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효리 "마오" 발언에 테러...폭주하는 中민족주의 민낯

입력 2020/08/29 06:01
수정 2021/04/21 11:11
[한중일 톺아보기-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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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의 인스타 최신글에는 방송이후 이틀만에 수십만개의 댓글이 달렸다. 논란이 커지자 프로그램 제작진은 해명글을 올렸지만 악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사진=유튜브,인스타 캡처

"예명으로 마오 어때요?"

지난 22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 이효리의 이 발언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국내 시청자들로선 전혀 특이점을 찾을 수 없는 발언이었지만 문제는 해외였습니다. 해당 영상을 시청한 중국인들이 중국의 정치인 마오쩌둥(毛澤東)을 모욕했다며 비난 세례를 퍼부은 겁니다. 단 이틀 새 이효리의 SNS 계정은 중국 네티즌이 게시한 수십만 개의 악플로 도배됐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방송국은 해명과 함께 사실상 사과의 글을 올렸고 해당 영상을 삭제하는 등의 조치도 취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전히 중국 네티즌의 항의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방송국 조치도 불필요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국 해명대로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데다 애초에 한국의 내수용 방송 프로가 중국인들의 심기를 고려해 제작돼야만 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국 네티즌으로 하여금 이 같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집단행동을 하게 만드는 걸까요.


Z세대 극단적 민족주의자 '샤오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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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웨이보에는 이번 사건관련 #李孝利辱华(이효리 중국모욕)이란 해시태그가 돌고 있으며 해시태그만 검색해도 엄청난 양의 글들이 검색된다. 대부분 중국의 위대한 이름을 모욕해 매우 화가 난다는 반응이다/사진=웨이보 캡처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적으론 부강해졌지만 한편으로 사회주의라는 정치 이념적 정체성이 약해졌다는 인식을 하게 됐습니다.


이에 공산당의 집권 정당성 강화를 위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교육(중국이 서방으로부터 한 세기 동안 얼마나 큰 굴욕을 당했는지 등)을 대대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이 같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세대-1990년대 출생한 '주링허우(90后)', 2000년대 출생한 '링링허우(00后)'-들은 중국의 인터넷 보급과 함께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특히 중국 당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투철하고 이를 애국으로 믿으며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 SNS 활동에 적극적인 이들을 가리켜 '샤오펀홍(小粉紅)'이라는 말도 생겨났죠.

샤오펀홍이라는 명칭은 이들이 처음 등장했던 웹사이트인 '진장원쉐청(晋江文學城)'의 배경색이 분홍이었고 회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비롯됐습니다. 샤오펀훙은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만큼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민족주의 교육으로 중화민족으로서 강한 자부심과 집단성을 보이는 점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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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약 1100만명 규모로 추정되는 중국 관변 댓글부대가 SNS에올리는 댓글 수만 매년 5억건에 달한다고 분석했다/사진=유튜브 캡처

최근 중국의 눈부신 발전은 충분히 그 나라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샤오펀홍들의 맹목적 자부심은 중국이나 중화주의를 비판 또는 반대하는 이들에겐 강한 적대심과 무자비한 사이버 폭력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이 같은 샤오펀홍들에 대해 중국 내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중국 당국과 언론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젊은 온라인 민족주의자들의 훌륭한 활약'이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지난해 "웨이보 등을 통해 당의 목소리를 여러 계층에 전달해 여론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면서 "당국은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죠.

샤오펀홍은 사이버 공간에서 여론을 조작·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마오당(五毛黨·공식 명칭 인터넷 평론원)'과 일견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마오당이 중국 당국에 소속된 관변 집단이라면, 샤오펀홍은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1인 미디어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샤오펀홍은 우마오당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중화 모욕죄' 걸리면 누구든 가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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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만 독립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대만 배우 다이리런(戴立忍·좌)을 자신의 영화 `다른 사랑은 없다(沒有別的愛)`의 주연으로 기용한 자오웨이(趙薇·우)는 중국 네티즌과 당국의 비난을 받았다

사실 온라인에서 중국 네티즌의 집단 움직임이 새삼스러운 건 아닙니다. 국적, 영토를 불문하고 유명 인사 또는 기업들에 대해 그들의 민족주의적 감성에 거슬렸다는 이유로 가차 없는 린치가 가해진 경우는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2016년 중국 유명 배우이자 감독인 자오웨이는 본인의 영화에 대만 독립을 지지했던 배우를 출연시켰다는 이유로 중국 네티즌으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때 중국 공산당 산하 조직인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도 가세해 눈길을 끌었죠. 2018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D&G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제작한 광고가 중화(中華)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온라인 시장에서 퇴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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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는 국내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중국 네티즌들의 항의 소동에 공식 사과했다/사진=연합뉴스

한국도 중국과 인적·물적 교류가 많다보니 연관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2015년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국내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중국 네티즌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소속사의 홈페이지가 다운돼 공식 사과하는 소동이 빚어졌습니다. 2016년에는 배우 박보검이 등장한 국내 스포츠 용품 광고가 중화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드 배치로 본격화되던 한한령과 맞물려 중국 당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낳았죠. 이효리 사건 역시 민족주의의 발호라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 네티즌은 중국 내는 물론 다른 나라의 방송이나 광고 등을 상대로도 '중화 모욕죄'를 들어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중화 모욕죄의 명분이 되는 중화 민족주의의 근본에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며, 중화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사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중화주의적 사고방식은 결국 이 같은 마찰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에 中정부 비판도 잠시…금세 찬양 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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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흥행 1위 영화 `전랑(戰狼)2` 는 중국인이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으로 샤오펀홍등 애국주의 청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사진=유튜브 캡처

