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62일의 기다림 끝에 ‘최고령’ 노경은의 꽃이 다시 폈다 [MK인터뷰]

김원익 기자
입력 2022/07/05 08:02
수정 2022/07/05 15:54
쏟아지는 비도 62일의 치열한 투쟁 속 마운드에 설 날 만을 기다려온 노경은(38, SSG)의 염원을 꺾지 못했다.

노경은이 6월 29일 대전 한화전 5이닝 3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4월 28일 롯데전 등판 도중 불의의 강습타구에 맞아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골절된 이후 무려 62일만의 1군 복귀전이었지만 실전 공백은 전혀 없었다.

또한 1회 말 1구 이후 무려 38분이나 경기가 중단됐다.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어깨가 식어 밸런스가 좋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

586657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SSG 랜더스의 우완투수 노경은이 62일만의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골절상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노경은을 MK스포츠가 만나봤다. 사진=김영구 기자

하지만 노경은 1회 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이후 오히려 이닝이 진행될수록 더 힘을 냈다.


그 결과 노경은 이날 예정이었던 70구보다 단 2구 많은 72구로 5이닝을 막아내며 시즌 4승(2패)째를 기록했고, 평균자책도 2.17로 떨어뜨렸다.

무려 8개 구종을 자유자재로 던지는 등 실전 감각에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올해 최고령 선발투수로 ‘살아남은 자’의 품격, 그리고 치열했던 재활기간의 노력을 보여준 역투였다.

이렇듯 성공적으로 돌아온 노경은을 MK스포츠가 만나봤다. 다음은 노경은과의 일문일답이다.

▲62일만의 부상 복귀전을 돌이켜보자. 어떤 마음가짐이었나

오후에 비가 계속 내려서 처음에는 경기를 못할 줄 알았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있었는데, 경기가 시작하더라. 1회 초 우리 팀이 5점을 내는 걸 보고 무조건 ‘3이닝 이상은 무조건 던져야 겠다(웃음)’는 생각을 했었다. 계속 비가 오니까 스피드 있게 하려고 최대한 빨리 승부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1회 말 투구수(25구)가 계속 늘어가니까 처음엔 굉장히 답답했었다.

▲2회 부터는 이닝 당 투구수가 확 줄었다

2회부터는 계획한대로 빠른 승부를 들어갔더니 점점 투구수가 줄길래, ‘5이닝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 욕심이 나더라(웃음). 그래서 그걸 목표로 던졌던 것 같다.

▲결국 5이닝을 72구로 막았다. 예정 3~4이닝 70구를 넘어선 내용이었다

경기 중에 조웅천 코치님과 대화를 했다. ‘무조건 가겠다. 지금 투구수는 괜찮으니까 어떻게든 5이닝을 잘 막고 내려오겠다. 한 번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렸고, 조 코치님께서 감독님께 잘 말씀드려서 최종적으로 감독님의 ‘5회까지 가자’는 OK사인이 났다. 다행히 5회까지 투구수가 예정과 비슷했다.

▲경기 첫 1구를 던지고 난 이후 38분간 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됐다. 어깨가 식고 집중력이 떨어져 힘들지 않았나

비가 온 상황보다 다른 상황이 더 신경 쓰였다. 후배들한테도 항상 많이 얘기하는 게 있다. 상대 선발 투수가 1회부터 많은 점수를 내주기 시작하면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같이 안타를 맞는 안 좋은 그런 상황들 말이다. 나 역시 많이 경험한 일이다.


그런 ‘안 좋은 흐름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기다리면서 타격전으로 가는 흐름에 말려서 흔들리면 안된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던 것 같다.

▲복귀전에서 최고 구속이 147km까지 나왔다. 2달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느낌이 되게 좋았다. 비가 와서 오히려 몸이 더 잘 늘어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1군에서 던지니까 더 집중이 잘됐다. 우선 퓨처스팀과 재활군에서 워낙 잘 관리해주고 올려보내주셔서 그런지 팔 전체 근력이나, 손의 악력도 그렇고 공을 던지는 데 전혀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은 편이었다.

586657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노경은은 성공적인 복귀의 공을 재활군과 퓨처스 팀 코칭스태프 트레이너들에게 돌렸다. 사진=김재현 기자

▲공을 던지는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이 골절됐는데 투구 감각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투수에게 더 핵심적인 어깨, 팔꿈치, 허리 등이 다쳐서 재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또 골절 이후 3주 정도 때부터 가볍게 캐치볼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을 던지는 건 크게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한 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하던대로 했다(웃음).

▲김원형 감독은 좋은 투구를 호평하는 동시에 “열심히 준비했던 노력이 보여서 그런 부분도 굉장히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거 있지 않나. 복귀하면서 첫 번째로 생각했던 건 부상으로 재활하고 1군에 올라온 만큼 그 다친 부위가 ‘티가 나지 않게 하자’라는 마음,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안 다쳤던 사람처럼, 못 던지더라 핑계는 대지 말자’는 마음을 먹었다. ‘손가락은 아예 이상이 없어’라는 걸 감독님과 코칭스태프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고, 어필하고 싶었다. 그렇게 막상 1군 경기에 등판하니까 퓨처스팀과 재활군에 안 갔다 온 것 같은 느낌도 났다. 계속 ‘괜찮다’는 자기 암시를 걸었다.

