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국 0 vs 일본 24'...日이 노벨상에 강한 진짜 이유는?

입력 2020/10/03 06:01
수정 2021/05/03 11:01
[한중일 톺아보기-29]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 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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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시즌이면 어김없이 한국은 왜 수상자가 없는지에 대한 보도가 언론을 장식한다

매년 10월은 노벨상 수상 발표 시즌입니다. 이맘때쯤 스웨덴 한림원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달 5일에서 12일로 예정된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벨 재단은 코로나19로 통상 열리던 시상식을 취소하고 TV 중계로 대체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인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되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도 불리는 노벨상은 6개 시상 분야 중 과학상이 3개에 달합니다. 노벨 과학상은 국가의 기초과학과 원천 기술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인식되기도 하죠. 그리고 노벨 과학상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들중 하나가 이웃나라 일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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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첫 시상 이후 일본은 세계 5번째, 21세기 이후로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물리, 생리의학 분야에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으로, 그리고 재작년과 작년에도 화학, 생리의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전체 수상자 수는 아시아 1위이자 과학에 한정할 경우 세계 5위, 21세기 이후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상자를 냈습니다. 이렇다보니 일본에서는 올해도 수상자 명단에 자국민이 있을 거란 기대감이 고조된 상황입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이번 노벨상 후보에 일본인 학자 2명이 포함됐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20년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았던 평화상이 유일할 뿐 과학 분야에선 전무합니다. 옆나라에선 수상자가 자꾸 나오는데 같은 아시아인 한국에선 왜 안 나오느냐는 자탄도 매년 뻔하게 반복되는 레퍼토리입니다. 일본은 어째서 노벨상, 특히 과학 분야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일까요.


빠른 근대화와 제국주의 시기 축적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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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수학했던 다카미네 조키치(좌)는 1917년 이화학연구소(우) 설립을 주도했다/사진=일본 위키피디아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열강에 합류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군사기술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을 시작으로 많은 유학생을 서양에 보냈습니다. 이들은 차후 일본의 기초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는데, 주로 배워온 분야가 바로 화학, 의학, 물리학이었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일본에 비해 순수 학문 쪽 연구가 시작된 역사가 훨씬 짧은 데다 절대적인 인적·물적 투자 규모도 적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근대화 교육이 시작된 기점으로 본다면 일본은 근대 교육제도를 한국보다 70~80년은 빨리 도입한 셈입니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며 '노벨상의 산실'로도 불리는 '이화학(理化學)연구소'만 하더라도 1917년에 설립돼 100년을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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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한 교토대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했지만, 731부대라는 어두운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사진=유튜브 캡처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 전쟁과 식민지 건설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기도 했습니다.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만주 관동군 방역급수부, 일명 731부대의 연원은 교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731부대를 만들고 총지휘 했던 이시이 시로 중장과 731부대에 자원 입대해 다양한 실험을 했던 세균학자 이시카와 다치오마루, 요시무라 히사토 등 주범들이 모두 교토대 출신이자 교원들이었죠. 일제 패망 후 미국에 표본을 넘기는 대신 재판 회부를 면했던 이들은 이후에도 연구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이시카와는 표본을 몰래 일본으로 들여와 연구에 쓸 만큼 집요했고, 요시무라는 일본 생리학회 간부에 교토 의대 학장까지 오른뒤 1978년엔 일본 왕실로부터 욱일장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습니다. 이시이 역시 의학계 원로로 대접받으며 731부대 운영으로 얻은 지식을 학계에 전파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일본인들의 출신 대학을 보면 최고 대학이라는 도쿄대와 함께 교토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노벨상 만큼은 교토대가 도쿄대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일본이 일군 노벨상의 성과를 생체 실험 연구 덕으로 돌리는 건 비약일지 모르나, 전쟁과 식민지 개척이 일본 과학 발전에 일으킨 상승 효과는 고토 히데키 등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日정부의 일관성 있는 기초과학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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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GDP대비 R&D투자 비중은 OECD 1위이고 절대규모면에서도 6위권이다. 하지만 투자가 기초연구비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고 지원 과제 선정 과정의 자율성 제한 등의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그래픽=조보라

