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이들 굶는게 가장 화나니까 나눕니다"

입력 2021/07/30 17:01
수정 2021/07/30 20:19
[Weekend Interview] 전국 2600곳 참여한 '선한 영향력 가게' 오인태 진짜파스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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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태 진짜파스타 대표가 서울 양천구 사무실에서 `선한영향력가게` 스티커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호영 기자]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진짜파스타' 가게 앞 안내문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다.

하나.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
둘. 뭐든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 줘. 눈치 보면 혼난다.
셋. 매주 월요일은 쉬고 일요일은 5시 30분까지만 영업을 하니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구나.
넷. 다 먹고 나갈 때 카드 한번 보여주고, 미소 한번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
다섯. 매일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 별거 없지? 당당하게 웃고 즐기면 그게 행복인 거야. 현재의 너도, 미래의 너도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 글을 쓴 사람은 진짜파스타 가게 대표 오인태 씨(36)다. 그가 결식아동 대상 무상급식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밥 한번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는데 결식아동에게 제공하는 금액이 적고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사용기준이 제각각이기도 하는 등 뭔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결식아동 대상 무료 식사 운동을 하는 자영업자들의 자발적 모임인 '선한영향력가게'를 이끌게 된 계기 역시 단순하다. 화나는 일을 보고는 참지 못한다는 그를 만났다.

―선한영향력가게를 시작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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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식아동 무상급식을 시작한 직후인 2019년 7월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동생과 함께 오후 8시께 가게에 왔다. 가게가 홍대 클럽거리에 있어 그 시간에 아이들이 온 게 의아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잘 먹고 갔는데 '내가 실수했구나. 진짜 잘못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파스타 한 그릇이지만 아이들은 그 음식을 먹으러 경기권에서 왔다고 한다. 돌아가는 길도 1~2시간 걸릴 텐데 그날에서야 시작한 게 후회가 됐다. 마침 그날 대전의 한 호프집 사장님이 연락을 줬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결식아동 무상급식사업에 참여하고 싶은데 호프집 특성상 등록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안주나 아이들이 먹어도 괜찮은 음식을 도시락 형태로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인터넷에 글을 잘못 올리면 욕을 많이 먹을 수 있어 염려하고 있었다. 자영업자들은 그런 부분을 두려워한다. 얘기를 듣고 호프집 사장님에게 내가 이미 욕을 먹고 있으니 내가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우리와 같은 가게가 전국에 많으면 아이들이 굳이 2~3시간 걸려서 오지 않아도 되고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내 가게에서의) 결식아동 무상급식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선한영향력가게도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다. 아이들이 다녀간 뒤에 선한영향력가게를 모집한다고 SNS에 올리면서 시작하게 됐다.

―참여 가게가 많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이 모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참여를 희망하는 분이 많았다. 시작한 지 얼마 후인 2019년 7월에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님이 격려 편지를 보내줬고 이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폭발적으로 늘었다. 작년 말 기준으로 700여 개다. 코로나19로 폐점한 가게를 포함하면 900여 개가 된다.


올해 3월께 방송뉴스에 출연하며 더 늘었다. 이달 29일 기준으로 2638개다. 홈페이지(선한영향력가게.com)를 통해 참여 신청을 할 수 있으며, 가게 위치와 정보는 지도 정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참여 조건이나 기준이 있나.

▷없다. 무엇이든 아이들을 도울 수 있으면 된다. 다만 (참여를 원하는) 사장님들에게 꼭 부탁하는 것은 주고 싶은 마음이 끝이 없겠지만 절대 처음부터 너무 크게 설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길게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달라고 부탁한다.

―업종별로 어떤가.

▷식당 등 요식업이 (전체의) 70% 정도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학원이 많다. 학원에는 체육관이 포함되는데 체육입시, 합기도 등으로 10% 정도다. 미용실, 목욕탕, 세탁소, 안경점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걸 제공해주는 곳이 5~10%다. 상을 당했을 때 인력서비스를 해주는 장례업체도 있다. 펜션도 있다. 비수기 때 아이들이 예약하면 사용할 수 있게 장소를 제공해준다.

―코로나19로 선한영향력가게들도 힘들 것 같다.

▷다들 어렵다. 내 가게도 코로나19 이전보다 매출이 50~60% 줄었다. 하지만 폐업해 선한영향력가게를 중단한 경우는 있어도 영업을 하면서 선한영향력가게를 그만하겠다고 한 경우는 없다. 할당량이 있거나 그런 게 아니다. 하루에 한 명에게 한 그릇이라도 해줄 수 있으면 된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게 목적이다.

―가게는 어떻게 운영되나.

▷선한영향력가게 상징 스티커를 만들었다. 우선 아이들이 보기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이유는 우리 나름의 통일성을 가지려고 한 거다. 순수하게 진심으로 하자는 것뿐이다. 회원분들에게 회원비를 받는 것도 아니다. 가입이나 탈퇴가 자유롭다. 현재는 사단법인을 설립 중이며 더 많은 나눔활동을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하나둘 찾아오면 참여하는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편의를 제공해주는 일이 이렇게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인 줄 몰랐다며 대부분 울먹거린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짜증날 때도 있지만 그런 전화를 받으면 마음을 다잡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는 관계가 되는 것 같다. 개인 건강상 이유로 가게를 접으면서 (선한영향력가게를) 탈퇴한 사장님이 있었다. 암수술을 받기 전에 연락이 와서 가게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도 (선한영향력가게를) 계속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더라.

