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부금 횡령·사익추구"...'정의연 닮은꼴' 日시민단체

입력 2020/05/30 06:01
수정 2021/04/21 11:04
[한중일 톺아보기-15]
"한국 위안부 시민단체의 역할, 시험대 올라"-美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

"위안부, 국내정치용 노리개로 이용됐나?"-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온나라의 시선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쏠려 있습니다.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이후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 미국과 홍콩 등 해외 언론들까지 추이를 지켜보고 있죠. 위안부 문제와 직접 연관이 있는 일본은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입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에서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달함은 물론, 추측성 기사들까지 내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일부 언론과 극우 인사들은 절호의 기회라는 듯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평소 주장했던 것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553817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20일자 일본 산케이 신문에 실린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관한 다수의 기사와 칼럼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산케이신문은 "위안부 운동의 적폐가 드러났다"며 "수요집회 중단은 물론 소녀상도 즉각 철거해야 한다"는 칼럼을 실었고,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아베 신조 총리의 '브레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니시오카 쓰토무 레이타쿠대학 교수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이 날조임이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시 최악의 여성 인권유린이라 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와 이에 대한 해결 운동을 이끌며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시민단체 활동가의 부정 의혹. 그런데 구체적 사안과 시기는 다르지만, 일본에서도 시민단체와 관련해 이와 여러모로 닮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위안부·일본은 납북자 문제

553817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1987년 북한의 사주로 KAL기 폭파 범행후 체포돼 압송되는 김현희(좌)/2002년 평양에서 만난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사진=연합뉴스

강제징용 문제와 함께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관계에 있어 가장 큰 이슈라 한다면,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북·일 간, 특히 일본에서는 가장 큰 이슈입니다.


북한 정권은 1970~1980년대에 걸쳐 한국에 보낼 스파이 양성을 목적으로 일본 전역에서 다수의 일본인들을 납치한 바 있습니다.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을 일으킨 김현희가 바로 이 피랍 일본인 출신 교관에게 일본인으로 위장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죠.

행방불명된 납북자들을 찾기 위한 가족들의 노력은 일본에서 시민단체 구성으로 이어졌고, 수십 년간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2002년에 이르러서야 북·일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전모가 밝혀지게 됩니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납치 사실의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받고 합의를 합니다. 하지만 납북자 13명 중 8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일본 여론과 시민단체의 강한 반발을 불러 합의는 실행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553817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일본인 납북사건의 상징 요코타 메구미와 어머니 요코타 사키에의 모습. 일본정부가 주장한 17명의 납북자중 돌아온 사람은 5명뿐으로 12명은 아직 미해결 상태다/사진=유튜브 캡처

할머니들이 고령으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못 본 채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듯, 일본인 납북자의 가족들도 평균 연령이 88세에 이르다 보니 피해자와 재회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와 납북자 문제 모두 다른 나라 국민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고 피해를 입은 한 일 양국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며, 일부 성역화되기 쉽다는 지적이 있는 점도 유사해 보입니다.


양국 시민단체가 갖는 막강한 영향력

553817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양면게임 이론`에서 레벨1은 국제정치 차원, 레벨2는 국내정치 차원의 협상을 의미하며, 양국간 협상 타결 가능성을 높이려면 양국의 윈셋(교차 합의 가능영역)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의 로버트 퍼트넘 교수가 제시한 '양면게임 이론'은 국가 간 협상과정을 설명하는 데 흔히 사용됩니다.


양면게임 이론에 따르면 국가 간 협상이 타결되려면 양국 정부는 협상 테이블 맞은편의 상대국뿐 아니라 테이블 바깥에서 자국 내 여러 행위자들 사이 이익조정과 승인을 필요로 합니다. 이들은 국회뿐 아니라 국민, 시민단체 등을 아우르는데,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 대표가 합의했다 해도 여론이 결사반대 한다면 협상은 실패하게 되는 이치죠. 때문에 외교협상에 나선 정부는 상대 정부뿐 아니라 여론의 승인을 받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시민사회가 유명무실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중국, 북한과 달리, 민주주의로 분류되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보장되고 활발히 이뤄지다보니, 여론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영향력도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553817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2018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구출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납북 일본안 송환 촉구 집회 모습/사진=구출회 후쿠오카

특히, 위안부 문제와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각각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단적인 예로, 1995년 '정대협'은 일본 정부가 '아시아 여성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려 할 때 수령하지 못하게 개입한 바 있고, 2015년 12·28 합의에 따라 일본이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을 거출하고 한국은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피해자 지원을 하려할 때 할머니들의 위로금 수령을 반대하는 한편, 백만 시민 모금 캠페인을 진행했죠.