패전 직후에도 일본은 기초과학 육성을 국가 재건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일관성 있게 실험 시설에 투자하는 등 장기적 지원책을 펴왔습니다. 지방 국립대에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기초과학 교육을 강화했고, 1960년대 이미 미국을 비롯한 과학 선진국에 연구자를 대거 파견해 이론 습득과 기술 도입에 박차를 가했으며, 1970년대 이후부턴 지식의 수입을 넘어 자체적인 기초과학기술 육성에 주력해왔습니다.

1990년대초에는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5년에 한 번씩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책정해 과학 육성을 집중 지원해왔습니다. 대학 캠퍼스 내 기초과학 인재와 시설이 집약된 세계적 연구 거점을 만든다는 'COE(Center of Excellence) 사업'과 국립대 법인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과학기술 기본계획'에서는 "50년간 30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 이라는 목표를 세운 바 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목표한 바대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도 최근 기초과학투자가 부족하다는 내부 우려가 잇따르고 있지만, 전체 시간을 고려한 투자규모는 여전히 한국에 비해 압도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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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실험시설 `슈퍼 카미오칸데` 모습. 일본 정부가 투자한 `카미오칸데`와 `슈퍼 카미오칸데` 를 기반으로 도쿄대 고시바, 카지타 교수가 각각 2002년과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사진=도쿄대 홈페이지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투입했다고 해서 노벨상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노벨상이란 성과 이면에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의 출신 대학은 최고 명문인 도쿄대와 교토대가 가장 많지만 다른 대학 출신도 상당수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지방 대학들이 전반적으로 연구 환경이나 구성원 면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일본 정부가 전후에도 편중 없이 일관성 있게 기초과학 진흥책을 전폭적으로 추진해온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2016년 저명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세계 톱이지만 응용 분야에 치중됐던 점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원인중 하나로 꼽기도 했습니다.