샤오펀홍 등 자칭 열렬한 애국주의자들도 코로나19 사태로 일부 맹목적 애국심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6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 청년들이 코로나 확산에 고국으로 귀국하려고 했지만 입국제한 조치로 해외에 발이 묶여 당혹스러운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데 대해 트위터로 항의하고,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비난하며 '전랑 2' 등 국수주의 영화를 보며 울컥하는, 스스로 샤오펀훙으로 자부하던 유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역 억제를 위해 이들의 귀국이 환영받지 못하고 수차례 항공편이 취소되고 티켓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자 고국에 실망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죠. 코로나 사태 초기 부적절한 대응을 반성하긴커녕 자화자찬하는 중국 당국의 모습은 통제 사회인 중국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까지 터져나오게 한 바 있습니다. 쉬장룬 전 칭화대 교수, 작가 옌렌커 등 일부 양심 있는 지식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당국을 비판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목소리는 이미 묻힌 분위기입니다. 검열 탓인지 SNS에서 그런 비판은 어느샌가 사라졌고 미국·유럽 등에 대한 조롱과 중국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찬양만 눈에 띄는 상황입니다. 당국의 강력하고 일사분란한 봉쇄로 인한 성과는 일당 독재의 제도적 우위를 보여줬고 미국 등의 혼란은 자유민주주의의 실패라거나, 전 세계에서 중국만이 최선을 다해 코로나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 등입니다.


마오쩌둥 신화가 낳은 21세기 新홍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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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완장을 차고 한손에 마오쩌둥 어록을 든 홍위병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주석 만세를 외쳤고,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마오의 선동구호에 따라 류사오치의 자택에 쳐들어가 그를 공격했다/사진=바이두

홍위병은 마오쩌둥 시대 중국을 관통하는 단어입니다. 마오쩌둥은 중국 대륙을 통일한 주역으로 중국에서 현재의 중국(중공)을 있게 한 국부(國父)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대약진 운동'이란 과오로 4000만명이 넘는 인민을 아사케 했고 '문화대혁명(문혁)'을 일으켜 수십만 명을 박해하고 중국의 경제와 문화를 수십 년은 후퇴시켰습니다. 문혁 시기 홍위병들은 마오쩌둥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추종자), 적폐로 몰아세웠습니다. 아들이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를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고발해 인민재판대에 세우고 때려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문혁은 정책 실패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던 마오쩌둥이 자신을 비판하고 개혁을 추진하던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 실용주의자들을 제거하려던 대중선동운동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중국에서도 마오쩌둥 사후 문혁은 오류였다는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지 오래지만 여지껏 제대로 진상이 규명된 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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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는 지난 26일 시 주석이 국가주석을 넘어 마오에게만 부여됐던 공산당 주석직을 차지하고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개혁개방 이후 한풀 꺾였던 마오쩌둥 신화는 2000년대 이후 다시 강화돼왔습니다. 단적인 예로 1990년대까지 농민, 노동자뿐 아니라 마오쩌둥을 포함한 4명의 지도자들이 나란히 인쇄돼 있었던 위안화 속 인물은 모두 마오 한 사람으로 통일됐죠. 이 같은 신격화가 중국인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앞뒤 맥락 없이 한국 연예인의 "마오" 한마디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샤오펀홍의 모습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특히 시진핑 정부는 출범 이래 마오쩌둥 신화를 새로 윤색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시 주석이 천명한 '중국몽' 실현을 위해 중화민족을 통합하는 구심점으로 마오의 권위를 활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마오쩌둥은 공산당을 만든 영웅인 만큼 그의 권위가 살아있는 한, 공산당의 권위도 유지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의 우상이 파괴된다면 공산당 역시 존립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 시 주석이 국가주석을 넘어 마오에게만 부여됐던 공산당 주석직을 탐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은 마오에 대한 예우로 그의 사후 공산당 주석직을 폐지한 바 있습니다. FT는 정황상 시 주석이 마오에게만 부여됐던 당 주석직을 차지해 그에 버금가는 권력을 쥐고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中, 극단적 민족주의론 절대 진정한 대국 못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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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있어 주변국 중 지난 5년새 적대감이 가장 큰 폭으로 늘고 우호감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나라는 중국이었다/그래픽=조보라

동아시아연구원(EAI)의 '2020 한국인의 정체성' 조사 결과, 한반도 주변국 중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지난 5년 새 가장 큰 폭(16.1%→40.1%)으로 늘어났습니다. 우호감이 가장 큰 폭(50%→20.4%)으로 줄어든 나라 역시 중국이었습니다. 2016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국내 방송이나 SNS에서 얼토당토않게 자신들의 관점을 강요하며 집단 공격을 일삼는 네티즌 모습도 한몫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흔히 민족주의는 '양날의 검'에 비유되곤 합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단합된 힘이 국난 극복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폐쇄적으로 흐를 경우 배타주의, 문화 쇼비니즘으로 흐르게 되죠.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제의 팔굉일우(八紘一宇)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어느 나라, 민족이건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 한다면 이는 갈등과 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국도 아닌 다른 나라의 TV 프로에 대해 그 나라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문제 삼아 사이버 테러를 일으키는 중국 네티즌의 모습은 문혁 시절 마오쩌둥의 홍위병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이후 반중 정서가 팽배한 요즘, 극단적이고 편협한 민족주의에 기댄 속좁은 처신은 이웃 국민들의 반감만 키울 뿐 아니라, 스스로를 소인배로 전락시킨다는 단순한 사실을 모르는 그들. 40년전에 비해 힘은 수십배나 세졌지만 전혀 성숙해지지 않은 중국의 모습이 우려스러운 이유 입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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