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힙지로 우리가 만들었는데"…쫓겨나는 을지로 상인들 왜?

박홍주 기자
입력 2022/05/02 17:47
수정 2022/05/03 09:22
거리뜨자 쫓겨나는 토박이 상인

청계천 일대 재개발 추진에
을지면옥, 서울시와 소송전
을지OB베어는 강제철거 당해

공구상가 상인들도 한숨
"평생 일한 터전 잃어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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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고 있다. [박형기 기자]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고 2일 실외 마스크 착용마저 해제되면서 서울 시내 주요 상권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한때 '힙지로'로 주목받았던 을지로 골목길은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서울시가 도심 노후 지역에 대한 재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서 영업해온 상인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을지로 골목을 '힙지로'로 탈바꿈시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상인들은 서울시가 이주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을지로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박 모씨는 "재개발 때문에 6월까지만 가게를 운영하고 나가기로 했다"며 "서울 어디든 임대료가 너무 비싸 가게를 옮길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을지로3가부터 을지로4가, 종로3가, 충무로역 일대를 아우르는 세운지구는 43만㎡ 이상으로 서울 최대 재개발 지역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첫 임기인 2006년에 이곳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며 사업이 시작됐지만 박원순 전 시장이 도시재생을 앞세운 보존 정책을 펴며 사업이 진행되지 않다가 최근 속도를 붙여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지지부진했던 재개발 사업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이곳에서 일하던 소상공인들이 떠밀려 나가게 됐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소상공인들에게 재개발 공사 기간에도 임시 상가를 제공해 이들이 영업을 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지만 임시 대책일 뿐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공구상가에서 25년 동안 금속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희명 씨(63)는 "서울시가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정작 이곳에서 평생을 일해온 소상공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에는 무심하다"고 토로했다.

1985년부터 40여 년을 영업하며 을지로의 대표적인 '노포'로 유명한 '을지면옥' 역시 철거가 예정돼 서울시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을지면옥이 있는 세운지구 3-2구역의 대부분 상인은 이미 가게를 접고 철수한 상태였다. 을지면옥만이 황토색 가림막 사이에서 입간판을 세워두고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을지면옥 관계자는 "재개발 보상비라고 해봤자 시세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며 "다른 곳에 매장을 새로 알아보려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날 을지면옥을 찾은 한 손님은 "어머니를 따라서 다섯 살 때부터 이곳을 찾았는데 이제는 남편을 데리고 오게 됐다"며 "오랫동안 정든 단골집인데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니 아쉽다"고 말했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에서 42년을 영업해온 '백년가게' 노포 을지OB베어가 지난달 철거된 것도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2018년부터 을지OB베어는 임대계약 문제로 건물주와 갈등을 겪었는데, 올해 1월 '만선호프'가 건물 일부를 매입한 뒤 건물주 측에서 을지OB베어 측에 점포를 비우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안근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는 "이 지역 분들이 대부분 건물주보다는 세입자라서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있다"며 "구도심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고 문화유산적으로도 중요하니 상인들의 생계 대책과 함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추가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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