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삼성전자·TSMC 올 투자 62조 역대최대…日, 왜 초조할까

입력 2021/03/13 06:01
수정 2021/04/21 10:49
[한중일 톺아보기-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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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글로벌 반도체 설비 투자규모는 약 1120억 달러(약128조원)로 사상 최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적 반도체 품귀현상과 맞물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공장 건설과 반도체 제조장치 설비 발주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 '옴디아(Omdia)'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설비 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9% 증가한 1120억달러(약 128조원)로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일각에서는 자동차·스마트폰용 반도체가 최소 올 하반기는 돼야 수급이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는 가운데, 전례 없는 반도체 설비 투자 붐이 올 것이라며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삼성전자·TSMC 등 128조원의 투자 붐을 주도할 주요 업체의 현황과 전망 등을 분석했다.


세계 반도체 설비 투자 이끄는 '쌍두마차' TSMC·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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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반도체 업체가 사상 최대 설비 투자를 단행하는 목적이 단순히 반도체 품귀 문제 해소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시장 영향력 확대와 더불어 지난해 10월과 11월 각각 발매된 애플 '아이폰12'와 '맥북'에 사용된 것과 같은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양산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애플 제품을 양산하며 갖게 된 첨단 생산능력을 한층 키우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대표 업체가 대만의 TSMC다. 코로나19 여파에도 역대급 규모의 반도체 설비 투자가 예상되는 데는 일단 TSMC 역할이 크다. TSMC는 지난 1월 결산 설명회를 열고 올해 반도체 설비에 280억달러(약 32조원)를 투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TSMC 경쟁사인 삼성전자로서는 이러한 TSMC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설비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46% 증가한 32조9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TSMC의 공격적 투자에 대응해 삼성전자는 올해도 지난해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에 의한 반도체 설비 투자만 550억달러(약 62조원)를 훌쩍 넘어 전 세계 투자규모의 5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TSMC, 투자 80% 첨단 공정에…애플 이외 판로 확대도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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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두 회사에 이어 매년 90억달러(약 10조원) 이상 설비 투자를 지속해온 미국 인텔, 그리고 한국 SK하이닉스가 뒤를 잇는다. 여기에 일본 기옥시아(구 도시바 메모리),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 등 중국 회사의 투자를 합산해보면 전 세계 반도체 설비 투자액이 어떻게 구성될지 가늠할 수 있다.

TSMC는 280억달러의 전체 투자액 중 약 80%를 3㎚(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5㎚, 7㎚의 최첨단 공정에 할당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TSMC가 2019년 이후 설비 투자액 대부분을 첨단 공정에 쏟아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장 부족한 차량용 반도체 등 40~28㎚의 공정 라인을 증강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즉, TSMC는 애플 제품 양산으로 쌓은 세계 최첨단 공정 생산능력을 더 고도화하고, 애플 이외 우량 고객에게로 판로 확대를 위해 역대급 설비 투자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반도체 회로 선폭의 미세화는 반도체의 성능을 결정한다. 반도체 첨단 기술 개발 투자 경쟁에서 밀려난 업체들은 이미 속속 도태되고, 현재 10㎚ 이하 미세화 경쟁에서 남아 있는 회사는 TSMC, 삼성, 인텔 '빅3'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5㎚ 기술을 이끌고 있는 건 TSMC인데, 지난해 양산에 성공한 5㎚ 반도체는 아이폰12에 탑재된 AP(Application Process)인 'A14 Bionic'에 쓰이고 있다.


TSMC-애플의 밀월과 투자 촉진하는 ASML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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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밀월관계를 통해 제조 기술을 닦아온 TSMC는 현재 5㎚ 제품도 아이폰 12 양산을 통해 수율을 향상시키고 있다. 내년 양산 계획인 3㎚ 제품 역시 신형 아이폰에 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진=매경DB]

지난해 TSMC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당시 총매출의 15%를 차지하던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이로 인해 대중 수출 물량은 72%나 급감했지만, 대신 미국 기업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물량을 수주받은 덕에 창립 이래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TSMC는 애플과 밀월관계를 통해 제조 기술을 닦아왔다. 애플에서 위탁생산한 아이폰 반도체의 미세화를 상세히 분석한 덕분에 생산 기술에 있어 선두를 달려온 것이다. 현재 5㎚ 제품도 아이폰 12 양산을 통해 수율(결함 없는 제품 비율)을 향상시키고 있다. 그리고 올해 안에 차세대 3㎚ 제품 시제품을 제작하고 2022년에는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 제품 역시 내년 출시될 신형 아이폰에 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제품 제조에는 최첨단 EUV(극자외선)라는 기술이 필요한데, EUV 노광 장치의 대당 가격은 현재 1억6000만달러(약 1800억원)정도다. EUV 광을 사용하지 않는 구형 노광 장치의 2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이에 대해 옴디아의 미나미 아키라 수석 컨설팅 이사는 "공정이 첨단화될수록 장비가는 치솟고 투자액은 늘어난다. 이것이 최근 설비 투자 규모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재 EUV 노광 장치를 제조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네덜란드 기업 ASML이 유일하다. 지난해 ASML이 내놓은 EUV 노광 장치 출하 대수는 겨우 31대뿐이었다. 이들 장비 대부분은 TSMC가 선점했던 것으로 보인다. 5㎚ 제품 양산 기술에 자신감을 붙인 TSMC는 올해 EUV 노광 장치 도입 대수를 한층 더 늘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응에 나서는 삼성전자, 초조한 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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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TSMC의 거액 투자에 대응해 올해 설비 투자 규모를 증액하는 수순은 불가피해 보인다.


