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국인 후예' 아베, 어쩌다 혐한 이끈 '우익 선봉장' 됐나

입력 2020/09/05 06:01
수정 2021/05/03 11:00
[한중일 톺아보기-26]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 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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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사임 표명을 위해 회견장으로 향하는 아베 총리(좌)/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유력한 후임으로 거론된다(우)/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급작스러운 퇴진 발표는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퇴진 발표 며칠 전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미디어들은 아베 총리의 건강 문제에 대해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한국에서 관심도가 높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한국에서 아베 총리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이유는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겠지만 역사수정주의, 수출규제 등 아베 총리가 보여온 대한(對韓) 적대 행보가 큰 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총리직을 내려놓게 됐지만 정치인 아베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거라 보긴 어렵습니다.


그는 여전히 의원으로서 정치활동을 계속할 뿐 아니라, 유력 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아베의 복심'으로 불리며 아베 정권 정책의 계승을 공언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난 6번의 총선 때 아베 총리의 공천을 받았던 자민당 의원들은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실 아베 총리는 도래인(渡來人), 즉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주한 가문의 후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상과 역사관, 정치 인생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항상 언급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뿐 아니라 친조부 아베 간 역시 도래인으로 추정되고 있죠. 어찌 보면 아베 총리는 혈연적으론 일본 유력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한국과 인연이 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반한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우린 조선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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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용의자 였던 기시 노부스케(좌) 전총리와 아베 이전까지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보유했던 사토 에이사쿠. 친형제지만 노부스케가 기시가에 양자로 가면서 성이 바뀌었다/사진=아사히 신문

세습 정치 가문인 아베가의 지역구이자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현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던 곳입니다. 아베 총리의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는 아베 총리가 최장 집권기간을 경신하기 전까지 역대 최장수 총리였습니다. 사토 전 총리는 타계하기 1년 전인 1974년, 임진왜란 때 붙들려와 일본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킨 조선인들 중 한 사람인 심수관의 후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가문도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넘어왔다"고 고백하곤 묵이식지(默而識之·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통한다)라는 휘호를 남깁니다.

반도 출신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력 정치인인 그가 후폭풍을 무릅쓰고 사실을 고백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뿌리를 당당히 밝혀온 심수관의 모습에 사토 전 총리는 말년이 돼서야 사실을 털어놓게 된 듯합니다. 2006년 '주간 아사히'는 아베가에서 40여 년간 머물며 아베 형제를 키워낸 구보 우메라는 여성이 아베 총리의 아버지 신타로가 가끔 집안에서 "난 조선인이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죠. 뿌리를 한반도에 둔 사토 가문의 일원인 아베 신조 총리에겐 결국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셈입니다.


평화주의자 조부·부친 대신 외조부 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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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간은 쉰살의 나이에 단명하고 말았지만 일제 군국주의에 맞섰다(좌)/아베 신타로는 자민당 소속 보수주의자 였지만 반전·평화헌법 옹호론자 였다(우)

아베 총리는 2013년 미국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날 우익 군국주의자로 부르고 싶으면 불러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전후 총리 중 가장 우익적 행보를 보여온 아베 총리지만, 그의 조부와 부친은 평화주의자들이었습니다. 조부 아베 간은 일본 군국주의에 시종일관 반전과 평화주의로 맞선 반골 정치인으로서 도조 히데키 내각의 퇴진을 강력히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아베 총리의 부친 아베 신타로 역시 반전주의자 이자 재일 조선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친한파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아버지를 매우 존경했던 그가 "기시의 사위"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해 "난 기시의 사위가 아니라 아베 간의 아들이다"라고 강조하곤 했다고 증언합니다. 신타로는 보수정당인 자민당 의원이었지만 정치적 균형감각이 탁월한 평화헌법 옹호론자였습니다. 1980년 선거 직전 사망한 오히라 마사요시 전 총리는 병상에서 최측근에게 "신타로의 균형감각은 자민당에 귀중한 자산이니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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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시절 기시 노부스케의 품에 안겨있는 아베(좌측 가운데)/아베와 놀아주는 기시(우)/사진=NHK

전쟁을 겪은 이전 세대들과 달리 전후 세대인 아베 총리는 조부 아베 간이 닦아놓은 지역구를 물려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조부에 대해 언급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항상 외조부 기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다정히 대해주던 기시를 우러르며 자란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등 전후 체제는 전쟁에 졌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에 내려진 매우 부당한 조치로 인식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인식은 기시의 인식 체계를 빼다박은 것입니다. 아베 총리에겐 평화주의자이자 균형감을 갖춘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었지만, 그는 외조부를 따라 우익이자 역사수정주의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도쿄대 가라"는 부친에의 반항심과 학력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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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직후 야마구치현을 여행중인 청년 아베(좌)/21살때 친구들과 니가타현에 스키를 타러 간 청년 아베(맨우측이 아베 총리)/사진=세이케이 학원 홈페이지

아베 총리의 정치적 배경인 조부와 외조부, 부친은 모두 일본 최고 학부인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수재들입니다. 반면 아베 총리는 세이케이(成蹊)대학 출신으로 '일관 교육'이라는 일본 특유의 제도를 통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녀 입시 경험이 없습니다. 금수저 중 금수저로 입시나 취업 스트레스 등 고생 한번 하지 않고 국회의원이 된 그에게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과거 수차례 학력과 관련한 콤플렉스를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는 2004년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콤플렉스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계속 세이케이 학원에 다녀 입시 경험이 없다.


