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쟁기념관이 진짜 전쟁터 됐다"…집회 시위에 몸살앓는 용산

박홍주 기자, 김형주 기자, 박나은 기자
입력 2022/05/20 17:38
수정 2022/05/21 07:58
집회 몰리는 용산
주민들 "전쟁기념관이 전쟁터됐다"


삼각지역에서만 1천명 시위
최근 한달새 집회신청 건수
용산, 집회 1번지 종로 제쳐

한미정상회담 열리는 기간
법원, 집무실인근 집회 또 허용
21일 경찰 병력 7200명 투입
"전쟁기념관이 아니라 이 동네가 전쟁터가 되는 것 같아요. 광화문광장은 공간이 넓기라도 했지, 여기는 이렇게 비좁은데…."

서울 용산구에 사는 대학생 이 모씨는 "용산 일대는 한적하게 걷기 좋아 주말마다 산책하러 다녔는데 이제는 어려워진 것 같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방한한 가운데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용산 일대가 '집회·시위'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하기 전엔 광화문에서 서울시청까지 이어지는 공간에서 주로 집회·시위가 이뤄졌다면 이제는 지하철 삼각지역 인근과 전쟁기념관 앞 평화의광장이 대체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에 용산구에서만 집회 50여 건이 신고된 상태다.


방한을 환영하는 집회와 반대하는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미국 백악관과 한국 대통령경호처가 밀접 경호를 맡지만 경찰도 국빈 최고 등급 경호 대상으로 놓고 돌발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먼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기간에 숙소로 이용하는 그랜드하얏트 호텔 주변에서 집회가 잇달아 열렸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신자유연대와 진보 성향인 민중민주당은 각각 30여 명 규모로 방한 환영 집회와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한미정상회담이 있는 21일에는 애국순찰팀 50명가량과 자유대한호국단 20명, 신자유연대 30명이 온종일 하얏트 호텔 인근에서 집회를 이어갈 전망이다. 삼각지역과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서는 21일부터 집회가 열린다. 전국민중행동은 전쟁기념관과 삼각지역 인근에서 1000명 규모의 방한 반대 집회를 연다. 반대로 탄핵무효운동본부는 삼각지역 인근에서 500명 규모의 환영 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참여연대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역시 각각 200명 규모로 전쟁기념관과 집무실 앞에서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용산으로 집회·시위가 이동하는 현상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후로 뚜렷이 감지됐다. 경찰청이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공한 '국방부 청사 반경 1㎞ 내 집회 신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25일까지 38일간 용산경찰서에 접수된 집회 신청은 272건으로, 하루 평균 7.16건에 달한다. 같은 시기 종로경찰서엔 167건만 접수돼 기존 '집회 1번지'였던 종로보다 용산에 집회가 1.6배 이상 몰리고 있다. 경찰은 이를 계기로 경찰인력을 대거 용산으로 전환 배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한 이날 경찰은 경호·경비를 위해 4200여 명 규모 70개 중대를 용산 인근에 배치했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21일엔 약 120개 중대 규모로 7200여 명을 배치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서울경찰청은 서울 시내 각 경찰서에서 형사과 인력을 대거 차출해 용산에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무경찰제도 폐지를 앞두고 인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데 일선 경찰서 형사들이 경비인력으로 차출되면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양국 정상이 만나는 행사에서 집회·시위로 인해 돌발 상황이 생기면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기 위한 대비"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집무실 주변 경비가 한층 강화되면서 주변 상인들은 당혹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43년째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 모씨(68)는 "엄청 조용한 동네였는데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하면서 소란스러울 때가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향후 대통령 집무실 주변에서 집회·시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경찰의 과제로 떠올랐다. 주요 집회 장소로 떠오른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은 광화문광장보다 좁아 안전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각지역과 녹사평역을 잇는 대통령 집무실 앞 도로는 매일 교통난이 발생할 정도로 정체가 극심한 곳으로 꼽히는데, 수만명 단위의 집회가 열릴 경우 그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은 안보상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기존 청와대 주변을 담당하던 종로경찰서 안보팀을 용산경찰서로 통째로 이전하는 등 상황 대비에 주력해왔는데, 이제는 집회 공간을 마련하고 주변 상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율해야 하는 책임도 생겼다.

한편 이날 법원은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기간 참여연대의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를 허용했다. 지난 11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회를 허용한 것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행정법원은 참여연대 및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서울 용산경찰서의 집회 금지 통고 처분 효력을 중지해 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용산 집무실은 법으로 100m 이내 집회가 금지돼 있는 '관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박홍주 기자 / 김형주 기자 / 박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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