업계에서는 올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비 투자 규모가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설비 투자액을 훌쩍 넘어선 36조~3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메모리 사업에서 독주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탁 생산(파운드리)에서는 TSMC에 줄곧 뒤처져 왔다. 이에 대응해 지난해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입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선언하면서 대대적 파운드리 부문 강화에도 나섰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TSMC와의 세계 시장 점유율 격차는 2019년 1분기 29.0%포인트에서 지난해 4분기 39.2%포인트로 더 벌어진 상태다.

이미 지난해 5㎚ 제품 양산을 시작한 삼성전자는 EUV 노광 장치 도입을 확대해 TSMC에 대응한 최첨단 생산설비를 갖추려 해왔다. 때문에 조만간 EUV 노광 장치를 둘러싼 삼성전자와 TSMC와의 쟁탈전은 더 격화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편, 대대적 투자가 기대되는 TSMC, 삼성과 달리 인텔의 투자 방침은 아직 불분명하다. 지난해 143억달러(약 16조원) 설비 투자를 단행했지만, 올해 설비 투자 계획은 아직 발표된 바 없다. TSMC의 5㎚ 제품에 상당하는 7㎚ 중앙연산처리장치(CPU) 개발이 늦어 양산까지 걸리는 시점은 2023년이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이 7㎚ 제품 생산에 도달했을 무렵이면 TSMC와 삼성자는 이미 더 앞서 나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 볼 때 인텔은 '빅3'의 미세화 경쟁에서는 점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사 CPU 등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유지를 위해 TSMC에 생산 위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취임한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의 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인텔은 지난해 10월 플래시 메모리 사업을 한국 SK하이닉스에 매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25년 매각 완료 때까지 중국 다롄 공장에서 생산은 계속하지만 이미 메모리 사업 투자는 축소돼 올해 설비 투자의 증가 요인이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올해 인텔의 반도체 설비 투자는 예년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ASML 독주 속 日니콘·캐논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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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의 위상저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편 ASML의 그늘에서 일본의 니콘과 캐논은 고전 중이다. 과거 반도체 노광 장치 시장은 ASML, 니콘, 캐논 등 3개사가 점유율을 다퉈왔지만, ASML이 독주하는 '1강 2약' 구도로 굳어진지 오래다. 현재 ASML은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 니콘과 캐논의 점유율은 각각 10%가 채 되지 않는다.

1990년대 노광 장치 시장 점유율 1위였던 니콘은 2000년대 이후 ASML에 밀려났다. EUV 이전 세대인 ArF 액침 노광 장치 시장에서도 ASML은 9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니콘 등 일본 기업이 시장에서 다시 ASML을 밀어낼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TSMC와 삼성전자가 EUV 장비 도입을 위해 니콘에서 ASML로 갈아탄 지 오래고, 니콘으로부터 장치를 공급받는 인텔도 향후 EUV 노광 장치 조달을 늘리면 니콘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인텔이 TSMC에 반도체 생산 위탁을 단행하고 자체 생산을 축소한다면 니콘으로부터 더 이상 노광 장치를 공급받을 필요도 없어진다.

니콘과 달리 캐논은 다른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최첨단 미세화 기술이 요구되는 노광 장치 개발은 포기하고 구세대 노광 장치 개발·판매를 노리는 것이다. 노광 장치는 극한의 미세화가 요구되는 스마트폰이나 PC용 반도체뿐만 아니라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산업용 구식 장비 등에도 필요하다. EUV가 아닌 기존 생산기술이 요구되는 분야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주간 다이아몬드'는 ASML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캐논의 생존전략은 다른 일본 기업들에도 참고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반도체 설비 투자 규모는 TSMC, 삼성, 애플 등 시장 선도자들에 의해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된 상태다. 또한 반도체 제조 장치 트렌드는 ASML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결국 기옥시아, 도쿄 일렉트론을 필두로 한 일본 반도체 기업들도 투자 파급 효과 때문에 이익은 보겠지만, 시장 주역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달 TSMC가 쓰쿠바시에 100% 자회사를 설립하는 형태로 진출한다는 소식과 함께, 일본 경제산업성은 보조금 등을 통해 TSMC와 일본 회사들 간 협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현재 TSMC가 자랑하는 첨단 공정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본 회사가 전무한 현실에 비춰 '빛 좋은 개살구'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여러면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상징한다고 언급돼온 반도체 산업의 위상 저하는 올해도 계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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