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선거에 뻗은 中·러시아의'마수'…이번 美대선은 안전했나

입력 2020/11/07 06:01
수정 2020/11/15 19:29
[한중일 톺아보기-32]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 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러시아, 바이든 겨냥한 허위 정보로 대선 개입 시도"-미연방수사국(FBI)국장

"중국은 미국 대선 개입 시도에 있어 가장 적극적"-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난달 미국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선거를 앞두고 외부 개입에 대한 우려와 경계심을 표출했습니다. 2016년 사태의 반복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경고였을 겁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 등 정보기관들은 당시 러시아가 해킹과 가짜뉴스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도록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러시아가 위키리크스(WikiLeaks) 등 기밀 폭로 사이트에 민주당전국위원회로부터 해킹한 수천 건의 이메일과 클린턴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의 개인 메시지 등을 제공했다는 겁니다. 개입설을 전면 부인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추후 다시 부인하긴 했지만 "정보기관들의 결론을 받아들인다"고 수긍한 바 있고, 미 상원 정보위도 최근 이를 공식 인정했습니다. 민주당 후보이자 당선인 조 바이든 역시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지난번 선거 개입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종일관 개입을 부인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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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그래서인지 이번엔 미국에서도 단단히 벼르는 모양새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선거 당일부터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 국가정보국(DNI)은 러시아나 중국 등으로부터 있을 수 있는 의심스러운 활동을 막기 위해 24시간 비상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미국인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러시아, 중국 등 외부 개입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난달 미국 몬머스 대학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이번 대선 때 러시아나 중국의 개입을 우려하는 응답은 각각 64%, 57%에 달했습니다.


가짜뉴스·음모론…러시아의 '하이브리드전'
가짜뉴스는 국내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 분열을 부추겨 민주주의 제도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해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올 4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 인터뷰와 러시아 측 문서 등을 토대로 러시아가 미국 등 서구를 상대로 10년간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 확산에 주력해왔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러시아의 대표적 기성 매체는 다국어 국영 방송 RT(Russia Today)입니다. RT의 모토는 'Question More'로서, 대개 미국을 상대로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키고 치부를 드러내 미국에 저항하는 리더 러시아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음모론'을 제기하는데, 예를 들면 코로나19,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 확산의 배후에 사실 미국 정부가 있다는 것 등입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월 말부터 3월에 걸쳐 퍼졌던 코로나19 음모론 중 러시아발 가짜뉴스는 150건을 훌쩍 넘었습니다.

사실 선거 개입의 경우 러시아가 언급된 건 2016년 미국 대선 때뿐만은 아닙니다. 2017년 독일 총선과 프랑스 대선,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스페인 카탈루냐 독립투표, 그리고 2018년 이탈리아 총선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는 이와 관련된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됐습니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게이설(設)에 휘말렸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의 딸이라는 루머에 시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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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이처럼 목표국에 대해 군사적 물리력 행사보다 비군사적 교란 행위를 우선하는 전략을 가리켜 '하이브리드 전술'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는데, 러시아는 이 전술의 원조로 지목됩니다.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날로 진화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술은 해킹 등 정부 기관 등에 대한 직접 공략과 가짜뉴스, 음모론을 유포해 선거 등에 개입하는 심리전으로 크게 나뉘는 양상입니다. 실제로 2018년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인도주의 명분으로 시리아를 공습했을 때, 러시아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목표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트롤'(댓글부대) 활동을 급증시킨 것이었습니다.


'트롤'과 '봇'으로 선기 기간 심리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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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욕타임즈 `How Russian Bots invade our elections` 유튜브 캡처

러시아가 수행하는 심리전(戰)은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 입증된 설득 기제를 쓰는 데다 '비대칭전(戰)의 이점' 때문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대칭전의 이점'이란, 권위주의 국가가 개방된 국가의 국내 정치 과정에 쉽게 개입할 수 있는 한편, 자국에 대해선 통제하고 차단하다 보니 방어자 입장에 섰을 때도 유리한 것을 말합니다.

러시아의 심리전은 상대국의 국내 정치적 여론이 활성화되는 시점, 즉 정책에 대한 각종 논쟁적 의견과 정보가 난무하는 선거 기간에 집중됩니다. 민주국가의 경우 선거는 정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고 많은 이들의 관심과 에너지가 집중되다 보니 공격자 입장에서는 목표를 교란시킬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됩니다. 또한 꼭 선거 기간이 아니더라도 선거와 관련해 논쟁적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은 언제든 그것을 둘러싸고 사회갈등이 심화될 수 있으므로 사이버 심리전의 좋은 소재로 쓰일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RT와 같은 기성 미디어에 공개된 정보를 전파하면서 자국 입장을 확산시킨다면, SNS상에선 '트롤'과 '봇'(사람을 흉내 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활용됩니다. 예컨대, 러시아가 선호하는 후보에 대한 불리한 보도가 있으면 RT가 이를 비판하고, SNS에선 가짜 계정과 봇을 이용해 반대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식입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에 따르면, 2017년 영국 총선에서 6000여 개 러시아 트위터 계정이 선거 개입에 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SNS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동원되는 소셜 봇은 특정 메시지와 정보만을 지속적으로 제공·확산시켜 수용자가 특정 이슈에만 주목하게 유도해 여론의 양극화를 부추깁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인터넷 조사국(IRA)'의 경우 24시간 활동하는 댓글부대를 양성하는 '트롤 농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IRA는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공모 혐의로 기소됐던 러시아인들과 기업의 활동 거점으로 지목되기도 했죠.


