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수사권 조정에 일감 폭주…경찰, 고소장 '문전박대' 일쑤

입력 2021/09/26 18:02
수정 2021/09/26 23:05
대형범죄만 檢수사 허용하자
경찰로 사건 고소·고발 몰려

인력 부족탓 수사 질질끌고
"알맹이 없다"며 취하 압박도
검찰 기소 전년비 16% 감소
법조계 "구조부터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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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문전박대를 당하다 보니 고소장을 등기우편으로 보내곤 한다. 이럴 때조차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접수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골치다."

10년 넘는 경력을 가진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근 겪게 된 경찰의 '고소장 반려' 상황을 설명하며 이같이 토로했다. 검경 수사권조정으로 사건 접수가 경찰로 몰리자 벌어진 부작용이다. 법조인들은 사건 접수 '병목 현상'은 결국 수사 장기화로 이어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26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변호사들이 경찰에 접수한 고소장이 반려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수사기관은 고소장 접수를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경찰이 이런저런 반려 사유를 들어 접수하기를 거부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전관계가 얽힌 사건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고소(형사소송)가 아니라 민사소송을 걸어야 할 사안'이라고 반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분은 경찰 말을 듣고 민사절차를 밟기 위해 날 찾아왔는데, 사기 혐의를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변호사는 "고소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안 될 것 같은데 고소 취하도 생각해보라'고 은근한 압박을 하기도 한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주요 원인으론 고소·고발 접수 창구의 경찰 일원화가 꼽힌다. 당초 사건 접수는 검찰과 경찰 모두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조정으로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사건)를 제외한 사건들의 접수 권한을 잃었다. 대형 사건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건 접수·수사권한이 경찰에 몰린 것이다. 일선 경찰들은 수사인력은 그대로인 반면 접수 사건들이 늘어나 사건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건 접수 '병목현상'은 수사가 장기화하는 부작용도 낳는다. 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접수만 하고 처리를 하지 않는 '캐비닛 사건'이 되면 딱히 손쓸 수가 없다"고 우려를 보였다.

통계도 수사 지연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대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경찰이 기소 혹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거나 수사중지를 통보한 사건은 53만8889건으로, 전년 동기(58만6250건)보다 8% 줄었다. 최종 기소건도 대폭 감소했다. 검찰은 올해 상반기 송치건 중 16만3730건을 기소해 전년(19만4252건)보다 15.7%나 줄었다. 전직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기소건수가 15% 넘게 하락한다는 것은 사건 처리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수사인력이 확충되지 않는다면 '풍선효과'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 변호사는 "수사인원은 그대로인데 사건이 늘어난다면 사건 하나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 것"이라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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