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국 싫지만 한드는 좋아" 日반한감정 이긴 '한류의 힘'

입력 2020/06/20 06:01
수정 2021/04/25 11:08
[한중일 톺아보기-17]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 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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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더킹` 등이 잇따라 흥행하면서 한드에 대한 관심이 전 세대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즉 '한드'가 흥행하며 관련 소식들이 연일 일본의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불시착'은 일본 넷플릭스에서 수개월간 시청 순위 1위를 고수하며 과거 신드롬을 일으킨 '겨울연가'에 비견되고 있고, '이태원 클라쓰'도 이에 버금가는 화제를 부르고 있죠. 여기에 '더 킹:영원의 군주' 그리고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연이어 호평을 받으면서 일본 한류 붐의 선두 주자인 트와이스, BTS 등 K팝 인기의 아성을 넘볼 기세입니다.


한국 관련 소식들마다 악성 댓글이 도배되는 일본 포털 '야후재팬'이지만, 한국 드라마 소식에는 "한국은 싫지만, 사랑의 불시착은 봤다" "분하지만 영화도 그렇고 한국 드라마 수준은 일본보다 앞서 있다" 등의 댓글이 다수 눈에 띄고 있는 상황이죠. 일본 우익 정당 일본유신회의 전 대표로서 위안부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 시장도 방송에서 '사랑의 불시착'을 재밌게 봤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양국 간 정치적 문제로 인해 반한 감정이 극에 달한 상황임에도 K팝에 드라마 흥행까지 겹치며 일본 내 한류에 대한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뜨거운 듯합니다. 이처럼 일본에서 혐한 분위기와 한류 붐이 동시에 고조되고 있는 기묘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3차 한류 붐 촉매 '한드'의 인기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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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초 겨울연가로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욘사마` 배용준(좌)/일본에서 150만 관객을 끌어모았던 영화 `쉬리`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한류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 영화 '쉬리'와 드라마 '겨울연가'의 대히트 이후부터입니다. 이때 일본 열도를 강타한 한국 대중문화 열풍을 일본에서는 1세대 한류 붐이라 보고, 2000년대 중반 이후 동방신기, 카라 등 K팝 아이돌 그룹이 활약한 시기를 2차 한류 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012년 여름 이후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한류는 2017년께부터 트와이스와 BTS를 필두로 다시 불붙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를 3차 한류 붐이라고 보고 있죠.

3차 한류 붐은 영화와 K팝을 계기로 발생한 1·2차와 달리 화장품과 패션, 음식 등의 인기가 SNS을 통해 번지며 시작됐고 1020세대가 주소비층으로 중년 이상 세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스마트폰과 SNS에 친숙한 일본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3차 한류 붐의 배경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 '한드'에는 중장년층도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불시착'을 계기로 중년들 사이에서도 시청자가 속출하고 예전엔 전혀 그렇지 않던 남성들도 '한드'를 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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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11일 한드 ‘사랑의 불시착’이 인기인 이유를 분석한 방송을 내보냈다/사진=NHK홈페이지

일본 언론들은 '한드'의 인기 이유로 작품 자체의 퀄리티를 공통적으로 꼽습니다.


'사랑의 불시착'의 경우 금단의 사랑, 재벌 등 한국 드라마 단골 소재가 나오지만 북한이라는 일본인들이 강한 호기심을 갖는 배경에 영화를 방불케 한 액션 장면 등을 이끌어낸 아낌없는 투자로 작품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태원 클라쓰'는 한국 드라마 하면 떠올리던 틀에 박힌 멜로극이 아닌, 비즈니스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역대 최고 시청률의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와도 닮은꼴로 비교되고 있죠.

여기에 코로나19와 넷플릭스라는 새 영상 시청 플랫폼의 확산 등 드라마 외적 요인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자숙 기간과 재택근무로 인해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레 스마트폰으로 '한드'를 보는 일본인이 늘었다는 겁니다.


혐한의 타깃이자 한류의 첨병 재일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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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가수이자 배우 야마구치 모모에는 일본에서 `전설의 아이돌`이라 불린다(좌)/1980년대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으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조용필/사진=유튜브 캡처

그런데 사실, 대중문화로서 한류의 기원은 2000년대 보다 한참 이전인 광복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 패망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재일 한국인과 그 후손들이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연예계나 스포츠계에 주로 진출 했다는 건 잘 알려져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이들이 1960년대 활약한 가수 미야코 하루미,1970년대를 풍미한 일본의 아이돌 사이조 히데키와 야마구치 모모에 등으로 모두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았습니다. 또한, 재일 한국인은 아니지만 1980년대에는 '가왕' 조용필이 일본에 진출해 최대 가요축제인 NHK 홍백가합전 무대에 4차례나 서기도 했고, '엔카의 여왕'이라 불리던 계은숙도 1980년~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바 있죠.

스포츠계에서는 그보다도 더 이전인 1950년대부터 재일 한국인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전설 역도산, 일본 프로야구 최다 안타기록 보유자 장훈, 역대 최다인 통산 400승을 기록한 가네다 마사이치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즉, 일본에서 가장 쉽게 혐한의 타깃으로 지목되는 재일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한류라는 말이 등장하기 수십년 전부터 한류의 조짐이 있었던 겁니다.