호주·뉴질랜드·대만·미국...끊임없는 中개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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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가 주로 목표국 또는 인물에 대한 선전·선동으로 정치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면, 중국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치자금을 후원하거나 인물을 직접 매수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근래 중국의 활동이 눈에 띄는 대표적 나라가 호주, 뉴질랜드, 대만 등입니다. 지난해 3월 중국계 호주인 사업가 보 자오가 중국으로부터 호주 선거에 출마해달라며 100만달러를 받았다고 신고해 파문이 일었지만, 그가 의문사하면서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호주 안보정보원(ASIO)은 최근 중국 측에 매수된 호주 정치인이 최소 1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죠. 계속된 의혹에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해 말 이에 대응한 고위급 전담반(TF)을 신설한 바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경우 2017년 중국계 국회의원이 중국 정보기관에서 15년간 복무했던 사실이 밝혀진 데 이어 2018년에는 제1야당 대표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중국 측에서 받았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에 뉴질랜드 당국은 외국인으로부터의 정치자금 수령을 사실상 금지하는 개정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호주 언론에 따르면, 호주로 망명한 중국 스파이 왕리창은 지난해 대만 지방선거 때 중국이 친중 성향 후보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올해 초 총통 선거를 앞두고 친중 후보 당선을 위해 수십만 개 가짜 계정으로 댓글을 다는 조직적 여론 개입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중국의 완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선거 전후 중국의 내정 개입설과 관련된 다른 의혹도 조사해 '해외 세력에 의한 반(反)침투 법안' 등 대책을 세운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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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이번 대선 개입을 위해 만들어진 중국발 가짜 계정을 적발해 폐쇄했다(좌)/사진=뉴욕타임즈 웹사이트 캡처 /"미국을 전복키 위한 시진핑의 비밀 계획"이라는 커버 스토리를 실은 뉴스위크 최신호 표지

미국에서도 중국의 정치 개입 의혹은 계속 제기돼 온 상황입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대선 석 달 전부터 "러시아처럼 중국도 미국의 선거 인프라스트럭처 공격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고,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는 미국인을 가장한 중국산 봇과 트롤이 대선 목전에 정치적 내용을 담은 수많은 트윗을 날렸다고 보도했죠.


권위주의 정권, 왜 다른 나라 내정 개입하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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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일부 국가들이 다른 나라의 여론 등 내정에 알게 모르게 개입하려는 전략을 서구에서는 '샤프 파워'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따르면 민주주의 제도와 가치, 문화적 매력으로 목표국에 호소하는 '소프트 파워'에 비해 '샤프 파워'는 목표국의 청중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여론을 왜곡시켜 국익을 도모합니다.

유독 러시아나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사이버 심리전 공격 등 샤프 파워에 기대는 배경에는 패권국인 미국과의 격차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따라잡기 힘들다는 판단이 자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자유, 인권, 평등 등 민주주주의적 가치보다 국가 권위를 우위에 두는 권위주의 체제가 전개해온 외교는, 상대국으로 하여금 호감보다 반발심을 부르며 실패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러시아, 중국 모두 그동안 많은 예산을 들여 공공외교를 전개해왔지만, 여론조사 결과 세계인들의 평가는 이들 국가의기대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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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중국은 2년 전 처음 샤프 파워 논란이 일자 이는 서구의 편견을 보여주는 '거짓 학술 개념'에 불과하며, 서구적 잣대로 중국을 찍어누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한 바 있습니다. 서구의 시각일 뿐이라는 중국 주장이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또한 사이버 심리전단의 경우 중국,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자유 진영을 포함한 대부분 나라가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제도가 유명무실하거나 가혹한 검열로 국내로 유입되는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습니다. 또한 국익이라는 명목하에 갖은 수단을 동원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려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든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한국은'안전지대'일까…선제적 대비 필요
해킹은 물론 가짜뉴스 유포나 정보의 조작은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일어납니다. 러시아는 국경을 초월해 유럽과 미국에 대한 선거 개입을 했던 것으로 판명되고 있으며, 중국도 관련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안심할 상황은 아닙니다. 실제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발생했던 해킹 사태의 배후가 러시아였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18년에 선거가 실시된 민주주의 국가의 절반 이상이 사이버 공격의 표적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경우 한국과 인적 교류가 많고 서로의 정세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다 보니 정부의 해명으로 일단락 되었던 지난 3월의 '차이나 게이트' 같은 의혹도 불거지곤 합니다.

여론이 왜곡되고 사회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전부 해외발 심리전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미국과 일부 유럽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서 후퇴하는 극단적 정치세력이 발호하는 상황은 일차적으로 권위주의 국가들이 이들을 상대로 사이버 심리전을 펼칠 좋은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폐쇄성'이 특징인 권위주의 정부에 비해 표현의 자유와 정보의 이동을 보장하는 '개방성'이 특징인 민주주의 정부는 사이버 안보 환경에 있어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현실 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표현의 자유가 활발히 나타나는 온라인 공론장이나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는 선거가 사이버 심리 공작에 손상될 가능성입니다.

민주사회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막을 최후의 보루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견고함과 온전함에 있을 겁니다. 이 점을 감안해, 한국에서도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의미가 퇴색되는 일이 없도록 기술 뿐 아니라 법·제도를 포괄한 선제적 대비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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