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라진 연어회, 묽어진 커피…단골식당 묘하게 부실해졌네

김정석 기자
입력 2022/08/07 17:40
수정 2022/08/08 07:35
식재료값 폭등에 고육책

고깃집 상추·횟집 연어 양 줄여
채소 리필서비스 유료로 전환
더 저렴한 재료로 레시피 바꿔

외식 잦은 직장인은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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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정 모씨(45)는 모둠회 메뉴에서 연어회 비중을 반으로 줄였다. 기본으로 나가던 쌈채소도 손님이 요구하지 않으면 제공하지 않는다. 각종 원재료 가격이 폭등하자 가격을 올리는 대신 음식 구성을 바꾸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이다. 정씨는 "연어는 ㎏당 1만4000원 수준었는데 최근엔 2만8000원까지 올랐고 상추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금값"이라며 "동네 장사이다 보니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비싼 식자재를 덜 쓰면서 고물가에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종 식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비싼 재료를 적게 쓰거나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 현상이 과자 등의 공산품을 넘어 외식업계로 번지는 상황이다. 지난달에만 소상공인들이 구매하는 식료품 전체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동월에 비해 8%나 오른 상황이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육류 가격은 1년 만에 9.1%나 급등했다. '채소·해조류' 또한 전년 동월 대비 24.4%나 폭등했고 과일은 7.9% 상승했다. 비교적 적게 오른 수산물 가격은 지난해 7월 대비 3.7%, 곡물 가격은 3.6% 상승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식재료 가격이 오르다 보니 외식업계는 원가 절감에 나서고 있다. 당장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이 찾지 않을 것을 우려해 원재료량을 줄이거나 종류를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깃집이나 횟집의 경우 채소값 지출을 줄이기 위해 '셀프바'를 폐지하거나 리필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했다. 반찬의 가짓수와 질이 경쟁력인 한식당조차 반찬 개수와 양을 줄이는 '반찬 다이어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민들이 주로 찾는 김밥전문점 또한 당장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햄과 같은 가공식품을 저렴한 재료로 바꾸거나 계란량을 줄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 모씨(51)는 "김밥은 싼값에 끼니를 때우는 음식인데 가격을 올리면 매출에 타격을 입는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저렴한 식재료로 바꾸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카페 또한 아메리카노, 라테 등에 들어가는 에스프레소 양을 줄이고 리필 서비스를 없애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이 모씨(30)는 가격을 올리는 대신 음료 레시피를 바꾸면서 원재료값 폭등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들어 1000~2000원 안팎으로 싸게 파는 커피가 나타나면서 가격 경쟁이 붙어 커피값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원래 커피에 샷 2개가 들어갔는데 1개 반으로 줄였다"며 "한방차 메뉴도 재료비를 덜기 위해 레시피를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당장 소비자들은 외식비를 올리는 것보다는 낫지만 '슈링크플레이션'을 톡톡히 체감하고 있다. 외식을 자주 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변해버린 음식'을 향한 불만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 모씨(29)는 "며칠 전 들른 단골 백반집이 반찬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고 서비스였던 계란찜도 이젠 안 나온다"며 "식당도 고물가로 힘든 걸 알기에 이해는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과 풍족한 양으로 유명한 기사식당도 재료비를 줄이기 위해 '반찬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택시기사 정 모씨(53)는 "이전에는 단골 기사식당에서 두부조림처럼 먹을 만한 반찬이 2개는 나왔는데 요즘은 반찬 가짓수도 줄고 그나마 있는 반찬도 손이 안 가는 것들"이라며 "가격을 올리고 음식 품질을 유지하는 게 나은데 기사식당이다 보니 값을 올리기엔 부담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식업계는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손님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슈링크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서울 강남구에서 샐러드 가게를 운영하는 김 모씨(42)는 "샐러드는 손님들이 가격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타격이 크다"며 "음식값을 올리기보다는 어떻게든 재료비를 줄이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가격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진주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대 소비자들은 똑똑하기 때문에 조금의 변화라도 눈치채고 신뢰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비자 평가가 중요한 시대이기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가격 상승과 이유를 고지하는 방식이 나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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