日1020세대 "정치와 문화 소비는 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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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제 여파로 근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친밀감은 전세대에 걸쳐 감소했지만, 젊은세대일수록 한국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조보라

일본의 1020세대, 특히 여성들에게 한국의 이미지가 좋은 이유는 역시 K팝을 필두로 한 한류 덕분입니다. 이들이 한류로부터 받는 영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 내각부와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모두 젊은 세대일수록 한국에 대해 갖는 인상이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죠. 일본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도쿄에서 가장 궁금한 곳을 물은 최근 설문조사에서 '한류의 성지' 신오쿠보가 도쿄의 '패션 1번지'인 하라주쿠를 제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볼 때 1020은 기성세대에 비해 정치나 역사 갈등에 감정이입하지 않으며, 정치외교적 사안과 관련해 한국 측 주장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정치와 문화 소비는 별개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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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돌그룹 AKB48의 타노 유카는 과거 혐한논란이 된 발언 후, 트위터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사진=트위터 캡처

물론 이들 1020들에게도 양국 간 정치 갈등이 영향을 전혀 끼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한류 팬이라고 밝힌 대학생 츠쿠바 마리모 씨는 "TV에서 한국에 대해 안 좋은 소리만 나오고, 동기에게도 한국 같은 나쁜 나라를 왜 좋아하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며 "인터넷에도 한국에 대한 악플만 많으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류가 좋다고 말하기 꺼려진다"고 털어놓습니다. 본인이 한류 팬이어서 한국 여행이나 유학을 가고자 해도 가족 등 주변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한류를 인정하고 즐기기도 하지만, 한국은 싫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2년 전 일본 아이돌 그룹 AKB48의 멤버 다노 유카는 SNS에 "한국인은 귀엽고 한국 음식도 맛있지만,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싫다"는 게시물을 올려 논란을 일으킨 바 있죠. 최근 '사랑의 불시착'을 봤다는 한 20대 일본인 남성도 "드라마는 재밌게 봤고 추천할 만하지만, 한국을 좋아하진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장년층 혐한 기저에는 '과거에 머무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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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일본 극우세력이 도쿄 긴자에서 `일한(日韓) 단교`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혐한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부분의 일본 중장년층 세대에게 한류 붐은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마이니치신문의 사와다 가쓰미 논설위원에 따르면, 최근 한일 갈등에 대해 그들은 보통 "전부 한국 탓이니 용서할 수 없다" "한국은 건방지다"와 같이 반응합니다. 많은 이들이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은 한국을 배려해줬고, 한국이 발전한 것도 일본이 도와줬기 때문인데 이제 와서 약속을 뒤집고 배은망덕하게 군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이 같은 사고의 기저에는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묘한 우월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K팝, 한국 드라마 등을 접하며 한국 하면 최신 유행이나 최첨단 등 밝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1020세대와 달리, 이들은 한국에서 군사독재, 개도국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이 때문에 일본 중장년층이 이 같은 우월의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건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사회에서 가장 왕성히 활동하던 시절 한국의 국력은 일본과 비교가 안될 만큼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지불식간에 한국을 낮춰 보는 데 익숙한 이들 세대에게 목소리가 커진 근래 한국의 모습은 건방져 보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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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과거 일본이 잘나가던 때는 한국 측 주장을 수용하는 여유가 있었지만, 장기 침체에 접어들면서 그런 여유가 없어진 것도 중장년층 사이 혐한이 두드러지는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 교수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성장으로 상대적으로 한국의 지위가 올라가고 일본 지위는 내려간 것이 중장년층 사이 혐한의 요인"이라고 지적했는데요. 그는 "한국을 얕보던 중장년층은 주장이 강해진 한국을 고깝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이들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그것이 현재 일본 내셔널리즘의 모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내놓는 국가경쟁력 종합순위에서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점차 좁혀져 왔습니다. 결국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기저에 깔린 차이가 현재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혐한 속에서 한류가 소통과 공생의 가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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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 캡처

근래 연이어 불거진 외교적 마찰로 인한 혐한과 반일의 핑퐁게임 속에서 양국 국민 간 반감은 최고조에 달한 듯합니다. 남들 앞에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이라지만 최근엔 누구나 한국이 싫다는 말을 자유롭게 하는 분위기라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대립에 민간 교류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전문가들은 물론 한류 팬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정치 문제로 어려울수록 민간 왕래가 더 활발해져야 상호 오해와 편견을 불식하며 파국을 막을 수 있기에 한류가 양국 간 소통과 공생의 가교가 될 수 있는 거죠.

한류를 즐기는 일본 젊은이들 모두가 한국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한국에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 정부의 행태가 맘에 안 든다고 이들을 밀어내는 것은 능사가 아니며, 전해지는 일본 관련 소식마다 감정적 악플을 쏟아내는 것도 이들을 위축시키고 혐한 세력에겐 빌미를 주는 일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도 행복하게 한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문화의 근원, 목표, 모범이 돼 세계 평화가 우리로 말미암아 실현되길 원한다"며 문화의 힘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일본에서 한류의 훈풍이 계속 이어진다면 김구 선생의 말처럼 문화의 힘으로 언젠가 한일 간 정치적 불통과 역사 갈등을 넘어 혐한의 증오심도 저절로 녹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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