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포스트 아베'스가 · 中시진핑 의외로 닮은점 5가지

입력 2020/09/12 06:01
수정 2020/09/14 14:32
[한중일 톺아보기-27]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 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942916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오는 14일 치러질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 3인의 의원(기시다 후미오, 스가 요시히데, 이시바 시게루)/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 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뒤를 이을 자민당 총재 선거일이 고시됐습니다. 곧바로 출마를 표명했던 3명의 의원은 후보 등록을 마치고 선거전에 돌입했습니다. 일본인들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유는 누가 당선되느냐가 한국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약식으로 치뤄지는 이번 선거에서 스가 관방장관이 전체 국회의원 표의 약 80%를 확보했을 만큼 뚜껑을 열기도 전에 당선이 점쳐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과 해외 매체들은 유력 총리 후보인 스가 관방장관이 어떤 인물인지 등에 대해 잇따라 보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주간지 '겐다이 비즈니스'는 스가 관방장관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비교하며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는 독특한 분석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적은 물론 정치 성향이나 외모까지 공통점이라곤 한 군데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어떤 점이 과연 닮았다는 것일까요.


무표정에 과묵한 성격…전임자들과 대조적
94291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일본 `겐다이 비즈니스`는 시진핑 주석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5가지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는 기사를 보도했다/사진=연합뉴스

스가 장관, 시 주석 모두 활달하고 밝은 성격과는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무표정에 과묵하고 발언을 할 때도 상대방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툭툭 한마디씩 던지는 타입입니다. 어떤 일에 대해 판단할 때도 그 자리에서 절대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일 없이 한발 물러나 생각한 후 결정을 내리는 신중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겐다이 비즈니스'는 아베 총리나 시 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전 주석이 '해'의 이미지라고 한다면, 스가 장관과 시 주석은 '달'의 이미지라고 할 만큼 대조적인 성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스가 장관과 시 주석 모두 유력 정치인인 만큼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은 많지만, 두 권력자가 정말 친한 친구라고 부르며 속내를 터놓는 사람은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으로 알려진 아베 총리와는 대조적으로 이들 두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고 합니다.


'외교 하수'…외치보다 내치에 중점
942916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2015년 미국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위해 원고를 검토 중인 아베 총리의 모습/사진=유튜브 캡처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고 하는 만큼, 지도자급 정치인에겐 내정과 외교 모든 면에서 능할 것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보통은 내치와 외교 둘 중 어느 한쪽에 강점이 있거나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베 총리는 1차 내각 때는 '자유와 번영의 호', 2차 내각 때는 '지구본을 내려다보는 외교'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바 있습니다. 1차와 2차 내각을 통틀어 방문했던 나라도 총 196개국에 달해 유엔 회원국인 193개국보다도 많을 정도입니다.

942916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2014년 스가 장관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스가 장관은 내치 지향적인 정치인입니다.


업무 특성상 해외에 나가기 어려운 관방장관직을 7년8개월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스가 장관이 이제껏 외교적으로 눈에 띄는 역할이나 발언을 한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내에서 외교 분야는 스가 장관의 약점으로 꼽혀왔습니다. 총리 도전을 공식화한 기자회견에서 "총리 자리에 오르기엔 외교적 경험이 부족하다" 는 취지의 질문이 여럿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치인들 중 드물게 유학 경험이 있고 영어 연설을 한 적도 있는 아베 총리와 달리, 스가 장관의 영어 실력과 경험 부족을 이유로 그의 외교 능력에 의문을 표한 것입니다. 일본 외무성의 한 관계자도 "지난 5월 방미 일정에 올랐던 스가 장관은 누구랑 회담을 하든 외무성이 준비한 서류를 그대로 읽을 뿐이었다. 뭔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회담 성격은 전혀 없었고, 그저 미국에 얼굴을 알리기 위한 방미였다"고 평했습니다.

942916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8일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서 코로나19 방역 표창대회를 열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승리"라며 사실상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사진=유튜브 캡처

후진타오 전 주석 역시 해외 주요 인사나 기업을 초청한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을 특히 선호하는 편이었습니다. 덩샤오핑이 단행한 개혁개방 정책을 가장 모범적으로 따른 지도자로 평가받기도 했죠. 이에 비해 시진핑 정부의 외교는 노골적 호전성으로 주변국들을 불편하게 해 현재 '전랑 외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한 중국의 태도 역시 국제적으로 상당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여전히 수많은 나라에서 피해가 확산 중인 와중에 '코로나 종식 선언' '중화의 승리' 등 선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시 주석의 중국이 '외교 하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스가 "자주성가 흙수저" 시진핑 "8년간 하방돼 고생"
942916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스가 장관은 일본 국민들 사이 `고생한 사람` `서민`의 이미지가 강하며 스가 장관 자신도 이를 내세워왔다. 지난 1일 일본 주간지 `슈칸 분šœ`이 스가 장관의 자수성가 미담이 과장됐다는 취지로 보도한 기사/사진=슈칸 분šœ 캡처

총리직에 도전한 일본 의원 3명의 출마의 변 중 스가 장관은 자신의 인생역정에 대한 언급을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스가 장관은 "제 원점에 대해 조금만 얘기하겠다. 벽촌인 아키타현 딸기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졸업 후 가업을 잇는 것이 싫어 취직을 위해 도쿄로 상경했다.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곧 어려운 현실에 부딪쳐 우여곡절끝 남들보다 2년 늦게 대학에 진학했다"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술회를 밝혔습니다. 조금만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스가 장관이 인생 이야기에 할애한 시간은 전체 연설 시간의 3분의 1가량이었습니다. 자신은 세습이 태반인 일본의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주간 분šœ'은 흙수저 성공의 대명사인 스가 장관의 인생 스토리가 사실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요점은 스가 장관이 빈농이 아닌 부농 출신인 데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야간대학을 다녔다는 보도 등이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942916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하방된 벽지에서 노동을 하러가는 시주석의 모습을 담은 다큐의 한 장면(좌)/시주석이 생활했다고 하는 토굴집(우)/사진=바이두

시 주석 역시 내부 간부회의 등에서 자주 '문화대혁명(문혁)' 시절 고생담을 늘어놓는다고 합니다.


