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이든 남자를 추하게 하는 권탐·색탐·식탐 [노원명 칼럼]

노원명 기자
입력 2021/09/19 09:25
수정 2021/09/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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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에 박지원 국정원장과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씨 관계의 '실체'를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지난 일주일 이 나라 모든 술자리 안줏거리이자, 점심상 디저트가 된데 이어 추석상까지 오를 기세다. 1942년생으로 올해 정확히 한국나이 여든인 박 원장은 특히 동년배들로부터 집중적인 경원과 질시를 받고 있다. 팔십 나이에 34살 여인과 호텔에서 밥먹고 차마시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부러우면 지는것. 박지원은 하루아침에 고령화 한국에서 살아가는 늙은 남자들의 역할모델이자 우상으로 부상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박지원은 더구나 보통의 잣대로는 계측할수 없는 '난 인생'이다. 박지원쯤 되면 세상의 평범한 인생들과 그들이 떠드는 지청구가 하찮게만 들릴 것이다.


그럼에도 삼십년쯤 더 살아야 박 원장 나이가 될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저렇게 살아야 하나'.

 나이 팔십에 공직에 봉사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그런 케이스는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국정원장은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다. 국정원장은 권력의 하수구를 들여다본다. 국정원장의 권력은 상징으로서, 시스템으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날 권력'이다.

 조성은은 지난 2월 국정원장 공관을 다녀온후 페이스북에 박원장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다 공개하면 딴 건 모르겠고 이혼할 사람은 많을 거다라고만 전하라 했다", "날던 새가 떨어지던 시절을 넘어 내가 걸어가도 새가 안 날긴 하던데", "그래도 제대로 한판 해볼까?하면 십리 밖으로 줄행랑칠 것들이". 하수구를 파 얻은 정보로 누군가의 약점을 잡고, '한방에 갈 것들이'하며 비웃고, 그런 맨근육을 손녀뻘에 가까운 여성을 상대로 과시하고···팔십 나이에 분노와 적의, 경멸, 과시욕에 휩싸여 살아가는 모습은 보통 사람이 보기에 처연하다. 권탐(權貪), 노년에 권력에 너무 가까이 가면 체면을 지키기 어렵다. 그 나이에는 권력욕망보다는 지혜 욕구를 자극하는 공직을 택하는게 현명하다.


 조성은씨가 SNS를 통해 박 원장과 주고받은 말을 보노라면 무척 친밀한 관계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본인 주장대로 존경하고 아끼는 정치 선후배 관계인지, 윤석열 캠프측이 주장한 '정치적 수양딸'인지, 유튜버들이 떠드는 보다 은밀한 관계인지는 알수가 없다. 이런 일은 결코 실체가 밝혀지지 않는 법이다. 다만 역시 보통 사람 시각에선 '박지원은 참 간도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 없다.

 요즘 일반회사의 부서장이 이성 부하직원과 따로 밥을 먹는다면 간 크다는 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미투와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로 이성간 어울림이 최근 몇년새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조씨는 박원장 부하는 아니다. 실은 그게 더 문제다. 왜 바빠야 할 국정원장이 사적인 만남을 그렇게 자주 갖는가 말이다. 세상에는 단둘이 만나도 '우정'으로만 교류하는 남녀가 있다. 겉으로는 담백하지만 젊은 이성을 지켜보고 대화하는 것만으로 동성에게서 얻지 못하는 즐거움을 얻는다면 그것도 색탐(色貪)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권력이 개입되는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세상의 눈을 두려워해 많은 상사들이 이성 직원과의 만남을 피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날권력을 가진 박 국정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은 것같다. 권력이 색(色)으로 연결되면 추해 보인다. 물론 둘의 관계가 지고지순할수 있다.


그러나 실제 관계와 남이 보는 것은 다른 것이고 박 원장 나이쯤 되면 그런 오해를 산다는 것 자체로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박-조 회동의 무대가 된 그 호텔 그 식당을 딱 한번 가 보았다. 메뉴판 가격을 보는 순간 입맛이 싹 달아났던 기억이 있다. 국정원장쯤 되면 그 식당을 구내식당처럼 이용할 특권이 주어지는 모양이다. 권력자나 정치하는 사람이 고급 레스토랑을 드나드는 것을 오랜세월 의구심을 갖고 지켜봐왔다. '저 돈이 어디서 나오나'. 먹는 문제에도 권세를 발휘하는 모습은 솔직히 꼴사납다.

 권력자는 식탐(食貪)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YS 리더십의 가장 큰 매력은 그가 좋아했던 시래깃국과 칼국수에서 찾을수 있다. 권력자는 칼국수 한그릇만 내어도 사람들이 꼬이게 되어 있다. 그걸 도리어 칭송한다.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껏 스쳐온 기자 중에 외부와 점심 약속을 잡지 않고 동네 골목식당만 가는 선배가 있었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신세질 일 없다'는 독립정신이었을 것이다. 취재원들과 사적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도 특종이란 특종은 다 썼다. 그가 사 주는 오천원짜리 백반이 그렇게 맛이 있었다. 인격은 점심값과 비례하지 않는다. 권력도 그럴 것이다.

 평균적으로 오래 살아야 하는 시대다. 의술 발달로 나이가 들어도 청년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건강뿐 아니라 욕망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다. 나이 팔십에도 권력과 이성과 음식을 탐한다. 권탐, 색탐, 식탐. 마치 평생 '비아그라'로 지탱되는 인생처럼 보인다. 나이든다는 것의 미덕, 더 너그럽고 현명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 박-조 파문을 보며 든 생각이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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