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업인 대학총장의 쓴소리…"한국 산학협력 세계 꼴찌 이유는 교수들 철밥통 때문"

남기현 기자, 이새봄 기자
입력 2022/01/02 17:18
수정 2022/01/02 21:31
기업인·대학총장 4인에 K산학협력 길을 묻다
◆ 2022 신년기획 산학협력 신년좌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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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교육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인재 양성은 요원하다."(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기업과 대학 간의 담벼락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인력 유동성을 봤을 때 우리나라는 0점이다."(김이환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총장)

인재가 국가 경쟁력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지만, '인재 강국'으로 불렸던 한국은 인재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인공지능(AI)·바이오 등 산업의 중심 축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 인력은 변화 속도에 맞춰 양성되지 못한다. 한국의 대학교육과 산업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갈수록 심각해지는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현순 두산그룹 고문과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 김이환 UST 총장,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은 매일경제가 마련한 신년 좌담회에서 "현 상태로는 인재난 극복이 어려울 뿐 아니라 글로벌 신산업 경쟁력도 뒷걸음 칠 수밖에 없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사회 = 남기현 벤처과학부장

―현시점에서 한국의 산학협력은 잘 이뤄지고 있나.

▷김이환 총장=한국의 산학협력은 세계에서 최하위다. 산업에서 필요한 인재가 대학에서 나오지 않는다. 반도체 석·박사는 연간 200명이 부족한데, 지난해 학교에서 115명이 배출돼 (부족 인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현순 고문=공감한다. 기업 연구 비중에서 대학 쪽으로 지원하는 연구비가 1%대까지 떨어졌다. 기업의 자체 연구 역량 강화 측면도 있지만, 교수들이 기업의 연구비를 받길 꺼린다. 학교는 중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연구하는데,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조정우 대표=기업 입장에서 보면 한국 대학에 우리가 필요한 연구나 실험을 맡기는 게 상당히 어렵다. 비용 측면에서 봐도 미국 연구소나 대학에 맡기는 게 한국 대학에서 위탁연구를 하는 것보다 싸다. 회사의 기밀이 대학원생들 논문에 실리는 사례도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특허를 내기 전의 기술이 논문에 실리면 큰 손해를 보지 않나.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학교와 기업 간 신뢰가 깨진다.

▷김도연 전 총장=연구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서로 익숙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특히 바이오 쪽은 더 그렇다. 그에 비해 미국 등의 대학은 경험이 많다 보니 지식재산권 관리가 더 잘된다.

―산학협력 수준이 세계 꼴찌라고 하는데, 원인은 뭔가.

▷김도연 전 총장=지난 40년간 한국이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해온 것은 맞는다. 하지만 학교는 학교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말 그대로 기적적으로 각자 발전을 잘해왔다. 게다가 굉장히 빠르게 발전했다. 이제는 각자 빨리 가는 것만으론 대응이 어렵다.


▷김이환 총장=가장 먼저 상아탑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학이 너무 고고하다. 김 전 총장님 말씀처럼 각자도생하다 보니 대학은 그저 탑 안에서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이 상아탑에서 내려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김이환 총장=대학이 교육을 자기들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깨야 한다. 교육을 왜 교수만 하나.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교육과정을 짤 때마다 학계가 아닌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해야 한다. UST에서는 산업계 전·현직 임직원들이 직접 강의하는 '테크 브리지' 프로그램을 도입해 AI·바이오헬스 분야 등에 현장 전문가들을 활용한다. 또한 전공별 수요를 고려해 2~3년 주기로 신규 교과목을 편성한다.

▷이현순 고문=기존 교수들의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산학협력 교수라고 해서 기업 출신 교수가 일부 들어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교수회의에 참석시키지 않는 대학도 많다.

▷조정우 대표=삼성과 SK가 반도체학과를 대학에 세우는 것은 대학에 메시지를 주는 거다. '우리는 이런 역량의 인재들이 필요하고, 앞으로 산업계에서는 이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대학이 배출하지 못하는 건가.

▷이현순 고문=그렇다. 두산이 AI와 관련해 대학에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제안해도 지금 받아서 수행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연구를 할 인력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수 정원이 정해져 있고, 그러다 보니 수요가 몰리는 분야는 연구 수행이 어렵다.

▷김이환 총장=입학부터 졸업까지 그 기간에 존재하는 '교육'이라는 블랙박스가 그간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연구 제일을 추진하면서 오히려 교육이 부실화되는 경향이 있다.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가.

