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농아인 야구 메카 소리듣는 충주…묵묵히 뒷바라지해온 여걸 사장님

입력 2021/12/03 17:33
수정 2021/12/04 07:36
진성로프배 농아인 야구대회
5년째 끌고 온 김진숙 대표

대기업 지원 중단에
없어질뻔한 농아인대회
지역 중소기업이 떠맡아

회사직원 10%도 농아인
"성실하고 시각능력 뛰어나"
111497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달 13일 김진숙 진성로프 대표가 제5회 전국 농아인 야구대회 개최를 축하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진성로프]

슬쩍 봐선 흔히 볼 수 있는 야구 경기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르다. 경기 내내 선수들 사이 아무런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든 선수가 수어로 의사소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느 비장애인 야구 대회 못지않은 열기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지난달 13일과 14일 이틀간 성황리에 열린 제5회 진성로프배 전국 농아인 야구대회 모습이다.

이 대회를 5년째 단독으로 주최하고 있는 김진숙 진성로프 대표의 야구와 농아인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농아인이라고 무조건 비장애인보다 못할 거라고 보는 건 오산이에요. 듣지 못해서 여러모로 손해이고 훈련으로 극복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대신 장점도 있죠. 청각에 대한 보상감각으로 동체 시력이 엄청나게 발달한 분들이 많아요. 6개월 배우고 시속 140㎞가 넘는 공을 능숙하게 때려내기도 하죠.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커티스 프라이드 등 농아인 선수들이 활약한 적도 있답니다."

사실 5년 전 해당 농아인 야구대회는 사라질 뻔했다. 대회를 후원하던 대기업이 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한국농아인야구연맹이 다른 기업들을 수소문했지만 모두 난색을 표했다. 고립무원인 야구대회 앞에 흔쾌히 구원투수로 나선 이가 김 대표였다. 대기업이 후원하던 대회를 종업원 50명 남짓인 중소기업 혼자 떠안은 셈이었다. 김 대표는 "충주가 농아인 야구의 발상지인데, 충주 향토기업인으로서 그 명맥이 끊기는 걸 두고 볼 순 없었어요. 부족할지 모르지만 해보겠다고 나섰죠"라고 말했다.

충주시는 장애인 교육의 메카다. 농아인 학교를 비롯해 영역별 장애인 특수학교가 집중돼 있다. 10년 전 농아인 야구를 주제로 흥행했던 영화 '글러브'의 배경과 주인공이 바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다. 이 때문인지 시 규모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투자는 물론 시민들의 관심도도 높다.


김 대표는 "야구대회 주최의 기회가 온 것도 어찌 보면 인연이고 축복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진성로프배 농아인 야구대회는 코로나19 여파로 다른 장애인 체육대회가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올해 유일하게 열린 장애인 스포츠 종목 대회다. 야구는 명실상부한 농아인 사이 '최애' 스포츠다. 그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 과 김 대표의 극진한 지원 덕분인지 올해도 무사히 대회가 마무리됐다.

김 대표의 관심은 야구대회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업인으로서 농아인 고용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진성로프 내 정사원으로 근무 중인 농아인 직원은 10% 정도다. 김 대표는 "기본적으로 모두 성실하세요. 청각능력이 필요없는 분야, 예를 들면 부속품을 담고 품질을 검사하는 일을 하시는데 시각 능력이 뛰어나 업무능력도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농아인이라고 비장애인들과 따로 분리돼 근무하진 않는다. 모두 격의없이 융화해서 생활하고 있다.


진성로프는 농아인들과 비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수어통역사를 초빙해 점심시간때마다 전직원을 대상으로 수어 등을 교육 하곤 했다. 사내 농아인 비율을 조금씩 늘려온 김 대표는 앞으로 농아인 직원 비율을 더 늘릴 계획이다.

김 대표가 농아인을 비롯한 장애인에게 유독 관심을 갖게 된 건 가족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저는 우리 세대에서 드물게 형제가 단 하나뿐이었어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사람에 대한 애착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장애인을 돕다 보면 그들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 그저 좋았죠." 김 대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손잡고 함께 간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며 장애인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촉구했다.

매년 일정 중에는 진성로프 측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야구팀을 초청해 진행하는 농아인과 비장애인 팀 간 친선경기도 빠지지 않는다. 김 대표는 긴 시간은 아니지만 농아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는 계기라고 믿는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구를 통해 편견과 장벽 없이 어울리고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해요. 굳이 작은 바람을 보탠다면 대회에 더 많은 분이 참가하고 이들의 소리 없는 전진을 응원해 주시는 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충주 =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