시 주석은 공산당 혁명 원로인 시중쉰의 아들로, 베이징의 간부 전용 주택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문혁 시절 시중쉰이 실각하면서 1969년인 15살 때부터 22살 때까지 7년 넘게 산시성의 량자허라는 벽촌에 하방(지식인을 낙후지로 보내는 것)돼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시 주석은 부모형제와 헤어져 가난한 농민들과 매일 힘든 노동을 해야 했던 이때의 경험이 현재 자신을 만들었다고 선전해 왔습니다. 예컨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자신이 하방지에서 어떻게 사투를 벌였는지 설명했고, 2015년 영국에서는 "하방지에서 생존과 파멸의 문제를 생각하며 조국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죠.


남에겐 "규칙 지켜라" 자기는 "규칙 깨겠다"
스가 장관은 지난주 총재 선거 방식과 관련된 질문에 "당규에 따르면 될 것"이라며 당규를 강조하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받기보다 즉석에서 질문을 받아 현장감 있는 회견이 되게 해달란 요청에도 "기자회견은 한정된 시간 내 규칙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짧은 회견 동안 두 번이나 '규칙'을 언급한 겁니다. 그런데 "스가 정권은 아베 정권의 단순한 연장인가?"라는 질문에는 "나 스스로 공직사회의 폐해를 깰 수 있는 유일한 장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관료주의 같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즉, 남에게 '규칙'을 강조하는 동시에 자신은 규칙을 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942916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해 6월 허난성 핑딩샨시 인근 거리에 설치된 시주석의 사진과 애국심 고취 문구가 담긴 초대형 현수막/사진=연합뉴스

이처럼 타인과 자신에게 적용되는 기준이 다른 모순된 이 느낌은 시 주석의 경우 더 뚜렷히 드러납니다. 시 주석은 부하들에겐 규칙을 철저히 지키라고 하는 한편, 자신은 규칙을 깨뜨리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2012년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처음 실시된 정책은 '8항 규정'이라는 것입니다. 일명 '사치 금지령'이라고도 불리는 이 규정은 공직사회의 허례허식, 관료주의, 사치풍조 배격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치행위뿐 아니라 과도한 정치적 이벤트, 현수막 등 전시행정과 장시간의 회의 등도 금하고 있죠. 이 규정으로 인해 시 주석 집권 1기(2012~2107년) 5년간 적발된 인원만 총 153만7000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시 주석 자신은 8항 조항에 역행하는 행보를 거리낌없이 보여왔습니다. 시 주석이 주최하는 회의 횟수과 연설 시간은 전 정권들에 비해 현저히 늘어났습니다. 또한 그의 업적을 선전하는 저작물 출판과 선전용 현수막 게재도 늘었습니다. 형식주의 타파를 강조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지나친 형식주의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집권 2기인 2018년 전국인민대회(전인대)에서는 헌법을 25곳이나 개정하고 주석의 5년 연임 임기제한 조항도 삭제했습니다. 또한 일찍이 당원뿐 아니라 공무원까지 모두 통제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던 국가감찰위 설립 조항을 아예 헌법에 명기시켰죠.


운 겹치며 최고 권력자로의 길 열려
942916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1970년대 중반 아버지 시중쉰(가운데), 이복형 시정닝(좌)과 함께 있는 시진핑 주석/사진=바이두

한국에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 중국에서도 "작은 일은 지혜에 의해 이뤄지고, 큰일은 덕에 의해 이뤄지지만 정말 큰일은 운에 의해 이뤄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결국 최후의 관건은 지혜나 덕보다도 운이 중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시주석이 14억 중국인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운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혁명 원로는 자식들 중 아들 하나만을 후계자로 삼을 수 있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시 주석에겐 영특한 데다 평판도 좋은 이복형이 있었지만 그가 이른 나이에 돌연 사망하면서 후처의 아들인 자신이 혁명 원로인 아버지의 뒤를 잇는 길이 열린 겁니다. 이후에도 쩡칭훙 부주석, 천량위 상하이 당서기, 보시라이 충칭 당서기 등 쟁쟁한 경쟁자들에게 뒤쳐졌었지만, 이들이 차례로 실각하면서 결국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가 되는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스가 장관 역시 유력한 '포스트 아베'로 거론되기까지 여러 운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입니다. 만약 내년 9월 임기 만료까지 아베 총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입후보의 기회는 고노 다로 방위상이나 니시무라 경제재생담당상 등 50대 젊은 장관들에게 돌아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코로나19라는 비상 사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없었다면 이미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열렸을 것이고, 아베 정권의 교체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스가-시진핑 '케미' 잘 맞을까
이미 아베 정권의 계승을 공언했지만, 일각에선 스가 장관을 원래 아베 총리와는 결이 다른 '친한·친중파' 정치인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는 자민당 내 대표적인 '친중파' 정치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의 지지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섣불리 중·일 관계가 이전보다 더 원만히 풀릴 것이라고 예단할 순 없습니다. 환구시보 등 중국 매체들도 '포스트 아베' 시대로 중·일 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도하고 있죠. 다음주 '포스트 아베'가 결정됨에 따라 한일 관계뿐 아니라 중·일 관계에도 어떤 변화가 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