▲실제 그날 무려 8개 구종을 제구에 어려움 없이 자유자재로 던졌다

(지긋이 웃으며) 농담 삼아 그런 얘길 하곤 한다. ‘20년차인데 그런 게 안 되면, 컨트롤이 안 되면 사고다’라고. 이제 제구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경력이 적은 선수들도 꼭 알았으면 하는 게, 마운드에서 던지면서 ‘1구 볼, 2구 볼, 3구까지 볼이 됐어’라는 생각을 갖고 다음 투구에 들어가는 순간 스트라이크는 더 안들어 간다. 앞선 투구의 결과는 그냥 잊어야 한다. 그렇게 복귀전도 최대한 쫓기지 않으면서 던지려고 했다. 그거 외엔 컨트롤에 대해서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야구 도사’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젠 조금은 그런 티가 나야죠.

▲부상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개막 이후 선발 4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 1.29로 호투하던 중 5번째 등판에서 타구에 맞아 골절을 당했다. 그때 심경은 어땠나

일단 아쉬웠다. 재활 기간만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달 반이었다. 뼈가 붙는데는 한 달이면 됐지만 신체 컨디션이 올라오는 것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 최소한 두 달은 허송세월하게 된거니 ‘아깝고, 막막하다’는 생각과 ‘팀에 정말 미안하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래서 부담감이 많이 들었고 재활 의욕도 컸던 것 같다. ‘어떻게든 빨리 돌아오자’는 생각만 했다.

▲‘불의의 사고’였는데 팀에 미안한 건 어떤 부분에서였나

나를 선택해 준 구단이기에 그 고마움이 크고, 그만큼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컸는데 다쳐서 할 수가 없으니까 그게 정말 허무하더라. 그런 생각이 한 달 정도는 계속 있었던 것 같다.

▲재활 기간을 어떻게 보냈다

구단에서 준비해 준 재활 프로그램, 트레이너 분들의 스케쥴을 충실하게 따랐다. 사실 뼈만 부러진 게 아니라, 인대도 같이 손상이 됐었다. 그러니까 뼈가 붙고 나서도 계속 통증이 있더라. 그런데 재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그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니까, 복귀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 너무 기쁘더라. 그렇게 조금씩 회복하는 즐거움을 찾으면서 재활군-퓨처스팀 코칭스태프분들과 트레이너분들의 도움을 받아 재활에 매진했었다.

▲최고의 4월을 보냈던 SSG가 공교롭게 노경은의 이탈 이후 5-6월 마운드 전력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복잡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신중하게) 야구를 해왔던 시간이 있다 보니까, 그런 상황을 보면 오히려 ‘당연한 거다’란 생각을 한다. 모든 팀이 개막 첫 경기부터 시즌 종료까지 항상 다 잘하면 당연히 1등이지 않겠나. 그런데 알다시피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정규시즌은 연패를 누가 더 짧게 하고, 연승을 길게 가져가느냐의 싸움이다. 우리가 계속 1위를 할 수 있었던 건 장기적으로 긴 연패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짧은 연패를 해도 경기를 보면서 늘 ‘경기가 잘 풀릴거야, 우리가 이길거야’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게 강팀의 장점이니까. 그리고.

586657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부상 당시 가장 큰 아쉬움은 자신을 믿어준 팀에 보답할 수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진=김영구 기자

우리 팀에 좋은 투수들과 선수들이 많지 않나. 그렇기에 내 공백은 크게 걱정은 안 됐다. 팀의 슬럼프는 당연히 한 번은 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최고령 선발투수(만 38세 3개월)로 뛰고 있다. ‘최고령’이라는 수식어가 갖는 의미가 있을까

나에겐 정말 특별한 기록이다. 사실 내가 특별히 내세울 수 있는 기록이 없지 않나. 그래선지 그런 기록은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한다. 남들은 1000탈삼진(노-825탈삼진), 1500이닝(노-1242이닝)으로 기념하는데 나는 이런거라도(웃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라고 그런 말들을 하지 않나. 그냥 오래오래 야구를 하고 싶다. 나이에 대한 의구심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내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웃음)이다.

▲그러니까. 누가 요즘 당신이 던지는 것이나 웨이트 트레이닝 하는 걸 보고 30대 후반이라고 생각하겠나

해이해지는 그 마음을 딱 한 번만 참으면 되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회복이 늦고, 더 힘이 드니까 ‘오늘 하루는 좀 훈련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때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면 꼭 나뿐만 아니라도 다른 선수들도 오래 할 수 있다. 신체적인 능력은 지금도 젊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 결국엔 정신력 싸움인 것 같다.

▲요즘도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하고 있나

채식을 기반으로 하는 식단을 1년 반 정도 유지하고 있다. 시즌 중엔 단순히 채식만하는 게 아니라 순간적인 힘을 낼 수 있도록 경기 전날엔 육식을 한다거나, 몸이 많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지면 식사량을 줄이는 등 내 몸과 상황에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식단을 유지하는 중이다. 야구 선수는 지구력과 순간적인 근력이 모두 중요하다. 채식은 지구력이 더 필요한 종목 선수들이 맞는 것 같다. 어떤 식단만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잘 적용해 관리하고 있다. 지금 몸무게를 최대한 100kg에 가깝게 유지하려 애쓰는 중이다.

[인천=김원익 MK스포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