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적십자, 미군도 떠난 아프간서 구호활동"

박홍주 기자
입력 2021/10/20 17:12
수정 2021/10/21 12:01
메이즐리시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방탄조끼 벗고 아프간인 만나
진정성 인정받고 30년째 활동
내전 와중에도 인명피해 없어

팬데믹에 평양 사무소서 철수
코로나 풀리면 북한 지원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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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 8월 철수한 뒤로 두 달가량 지났지만 적십자 봉사자들은 지금도 현지에 남아 있어요. 불발탄과 지뢰가 여전히 목숨을 위협하고 있지만 그들은 방탄차량을 타지 않죠. 도움이 필요한 아프간인을 만날 때 방탄조끼를 입지 않는 것은 물론입니다."

최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데이비드 마이클 메이즐리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한국사무소 대표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지역 활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봉사자가 무장을 해제하고 일해야 아프간인에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떤 분쟁 지역을 가더라도 현지인의 정치 체제와 문화를 존중하면서 적십자만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메이즐리시 대표는 "적십자가 아프간에서 30여 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방식이 느리더라도 가장 확실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프간 전역에서 운영하는 신체재활센터는 모두 7곳에 달하는데, 올해 상반기에만 8만여 명이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메이즐리시 대표는 미국 뉴욕대 로스쿨을 졸업한 국제 인도법 전문 변호사다. 고액 연봉을 보장하는 로펌의 문을 두드렸을 법도 하지만 그는 구호활동에 매력을 느껴 코트디부아르, 차드, 콩고공화국, 케냐 등과 같은 분쟁 지역을 거쳤다. 그는 작년 11월 한국사무소에 부임했다. 그 배경에 대해 "서울에 두 차례 방문한 뒤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했다는 확신을 얻었다"면서 "한국과 미래 관계를 다지고 싶어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교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북한에도 사무소를 두고 활동하고 있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닥치면서 지난해 말 모두 철수했다. 메이즐리시 대표는 "한국은 매우 평화롭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전쟁의 상흔이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외교부와 소통하며 ICRC의 대북 지원에 대해 알리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협력을 이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철수하기 전 평양사무소에서는 폭발물 피해자의 재활을 돕고 생계를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누그러져 북한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면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늘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메이즐리시 대표는 여전히 지구상에 분쟁 지역이 많다며 관심을 넓혀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아프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면서도 "콩고나 시리아, 리비아 등 다른 지역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아프간인 특별기여자와 가족 등 390명이 한국에 입국하면서 국내에서도 분쟁 지역 구호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분쟁 지역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그는 "지뢰 매설 지역을 예로 들면 홍수가 발생한 뒤 폭발사고로 피해자가 발생한다"면서 "분쟁 지역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는 이중으로 피해를 끼친다"고 설명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1863년 설립돼 158년간 전쟁과 내란 속에서 피해자를 돕고 있는 인도주의 기구다. 대한적십자사를 포함해 전 세계 192개국의 적십자·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를 회원으로 둔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와 함께 국제적십자운동을 구성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구호기관으로 창시자 장앙리 뒤낭(1901년·초대)을 시작으로 네 차례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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