사람은 한 번쯤 죽을 각오로 공부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자민당 간사장 시절인 2003년엔 "조부가 대단한 수재였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 밖에도 아베 내각이 역대 내각 중 도쿄대 출신 각료가 특히 적다거나, 도쿄대 출신이 즐비한 재무성 관료들을 아베 총리가 푸대접한다는 소문 등은 그의 콤플렉스를 상기시키는 일화들로 회자 돼 왔습니다.

아베 총리는 고등학교 진학 후 부친으로부터 "도쿄대에 가라"는 압박을 받곤 했습니다. 때론 사전으로 머리를 툭툭 맞으며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데다 정치활동으로 집을 자주 비웠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까지 더해져 그는 입시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평화주의자와 친한파였던 조부와 부친 대신 외조부에 대한 사상적 편향이 심한 이유도 조부와는 친밀했던 기억이 없는데다 부친의 도쿄대 진학 요구에 대한 반항심과 학력 콤플렉스가 작용했을수 있습니다.


아베, 고집불통에 반대 의견엔 무조건 귀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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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아사히 등 싫은 소리를 하는 언론은 재갈을 물리고 산케이 등 우익 언론에 정보를 흘려 특종을 도왔다. 공영방송 NHK 회장에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을 앉혀 통제를 강화했다. 그 결과 언론 자유도는 급락했다/그래픽=조보라

정치인 중엔 자기 주장이 강한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특히 고집이 세고 툭하면 반대 의견에 귀를 닫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를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친인척과 동창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번 고집 피우면 말을 듣지 않는 아이" "자기 생각에 말이 안되는 건 정말 싫어한 친구"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베 가문을 반평생 취재해온 저널리스트 노가미 다다오키에 따르면, 그의 이런 성향은 개헌 이나 안보법제 문제에 관한 한 더 두드러지며, 권력의 계단을 오르면서 더 공고해졌습니다. 안보법제를 심의했던 2015년 국회에서 아베 총리는 법안에 어깃장을 놓는 야당 의원들에게 야유 등 부적절한 언행을 하거나 질문 요지에도 안 맞는 엉뚱한 소신을 늘어놓아 주변을 당황케 했습니다. 노가미 기자는 그의 저서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을 통해 아베 총리의 이런 모습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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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최근 의정중 야당 의원의 질문에 야유와 공격적인 답변을 하는 경우가 잦아 논란을 낳았다/사진=유튜브 캡처

당시 아베 총리는 경력과 전문성 면에서 완벽하고 자기 자신이 1차 내각 때 기용한 적도 있는 안보 전문가가 안보법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데 대해 매우 불쾌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죠. "그는 틀렸다. 초보적인 것도 모르면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대꾸하는 식이었습니다. 같은 해 중의원 안보특위에서도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한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아베 총리는 "내가 헌법 해석의 최고 책임자"라며 버럭 소리 지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화들은 아베 총리가 반대 의견에도 귀 기울이는 균형감 있는 정치인과는 거리가 매우 멀고,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선 조금도 물러섬 없는 인물이란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등 기존 역사기술을 자학사관으로 부정하며 독도 도발에 열을 올리고 외무성의 반대에도 수출규제 보복을 강행하는 등 독선적 행보로 나타났습니다.


우익 매파 가면 뒤 숨겨진 빈곤한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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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건강을 이유로 사임을 표명했지만, 일각에선 건강문제가 아닌 선거법 위반 등 정치 스캔들과 코로나 대응 실패로 인한 지지율 하락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사진=유튜브 캡처

아베 총리가 "자신의 평생 과업"이라며 개헌을 추진하고 역사수정주의를 줄기차게 추구해온 것은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철석같이 믿는 개헌과 안보에 대한 사고 체계는 '얄팍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학창시절 그를 가르쳤던 은사들과 동창들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학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며 세미나 등 토론 수업에도 적극 참여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지금 보면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남지 않는 부잣집 도련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공통된 증언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그의 정치적 신념은 논쟁이나 학문을 통해 체득한 것도, 세습 정치가인 만큼 독자적으로 정치 경력을 쌓으며 연마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외조부 기시의 가르침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대해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아베는 외조부가 한 일은 다 옳다고 배웠다. 외조부를 존경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정치인으로서 특정인이 한 일은 전부 옳다고 믿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요컨대, 정치적 신념과 관련된 사상과 사고는 설익은 채 외조부의 정치적 DNA만 요령껏 흉내낸 상태에서 납치 문제를 발판 삼아 운좋게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랐다는 겁니다.

아베 총리는 "정치는 결과로 책임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입버릇은 사임 기자회견에서 "건강 문제로 책임에 부응한 결과를 못 낼 것 같으면 사임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다"는 말로 돌아왔습니다. 일본 최장수 총리라는 역사를 새로 썼지만, 두번이나 정권을 내던진 모습에서 조부와 부친은 물론 외조부도 보여줬던 지위에 대한 책임감을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조부와 부친, 외조부의 정치적 명성과 학력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아베 총리는 어쩌면 이에 대한 콤플렉스와 유약한 본모습을 우익 매파라는 갑옷으로 애써 감추려 해왔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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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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