―또 다른 경험이 있다면.

▷작년 겨울부터 너무 힘들었다. 코로나19로 홍대 일대, 가게 옆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다. 가게 사정도 안 좋고 개인적으로 힘들어 수면 보조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당시에 한 예능 유튜브 채널(와썹맨)에 출연했는데 댓글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작년 1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신세를 졌는데 눈치 안 보고 잘 먹었다'며 고맙다는 내용의 댓글이었다. 그 글을 보고 바로 수면 보조제를 끊게 됐다. 힘들었던 것이 그 순간에 다 풀렸다. 내가 큰 무언가를 원한 게 아니고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번 듣고 싶었던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구독자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채널에서 공개적으로 (선한영향력가게를) 이용했다고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눈치 보지 말고 밥 편하게 먹자'고 항상 얘기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눈치를 많이 본다. 그 아이가 눈치 안 보고 잘 먹었다고 말해준 것만으로도 처음의 우리 목표는 지킨 셈이다.

―보통 어떻게 이용하나.

▷일반 손님과 같이 주문하고 식사한 뒤 결제할 때만 VIP카드를 보여주는 것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다 똑같다. 쭈뼛거리고 눈치 본다. 두 번은 와야 한다. 두 번 오면 세 번째부터는 대부분 편하게 웃으면서 들어온다. 아이들은 두 번 정도는 와야 우리가 삼촌, 이모처럼 진짜로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의심하고, 두 번째는 또 될까 갸우뚱하고, 세 번째부터는 편하게 온다. 부모님이랑 같이 와서 부모는 안 시키고 아이 것만 시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음식이 나갈 때 주문을 잘못 받아서 만들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드시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식으로 같이 음식을 드리곤 했다.

―오해를 받은 경험이 있다면.

▷제일 열 받는 게 애들 팔아서 장사한다는 내용이다. 내(진짜파스타) 가게는 선한영향력가게를 시작하기 전인 2018년 7~8월부터 대박 매장이 됐다. 이전에도 홍대 가성비 맛집으로 알려지며 학생들이 많이 찾아주는 가게였다. 초창기 파스타 가격이 5000~6000원대, 음료수 500㎖가 무한리필로 400원이었다. 소방공무원 무상급식, 헌혈증 파스타 교환 등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사실 돈이 없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장사가 잘됐었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힘들 때가 언젠가.

▷악플이 달릴 때다. 연예인이 왜 자살하는지 알겠다고 아내와 얘기한 적이 있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얼마든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을 겪었다. 악플 중에 상처를 준 글이 '요즘에 대한민국에서 굶는 애들이 어딨어'란 내용이다. 가장 처음 받은 악플인데 잊히지 않는다. 해외 아동은 굶어 죽는 경우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안 그렇다는 것인데,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보호종료 아동이나 보육원 아이들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이들은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어른들이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는다.

―결식아동 외에도 선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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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는 장기 기증 서약자다. 짧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던 그는 현재 소아암 어린이에게 모발을 기증하기 위해 머리를 기르고 있다. [김호영 기자]

▷화제가 된 것은 결식아동이지만 이전에 하던 것이 꽤 있다. 소방공무원 무상급식부터 시작했다. 2018년 7월 말이다. 헌혈증을 주문한 음식 중에 제일 비싼 것으로 교환해준 것이 2018년 8월부터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팔찌를 구매해 무상으로 손님에게 배포했고, 홍대에서 학생들이 길고양이를 돌봐주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사료를 후원했다.

―선행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천성적으로 화가 많다. 대부분 기사를 보고 (선행을) 시작했다. '착한 분노'라고 표현해주는데 모두 열 받아서 한 거다. 화가 나는 부분에서 눈을 돌리거나 도망가고 싶지 않아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여건이 됐을 때 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늘 하는 말인데 전국의 많은 삼촌 이모가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받은 상처 때문에 의심할 수 있는데 한 번만 더 믿어주고 찾아와줬으면 좋겠다.

―동참하고 싶은 자영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나눔이라는 게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초기에 '돈이 많다' '건물주다'란 오해를 받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가게는 모두 임대이고, 난 LH 신혼부부 전세임대로 산다.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도 한다. 100원이 있어서 10원을 나눠야지보다는 1원만 나눠도 괜찮다. 대부분 나눔을 하려는 사람들이 '내가 없는데 뭘 어떻게 해'라고 하는데 술 한잔 안 먹으면 되고, 외식 한번 줄이면 충분히 된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1원이든, 단 한 그릇의 음식이든 상관없다.

▶▶ 오인태 대표는…

1985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여러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근무한 후 2016년 말 서울 홍대 인근에 '진짜파스타' 가게를 열었다. 2019년 6월 찾아오는 결식아동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일을 시작했으며, 이후 '선한영향력가게'를 모집해 현재까지 이 운동을 이끌고 있다.

[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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