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업률 86%…즉시 생산라인 투입 가능한 반도체 인재 키워요"

전형민 기자
입력 2022/07/03 18:11
수정 2022/07/04 00:58
한국폴리텍대학, 반도체 인재 양성 현장 가보니

전·후공정 실습 장비 갖추고
이론·실무 겸비한 인재 육성
성남·안성·청주·아산 캠퍼스
반도체 클러스터로 집중 운영
대졸자 위한 '하이테크과정' 인기

인력 훈련 확대 계획에도
정책지원 소외, 예산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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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반도체소재응용과 학생들이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작업인 `포토` 공정을 실습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폴리텍대]

"웨이퍼(반도체 소자의 기본이 되는 재료)는 아주 얇고 미세하게 길이 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커터로 이렇게 살짝 눌러주면 쉽게 조각나죠. 직접 해볼까요?"

지난달 30일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 내 반도체소자 공정청정실, 김도균 반도체소재응용과 교수의 설명에 하얀 방진복을 입은 교육생들이 각자 앞에 놓인 웨이퍼를 조심스레 잘라냈다. 반도체 제조는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하는 '전공정'과 이를 개별 칩 단위로 분리·조립해 제품으로 만들고 테스트하는 '후공정'으로 나뉜다. 이날 수업은 웨이퍼에 산화막을 코팅하는 '산화' 공정과 회로를 그리는 '포토' 공정 등 전공정이었다. 학생들은 김 교수 감독하에 직접 잘라낸 웨이퍼 조각을 굽고, 노광기에 넣어 빛을 쪼인 후 약품을 통해 현상하는 과정을 차례대로 실습했다.


실습을 마친 문우영 씨는 "학부생 단계에서는 웨이퍼를 직접 만져볼 기회가 흔치 않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문씨는 4년제 대학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폴리텍대학 교육과정에 지원했다. 그는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 스펙을 위해 5일에 80만원짜리 '실습 코스'를 듣는 친구들도 있는데, 전·후공정을 직접 만지고 다뤄보면서 경험을 쌓고 싶었다"고 지원 동기를 설명했다. 현재 폴리텍대 성남캠퍼스에는 문씨처럼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과정에 지원한 교육생 24명이 '하이테크' 교육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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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주문한 이후 정부가 연일 반도체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주무부처로 나선 교육부는 당장 반도체 대학원을 늘리고 학부 입학 정원 증원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생산라인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나 테크니션, 엔지니어 등 '즉시전력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4월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발간한 '2021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에서도 반도체산업 학력별 부족 인원 중 고졸과 전문대졸이 전체 부족 인원의 절대 다수인 74.7%를 차지했다.

전국에 40개 캠퍼스를 둔 폴리텍대는 이미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을 길러내 반도체 인재 수급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일찌감치 반도체 기업들이 몰려 있는 성남과 안성, 청주, 아산 등 4곳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성하고 현장 인력을 집중 육성해왔다. 4곳에서 지난해에만 인력 405명을 배출했는데 80% 이상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대기업과 램리서치, 온세미 등 주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으로 취업했다.

폴리텍대는 지난해부터는 실습 경험이 부족한 4년제 대학 졸업생을 위한 10개월짜리 '하이테크' 과정도 운영한다. 이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보통 주요 반도체 기업의 '엔지니어'로 취업한다. 현업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교육생을 '입도선매'하는 기업도 생겼다. 올해 3월부터 시작한 2기 과정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성남캠퍼스에는 이미 취업이 확정된 교육생도 있다.


김도균 교수는 "현장 중심으로 교육하다 보니 학생들 호응이 좋고 기업들도 우리 학교 출신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대학이 고집하는 실습 위주의 교육이 현장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수영 학과장은 "현장의 장비는 사실상 전자동화돼 있지만 기초부터 장비를 직접 사용해보고 활용해본 우리 대학 학생들과 책 속 이론으로만 배운 학생들의 현장 업무 능력 차이는 확연하다"고 강조했다. 하이테크 과정을 밟고 있는 김겸 씨도 "4~5명의 적은 인원이 교수님과 함께 호흡하면서 직접 실습해볼 수 있는 기회가 학부생 때는 흔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입소문에 힘입어 해당 과정의 입학 경쟁률이 지난해 2.8대1에서 올해 4.5대1로 크게 높아졌다.

폴리텍대는 앞으로 반도체 인력 훈련 규모를 크게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475명이었던 입학 정원을 내년에는 615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올해 925명이었던 교육훈련 인원은 내년에 1065명까지 확대한다. 4년제 대학 후 과정인 하이테크 과정이 인기를 끌면서 반도체 설계 과정도 신설하기로 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폴리텍대가 고용노동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 직업교육기관이다 보니 교육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현 정책 지원 체제하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희 성남캠퍼스 학장은 "반도체 대기업에만 학생들이 몰리는데, 그 외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소부장 히든 챔피언들은 인력이 부족해서 '제발 학생들을 보내 달라'고 한다"면서 "이들을 육성하는 데도 국가가 재정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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