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때 꿈의 직장이었는데 이젠 어디든 탈출하고 싶네요" 코로나 3중고 우는 항공사 승무원

차창희 기자
입력 2021/09/19 11:13
수정 2021/09/19 15:04
무급 휴직에 결국 외항사 퇴사
이직 성공하면 "탈출 축하" 메시지
2대 항공사 합병 속 온도 차도 커
기수 문화·인사시스템 불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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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요즘 '캐빈 크루(승무원)' 사이에선 이직에 성공한 동료가 나오면 "탈출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항공업계가 사실상 마비되는 등 업황이 불안정해지고 근무와 휴직을 반복하는 시스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계 항공사에 재직하던 A씨(33)도 길어지는 불황 속 '무한 무급 휴직' 통보를 받은 후 결국 퇴사했다. A씨는 제2의 직장을 찾기 위한 구직 활동 중이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쉽진 않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충격을 직접적으로 맞이한 항공업계 승무원들은 우울증,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지내는 현실이다. 실제 지난해 말 서울 강서구의 한 주택에서 국내 항공사 승무원 B씨(27)가 숨진 채 경찰에 발견되기도 했다.


B씨는 강제 휴직기에 들어간 후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내 장기는 기증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A씨처럼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승무원들이 많이 선택하는 플랜B는 그간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금융·서비스직이라고 한다. 한 국내 항공사에 재직 중인 승무원은 "강사, 비서 외에도 시험 준비를 통해 대기업, 공기업에 입사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때문에 휴직기 동안 이직을 위한 학원을 다니거나 그룹 스터디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항공업계에선 '빅 딜'이 예정돼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따른 통합 저비용항공사(LCC)의 출범 가능성 등 많은 변화가 예고된 셈이다. 이에 따라 항공사별 승무원들의 속마음은 천차만별인 현실이다.

한 대한항공 승무원은 "다들 코로나19가 끝나길 바라며 버티는 상황"이라면서도 "대한항공 내부엔 다른 항공사와는 다르게 합병 관련 조급해하거나 크게 불안해하는 느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사자는 "오히려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시기에 코로나19로 인해서 오히려 쉬면서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반면 통합 대상 항공사의 승무원들은 불안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한 LCC 승무원은 "큰 집이 우리를 버린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근무 체계, 시스템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지상직들의 경우 통합 조직에 대한 로드맵이 그려지곤 있지만 승무원 관련해선 별 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승무원들은 회사의 조직문화에 대해 고충도 토로한다. 승무원들은 사무장 휘하 4인이 팀을 이뤄 업무를 진행한다. 최근엔 많이 개선됐지만 기수·서열 문화에 눈치보기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 한때는 한 팀원의 잘못이 팀 전체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연좌제'도 있었다고 한다. 한 승무원은 "과거 한 동료가 퇴사할 때 선배로부터 받았던 부조리한 점 등을 인사팀에 보고를 하고 나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승무원들은 입사 후 1~2년 동안 인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점수가 나쁘면 정규직 전환이 불가하다. 일종의 장시간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하지만 승무원들 사이에선 몸이 아파 병가를 쓸 경우 "정규직 전환은 꿈꾸기 힘들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있다고 한다. 때문에 몸이 아파도 병가조차 쓰지 못하고 꾸역꾸역 출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기간이 연장된 건 희소식이다. 다만 연장 기간이 한 달에 불과해 결국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항공업계에선 당장의 급한 불은 껐다는 분위기지만 향후 정부의 추가 지원책을 바라고 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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