일본에서는 납북피해자의 친족들로 이뤄진 '가족회'의 지원 명목으로 설립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한 전국협의회(구출회)'라는 조직에서 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구출회는 그들과 뜻이 같은 정치인들과 연계하거나, 반대로 그들의 노선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선 낙선운동을 벌여왔고 총리 등 유력 정치인과의 면담, 각종 여론 선전활동 등을 통해 정책에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日시민단체 '구출회' 회장의 기부금 횡령 의혹

553817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납치문제의 정치적 이용과 해결의지의 진정성을 의심 받는 아베 총리(좌)와 `구출회` 니시오카 쓰토무 회장. 아베총리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니시오카 회장에게 자주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유튜브 캡처

일본의 '구출회'는 한국의 '정의연'처럼 재정 대부분을 기부금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런데 2004년 구출회에서 기부금 횡령 의혹으로 내부고발 사건이 일어납니다. 구출회의 간사인 효모토 다쓰키치와 코지마 하루노리는 기부금 1000만엔에 대한 횡령과 증거인멸을 이유로 사토 가쓰미 회장과 니시오카 쓰토무 부회장(현 회장·레이타쿠대학 교수)을 고발합니다.


당시 아사히신문과 월간 '주간신쵸'등의 보도에 따르면 사토 회장은 한국에 망명한 북한 공작원에게 정보제공 명목으로 3회에 걸쳐 이 돈을 지불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효모토 간사는 1명의 공작원에게 이 같은 거액을 준 적이 없고, 증거 서류도 없다보니 신빙성을 의심합니다. 사토 회장은 "해당 기부금은 정보 수집을 위해 썼고, 특성상 세부 내역은 공개할 수 없고 앞으로도 안 할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 검찰이 증거부족을 이유로 기각하고 당시 사토 회장이 언론 취재에도 일절 응하지 않으면서 흐지부지됐고, 회장을 고발한 두 간사는 몇 달 뒤 구출회에서 해임돼 쫓겨나게 되죠.

국민들이 모아준 기부금을 사적 용도로 썼다는 의혹은 최근 정의연 사태의 발단이기도 합니다. '구출회'와 '정의연'의 횡령 의혹 사건에서 차이점이라면 고발 이후 일본에서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반면, 한국에서는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 신속한 수사를 주문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익 추구에 가려진 '피해자 중심주의'

553817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는 저서 `납치문제를 다시 생각하다`에서 납북자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건 "정치적 조작이 가해졌기 때문"이고 "구출회 임원들이 납치 문제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해 왔다"고 말한다

구출회는 임원들을 중심으로 납치 문제 해결보다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피해자들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2003년 사토 회장은 "북한과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 피해자 구출을 위해선 북한 정권 붕괴만이 답이다. 북핵에 대응하려면 일본도 핵미사일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납치 문제를 빌미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납치 피해자 가족회의 하스이케 토오루 전 사무국장은 "구출회 간부 중엔 대북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우익 인사들이 많다. 피해자 구출을 위해 자위대를 파견해야 된다면서 개헌을 주장한다" 며 "납치 문제를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이용했다"고 지적합니다.

일본의 대표적 진보 인사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 역시 납북자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건 "정치 조작이 가해졌기 때문"이라며 "구출회 임원들이 납치 문제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해 왔다"고 말합니다. 구출회 임원들이 "김씨 정권이 존재하는 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며 납치 문제 해결보다 김씨 독재체제 붕괴를 앞세워 왔다는 겁니다.

553817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25일 2차 기자회견을 했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그래픽=조보라

정의연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과정에서도 사안이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다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25일 국회의원 당선인인 윤미향 대표에 대해 "사리사욕을 채워 국회 비례대표로 나갔다" "할머니들을 이용해 먹었다"고 분통을 터뜨렸죠.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은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직 당시 일본과의 협상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언급하며 "정의연은 피해자가 아닌 사익 추구단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위안부 해결 운동, 日 전철 밟아선 안돼

553817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29일 국회에서 많은 땀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자신과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을 둘러싼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사진=연합뉴스

이번 정의연 사태가 불거진 후,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줄곧 왜곡해온 일본 우익세력의 기세가 등등해질 것이란 건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가운데,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일본 내 친한·리버럴 세력의 입지도 더 좁아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국내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쟁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이념과 진영 논리에 매몰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시민단체의 회계부정 의혹 문제가 정치 쟁점화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를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몰고가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흐려져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읍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정의연이 30년간 위안부 문제를 알리면서 공헌한 부분에 대해선 인정해야 한다"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진정성과 도덕성 전체가 폄훼돼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의연 의혹과 관련해 드러난 여러 정황은 그 자체만으로 정의연과 활동가 모두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은 여전히 정의연 측 해명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옆나라 일본에서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 운동은 극단적 주장에 점철된 한 시민단체에 의해 왜곡돼, 피해자를 볼모로 한 노골적인 정치개입 도구로 쓰여왔습니다. 인권을 내세운 시민사회 운동이 피해자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고 일부 선동가들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일본의 모습은 현재 정의연 사태를 맞은 한국에도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일본의 납치 문제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시민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의혹에 대한 보다 분명한 해명과 함께 책임, 공정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주의 환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신윤재 기자]

※톺아보다 란 "샅샅이 뒤지며 찾아본다" 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주간 연재코너로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 하시면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