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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핫이슈] '뉴딜펀드' 리포트 사태 2라운드

장종회 기자
입력 2020.09.17 09:38   수정 2020.09.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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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SA 리포트에 앞서 발표한
국내 조사분석보고서 삭제
갑질 신고에 증권가 '발칵'
시장 입막으면 논란만 커져
투자자 시장불신 확산할 것
논쟁 통해 부작용 축소해야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뉴딜 펀드'가 홍콩 투자은행 CLSA의 질타를 받은 데 이어 국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리포트가 나왔던 게 전해지면서 잦아들던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번에는 발화 지점이 다르다. CLSA 투자전략 리포트의 경우엔 리포트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었다면 국내 H사가 내놨던 분석보고서와 관련해서는 내용 자체는 둘째 치고 외압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사실 CLSA 리포트는 신랄한 독설에도 불구하고 펀드 조성에서 소외될까 우려하는 외국계가 내놓았다며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거기에 대통령이 펀드매니저로 나섰다는 지적이 눈길을 끌기는 했으나 다소 과장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에 비해 국내에서 나온 H사 리포트는 지난 4일 온라인 발간 뒤 홈페이지에서 통째로 사라지면서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직장인 익명게시판(블라인드)에 지난 12일께 청와대와 기재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갑질신고합니다(청와대가 쏘아올린 작은 공)'란 제목을 단 블라인드 게시 글에는 기재부와 청와대가 H사 관계자들을 질책하면서 결국 보고서가 철회됐다는 폭로가 담겼다.

이 리포트는 본격적인 투자전략보고서라기 보다는 한 장 짜리 간략한 코멘트를 담은 것으로 초기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나 CLSA 리포트가 나온 7일보다 사흘이나 앞선 지난 4일 홈페이지에 게시됐던 게 갑자기 사라져 외압 의혹으로 번진 것이다. H사는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직접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H사 관계자는 "해당 리포트와 관련해 청와대나 기재부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외부의 압력이 없었다는 것인데 증권가에서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상황이다.

H사 리포트에는 뉴딜 펀드 조성이 은행업종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 일부 들어가 있다.


골자는 정부가 은행을 정책금융에 동원하면서 불확실성과 은행 주들의 피로감을 키우는데 뉴딜펀드까지 등장해 피로감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금 유입이 있는 만큼 은행업종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고 매수 의견도 고수했다.

이 보고서 지적대로 관치 아닌 관치를 받는 국내 금융사들은 국가적인 위기가 발생하면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을 지원하는데 동원되는 예가 적잖았다. 증권·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펀드 조성이나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 금융사들의 몫으로 떨어진다. 여기에는 정책 지원 뿐아니라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겪게 될 금융업계 전반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막는다는 의미도 섞여 있다.

이미 국내 주요 금융사들은 한국판 뉴딜 지원에 발을 걷고 나선 상태다. 이번 리포트 사건으로 곤혹스럽게 됐을 H사를 포함한 국내 5대 금융지주가 총 70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디지털·그린뉴딜 등 사업에 쏟아붓는다는 계획이다.


H사가 투입하는 자금 규모만도 디지털뉴딜에 1조4000억 원, 그린뉴딜에 8조 원 등 10조 원에 달하는데 직·간접 투자와 여신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금융사가 이처럼 정부 정책 뒷받침에 나서는 대신 금융사가 곤란에 처했을 때에는 정부에 손을 벌려 공적 자금을 수혈받는 경우도 왕왕 일어난다.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났던 카드사태는 물론이고 금융위기 때도 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금융권 안정에 결정적 버팀목이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금융사와 정부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대해 시장에서 비판이 쏟아지면 당국의 의지를 전달하고 수정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 수 밖에 없을 터다.

다만 주식과 연관이 됐을 때에는 워낙 개인투자자들이 많이 움직이는 시장인 만큼 당국이 조심에 조심을 더 해야 한다. 실제로 금융당국 규정에는 금융사의 조사분석자료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금융사도 자료를 공표한 뒤에 수정·변경하려면 사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번에 H사 리포트가 사라진 사건은 그런 시각에서 보면 간단치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리포트 분석 내용에 잘못이 있거나 다른 시각에서 볼 때 비판할 문제가 있다면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토론과 수정을 받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 별다른 해명도 없이 리포트를 삭제토록 하거나 자체적으로 판단해 임의로 없애는 것은 자본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 증권사 리포트를 보면 투자전략을 세우는 투자자들로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정부는 물론 금융사들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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