'한 우물 파기' 가능한 환경과 실험중시 풍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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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학사학위만 있던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의 수상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사진=유튜브 캡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점은 단기 성과엔 적합하지 않겠지만, 일본 과학이 노벨상 같은 큰 업적을 내는 데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 예가 2002년 학사 출신으로 전례없는 수상자가 된 다나카 고이치 시마즈 제작소 연구원입니다. 다나카는 연구를 위해 200번이 넘는 시행착오를 겪다 우연한 실수로 단서를 얻었고, 그 단서를 놓치지 않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대학원 경력도 없고, 학부 시절 유급할 정도로 평범했던 그의 성취는 단기 성과에 얽매이기보다 사원의 개성을 존중하고 실패도 용인해준 시마즈의 연구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일본이 당장 성과가 없거나 신통치 않아 보이는 테마라도 연구에 진득이 매달릴 수 있게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면, 한국은 변화에 매우 민감하고 유행을 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의 연구 풍토가 단기 성과에 매몰되는 배경에는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효율과 성과 위주의 풍토는 단시간 내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원천기술 개발로 이어지지 않아 응용기술로서의 한계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당장 돈이 되는 공학 등 응용학문에 대한 선호도가 일본에 비해 한국이 높은 점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이처' 역시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이 주목 받자 '2020년까지 AI 1조 투자'라는 계획을 밝히는 등 시류에 흔들리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연구와 실험 중시 풍토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찍 자리 잡은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학부 졸업반 때부터 세미나 팀에 들어가 특정 연구 주제를 선정해 논문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일본도 한국처럼 입시위주 교육에 이공계 우수학생들의 의대쏠림 현상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 입학 이후 졸업 때까지 취업용 스펙 쌓기에 매달리게 되고 학부 논문은 요식행위가 돼버린 한국의 상황과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최근에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200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의 일선 초·중·고교에서 과학시간에 실제 도구를 이용해 실험하는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여러 실험 장비를 제한 없이 다루며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보다 교과서에 쓰여진 지식만 외우는 주입식 교육이 주가 되다 보니 실험정신과 창의성이 싹틀 여지는 더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헤소마가리' '모노즈쿠리'등 문화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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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자 오스미 교수는 청소년 시절부터 기초과학에 빠진 괴짜 였다. 아사히 신문은 오스미 교수의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에 대한 헤소마가리(외골수) 개척심이 노벨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한 우물 파기가 가능한 환경뿐 아니라 그런 괴짜들이 다수 존재하는 문화도 한몫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사회는 '헤소마가리(외골수)' '오타쿠' 등으로 상징되는 자기 관심 분야에 미친 듯 몰입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 눈엔 쓸데없어 보이거나 이상해 보일지라도 그런 시선에 아랑곳 없는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천착이 간혹 독창성으로 발현돼 노벨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흔히 일본의 제조업 등을 얘기할 때 언급되는 모노즈쿠리, 즉 장인정신도 과학 연구 분야에서 발견됩니다. 대학 연구실은 도제식 시스템으로 운영돼 마치 가업처럼 제자가 스승의 연구를 끊김 없이 계승하고 원로 교수와 젊은 교수들 사이 수직적 연계성도 강합니다. 성과를 낸 교수가 연구실을 갖고 조교수, 강사,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 분야를 집중 연구합니다. 교수가 퇴임하게 되면 후임 교수가 승진해 연구실 전체를 물려받아 연구를 계속하죠. 인적자원이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연구의 지속성이 확보되고, 시스템적으로 후임 연구자를 육성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수와 부교수, 조교수가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과는 다른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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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학상 수상자 대부분이 순수 국내파인 일본은 특유의 도제식 시스템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이런 도제식 시스템의 강점이 잘 드러난 사례 입니다. 그는 스승인 고시바 명예교수의 연구를 이어받아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1949년 일본에 첫 물리학상을 안긴 유카와 히데키, 2002년 고시바 마사토시, 2008년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까지 모두 한 분야에 대한 수직적 연계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본 학계와 연구문화가 국내에 매몰되는 경향은 단점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미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과 인적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도제식 시스템은 노벨 과학상에 있어 상당한 효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일본적 한계점 불구하고 한국에 시사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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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서울대 현택환 교수는 설립 100년이 넘은 이화학 연구소와 10년도 안된 기초과학연구원(IBS)을 비교하며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가 일본, 독일, 미국 등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사진=유튜브 캡처

30년 가까운 침체, 좁혀진 국력과 소득 격차, 한류의 부상, 역사문제 등의 여파로 한국에서 일본은 '별 볼일 없는 나라' '상대할 가치도 없는 나라' 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모습 입니다. 낮은 해외유학 진학률이나 산업의 갈라파고스화 등 내향적이고 폐쇄적으로 흐르는 사회의 모습은 한계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을 과소평가 해선 안된다"고 경고 합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여전히 경제규모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이자 아시아 유일의 G7 참여국이라는 사실은 차치 하더라도, 그들이 축적한 과학기술과 인프라는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게 가장 껄끄러운 이웃임에도 한국이 향후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평가와 선정 과정에 있어 일부 편향성 문제가 제기 되기도 하지만 노벨 과학상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한국이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발돋움 했다지만 아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분명 아쉬운 대목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노벨상을 향한 지름길은 수상이라는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데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2016년 한국을 찾은 일본 이화학 연구소의 마쓰모토 히로시 이사장은 "한국이 진정 노벨상을 원한다면 오히려 그 누구도 노벨상을 노리고 연구해선 안된다"고 조언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이 가치 있는 건 선수들의 오랜 땀과 정성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노벨상에 있어서도 수상 이라는 결과 보다 중요한 건 과정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간다면, 한국도 머지않아 수상의 영예를 안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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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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