 회생신청을 한다는 거다. 회사를 계속 운영할 때 창출되는 계속가치와, 회사를 처분했을 때 남는 청산가치를 비교했을 때 계속가치가 높아야 회생을 허가한다. 그런데 기업이 어려운 시기를 오래 겪다 보면 계속가치가 낮아지게 된다. 청산가치가 계속가치를 넘어선 상황에서 회생을 신청하면 인가가 어려워 결국 파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늦은 신청이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회생을 겪은 회사'라는 낙인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고 하다가, 해도 해도 안될때 최후의 수단으로 법원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법원의 도산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좀 더 전향적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법원 차원에서도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 가족 중 한 분도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회사가 어려울 때의 힘든 상황을 저도 잘 알고 있다. 그때 만약 회생법원이 있었다면 회생신청을 적극적으로 고려했을 것 같다.

- 채무자의 빚을 덜어주는 도산제도가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는 지적도 있다.

= 한/ 절차를 남용하는 사람을 거르기 위해 법관과 조사위원 등이 함께 노력한다. 채무자가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이전하거나 빚을 과장되게 부풀리는 등 도덕적 해이가 확인되면 면책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이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부작용을 염려해 순기능이 큰 제도 자체를 배척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 누구든 실패할 수 있다. 실패한 사람을 매장하거나 격리할 게 아니라 다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끔 기회를 주는게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게 도산제도다.

- 민형사 사건을 처리하는 판사와 회생법원 판사의 업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 한/ 민형사 담당 판사는 법에 비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재판을 한다. 그러나 회생법원은 재판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 도산 위기의 채무자가 와서 재기를 꾀하는 곳이라는 차이가 있다.

회생법원 법관으로 일하는 보람도 여기에 있다. 채무자가 법원에서 면책을 받아 홀가분하게 새출발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제도 남용자를 가려내는 데도 각별히 신경쓴다.

민사재판을 할 때는 손해배상금 1원 단위까지 철저하게 계산하다가 회생법원에서는 채무를 탕감하는 일을 맡게 되니 적응이 어렵다고 토로하는 법관도 많다. 그러나 실패를 겪은 개인,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이 일도 사회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 마인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 김/ 도산업무는 문제 해결 방식에 정답이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민형사 재판은 법률에 따라 판결서에 일종의 '정답'을 쓰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재판과정이 정형화된 면이 있다. 그러나 회생절차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M&A를 시도한다면 그걸 회생 개시 전에 하느냐, 후에 하느냐를 고민할 수도 있고, 최근 쌍용차 회생건으로 잘 알려진 ARS(자율구조조정지원) 등 새로운 제도를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채무자나 채권자 뿐 아니라 회생위원, 조사위원, 파산관재인 등 회생·파산 업무에 관여하는 여러 사람들과 협업한다는 점도 일반 재판업무와의 차이점이다.

- 법관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 한/ 도산분야에서 전문성을 쌓는데 주력하고 있다. 회생법원의 가장 큰 특징은 '적극성'이다. 새로 생긴 전문법원이라서 그런지 주체적으로 바꾸고 만들어갈 게 많다. 서울회생법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만들어진 교재를 읽고, 배당되는 사건을 처리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면 이곳에서는 새로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 김/ 초심을 잃지 않는 법관이 되고 싶다. 아까 언급했듯이 제 가까운 가족도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다. 실패한 회사의 아픔과,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겪어서 알고 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삼아 서울회생법원에서도 채무자들을 따뜻하게 보고 도움을 주고자 한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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