▷조정우 대표=현세대가 가장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 직무교육이다. '회사가 왜 교육을 안 시켜주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 상황을 대학이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SK는 SK유니버시티라는 대학을 만들었다. 직무를 포함해 다양한 교육을 하고, 직원들은 자유롭게 시간표를 짜서 듣는다. 이게 대학에서도 가능하지 않겠나.

▷김도연 전 총장=우리나라의 싸구려 교육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초·중등학교의 경우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까지 올라왔으나 대학 학생 수는 22.8명으로 여전히 평균(15.1명)에 크게 못 미친다. 게다가 학생 1인당 대학 교육비 지출액은 한국이 1만달러로 미국(2만8000달러)의 절반도 안된다. 등록금까지 동결하는 바람에 지역 사립대학은 깨진 유리창도 갈아끼우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현순 고문=산학협력이 잘되는 게 독일 같다. 독일은 대부분 교수들이 기업 출신이다. 기업에서의 경험이 있다 보니 기업이 원하는 것을 교수가 제일 잘 안다. 이걸 보면 참 부럽더라.

▷김이환 총장=인력 유동성은 가치가 바뀌어야 한다. 학력이라는 고정된 값이 아니라 경력 중심으로 가야 한다. 기업 채용 시장을 보면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학력을 보지만 이후에는 무조건 경력을 본다.

―대학 말고 기업 쪽 문제는 없나.

▷김이환 총장=산업계가 대학에 즉시적인 성과를 요구한다면 산학협력 활성화는 어렵다. 교수는 논문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 중심의 프로젝트에 매달리기 어렵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프로젝트 결과로 배출되는 인재들이 갈 곳은 산업계 아니겠나.

▷김도연 전 총장=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한 동네가 동원된다고 했다. 기업과 대학이 인재를 같이 키워야 한다. 유럽의 이공계 대학은 공학 학위를 받으려면 6개월간 기업에서 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받아주는 기업이 없다.

정부, 결과 안보고 대학 연구비 지원만 늘려…되레 산학협력 방해

정부, 유럽 사례 벤치마킹해
산학연 생태계 구축 주도해야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은 결코 적지 않다고 보는데, 제대로 활용되고 있나.

▷김도연 전 총장=나는 사실 지금의 문제가 정부 R&D 예산 증가의 역설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예산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 대학이 기업의 수주를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정부 R&D에만 기댄다. 그러다 보니 대학과 산업계가 같이할 수 있는 게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현순 고문=정부가 많은 R&D 비용을 이미 대학에 풀고 있다. 하지만 이 돈을 대학에 주면서 기업의 수요를 고려해주는지, 돈만 주는지 고민하고 개선해야 한다.

▷조정우 대표=예산 집행과 관련된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에 100% 동의한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끔 배분하고, 국가가 활용 방법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특히 국가 R&D 예산 부분에 산업체 관계자는 한 사람이 구색 맞추기로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산적인 산학협력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뭔가.

▷김이환 총장=필요한 것은 지속성이 있는 시스템이다. 영국에서는 셰필드대와 보잉이 공동으로 설립한 연구기관인 AMRC(Advanced Manufacturing Research Centre)라는 게 있다. 세계 최고의 항공·복합소재 분야 연구소로 회원제로 운영해 보잉, 롤스로이스, 에어버스 등 세계 굴지의 100여 개 기업이 제품 연구개발에 공동 참여한다.

▷김도연 전 총장=네덜란드의 작은 대학인 바헤닝언대 주변에는 600개의 식품 가공업 기업체가 모여 있는 '푸드밸리'가 있다. 특히 이 대학 내에는 국책연구소도 함께 있다. 산학연이 완벽하게 조화가 된 사례다. 우리나라 정부도 돈만 주기보다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조정우 대표=중소기업 지원이 보다 원활히 돼야 한다. 사실 여러 대통령들이 대학에서 나오는 연구소 기업인 '랩벤처'나 스타트업 지원에 대해 선언을 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롤모델이 나오지 않았다. 스타트업이 다음 단계 회사로 인수되고 성장하면서 처음 기업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받게 되는 결과물, 즉 소득에 대한 선례가 정확히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의 경우 기술이나 기업을 넘기면서 '지분을 달라'는 요구를 해 번번이 딜이 깨진다. 이 부분도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순 고문=실질적으로 기술 개발이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이다. 이들은 사실 대학에 줄 돈도 없다. 독자 연구개발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한 R&D 활성화가 필요하다.

[정리 = 이새봄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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