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러니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나"…고소고발 대한민국, 경찰 1명 사건 337건 담당

입력 2021/07/28 17:37
수정 2021/07/28 21:46
작년 고소사건 43만건 접수
피의자 기소율은 20% 안돼

온라인상 사건이 가장 많아
일부 시민단체 묻지마 남발

"경찰 조직·인력 재편 등
장기 로드맵 마련해야"
72964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고소·고발이 밀려드니 하나하나 신경 써 가며 일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평소 다루는 사건만 100건 이상이라 업무 피로도가 상당합니다. 결과적으로 전문성을 요하는 업무에도 지장이 가기 마련입니다."

일선 경찰서 수사관들의 고충 토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고소·고발을 담당하는 경찰의 부담이 더욱 늘었다. 올해부터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1차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의 수사 범위가 넓어진 데다 일단 고소·고발장부터 내는 '묻지 마 고소·고발'이 남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시민단체가 정치적 입지를 위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수사관 1명이 300건을 훌쩍 넘는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범죄 수사나 치안 유지에 쓰여야 할 경찰력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과에서 근무하는 수사관 1인당 사건 접수 건수가 337.8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258.2건에 비해 31% 증가한 수치다. 실제 경찰이 접수한 사건은 2017년 26만3000건에서 지난해 43만9100건으로 폭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들은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인터넷, SNS 등에서 명예훼손, 모욕죄 등 사이버범죄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제범죄를 수사하는 수사과에서도 수사관당 90건에 달하는 사건을 처리한다"고 귀띔했다. 일선 경찰서 수사관들은 사건이 밀려들다 보니 제대로 처리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특히 지방의 일부 경찰서에선 별도 사이버수사팀이 없어 업무가 더욱 과중하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사이버수사과의 경우 일반 수사나 형사과보다 사건 수가 많은 게 일반적"이라며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담당 사건이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사건 처리 속도가 늦어진다. 인터넷에 "경찰에 사건을 의뢰했는데 몇 달 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는 글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일부 경찰은 일본과 비슷하게 고소·고발 시 최소한의 인지세를 내도록 해 무분별한 고소·고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고소·고발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기는 비율을 의미하는 기소율은 2015년 이후 20%대 이하로 떨어졌다.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고소·고발이 적지 않기도 하지만, 수사기관의 역량을 넘어서는 고소·고발이 쏟아지면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검찰 통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대검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0년 36만6404건이던 고소 사건은 지난해 42만9547건으로 급증했다.


법무부의 '2021 법무연감' 자료를 봐도 지난해에 고소·고발로 처리된 인원은 84만3712명으로 5년 전인 2016년(74만4960명)보다 10만명가량 늘었다. 자연히 검사들도 피로감을 호소한다. 일선 검찰청은 관할하는 여러 경찰서에서 송치된 사건의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 때문에 검사실에는 사건 서류 뭉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민원인 전화라도 올 경우 기록을 찾는 게 일이라고 한다.

최근 이러한 고소·고발 트렌드를 주도하는 건 시민단체들이다. '프로 고발러'라는 별칭까지 얻을 만큼 시민단체들은 정치·사회적으로 이슈가 발생하면 형사고발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권력층의 불법 비리는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철저한 수사를 통해 처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활동이 자칫 정치적 목적 아래에서 이뤄져 고소·고발 건수를 무리하게 늘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단계가 늘어나 사건 처리 속도가 늦어지고, 그 사이에 또 사건이 접수되는 현실"이라며 "당장 인력 충원보다는 바뀐 제도에 따른 경찰 조직·인력 재편 등 장기 로드맵 마련을 통한 내부 검토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차창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