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영화·드라마·J팝 다 죽쒀도...日아니메는 잘 나가는 이유

입력 2021/04/17 06:01
수정 2021/04/18 22:37
[한중일 톺아보기-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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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7일 국내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은 누적 관객수 170만명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한 편이 신드롬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바로 '귀멸의 칼날(이하 귀멸)'이라는 작품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고 도처에 '오타쿠'가 넘쳐나는 '아니메(애니메이션의 일본식 표현) 왕국' 일본에서도 '귀멸'의 인기는 특별해 천문학적 경제 효과까지 발생했다고 합니다.

닛케이에 따르면 '귀멸'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지난해 12월 기준 이미 2700억엔(약 2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일본에서 개봉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욱일기' 논란에도 국내에서 한때 박스오피스 1위에 머무르며 총 관객 170만명 동원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대만에서도 역대 장편 애니메이션 흥행 1위 기록을 세웠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달 개봉이 예정돼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반사 효과도 흥행 요인 중 하나로 꼽히지만, 어쨌든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과 달리 근래 일본의 다른 대중문화 상품, 즉 영화, 드라마, J팝 등은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 영화는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는 혹평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J팝과 일본 드라마 역시 K팝과 한국 드라마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단 지적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계속 흘러나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애니메이션에 있어선 여전히 건재한 모습입니다. 특히 한국은 2019년을 제외하면 거의 매년 미국 다음으로 수출계약이 많은 시장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수출의 주요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왜 일본은 유독 애니메이션에 강점을 보이는 걸까요.

아니메 친화적 국민성…"서브컬처 탈피했다" 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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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등장 이전 지하철에서 만화를 보는 성인들(좌)/지난해 JR큐슈가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콜라보해 운행한 열차와 몰려든 일본인들(우) [사진=JR]

일본이 애니메이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일본인의 국민성과 무관치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TV나 영화관을 제외하고 지하철 승차권 발매기, 거리 광고 디스플레이 등이 온통 애니메이션 이고 총리가 국회에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대사를 읊는 나라는 일본뿐입니다. 40대 이상 중장년층 만화·애니메이션 소비 인구가 60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나라도 일본 외에는 찾기 어렵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나라에서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하위문화(서브컬처)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습니다. 한국 영화시장 규모는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은 한국 영화시장 내에서 철저한 비주류입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의 전유물로만 취급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저연령층은 애니메이션의 주요 타깃이지만, 이와 동시에 성인용 애니메이션 시장도 매우 활성화돼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에서만큼은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서브컬처에서 탈피해 하나의 주류문화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인구 10분의 1이 만화·아니메에 빠진 '오타쿠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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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복장으로 시내 한복판에서 춤을 추는 일본 오타쿠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특유의 '오타쿠 문화'도 일본 애니메이션 경쟁력을 높여주는 요소입니다.


지금은 분야를 막론하고 어떤 대상에 심취해 있는 사람을 '오타쿠'라고 부르지만, 시작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 빠져 있는 사람을 부정적 뉘앙스로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일본 오타쿠들은 비록 프로는 아니더라도 직접 창작한 작품을 홍보하고 교류하는 장으로서 '코믹마켓' 이란 것을 이뤄 활동해 왔습니다. 1975년 처음 시작된 코믹마켓은 1990년대 중반부턴 기업들까지 참가하며 더 활성화됐으며, 현재는 매년 해외를 포함해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글로벌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코믹마켓을 통한 교류와 활동은 차후 상업 애니메이션 수준을 높이는데 까지 이어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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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지난해 일본 야노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일본 내 각 분야 오타쿠 인구 추계에 따르면 애니메이션과 만화 오타쿠 인구는 1200만명이 훌쩍 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곧 일본은 전체 인구(1억2000만명) 중 10분의 1이상이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심취해 있는 '오타쿠 천국'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소 섬뜩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해 아니메 평론가 도이 노부아키(土居伸彰)씨는 "디즈니와 픽사 작품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인기가 있다면, 일본 아니메는 특정 취향 팬들이 좁고 깊게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日시장 규모 한국 35배…도쿄는 최적의 '아니메 클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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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애니메이션과 관련해 오랜 기간 형성된 거대한 산업 기반의 역할도 존재합니다. 사실 2000년대 이후 2012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소강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해외 판매 호조와 온라인 스트리밍 수요 증가 덕에 7년 연속 상승세를 탔고, 2019년 기준 아니메시장 매출 규모는 2조5000억엔(약 25조원)을 넘어섰습니다. 같은 해 기준 약 7000억원이었던 한국 애니메이션시장 매출의 35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이러한 거대 시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투자와 제작·공급이 활발히 일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일본은 매년 330편이 넘는 자국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며, 이는 한국(한 해 70여 편·2019년 기준)의 5배에 달합니다. 한 산업의 경쟁력은 생산성을 얼마나 갖췄느냐가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일본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좋은 수요·공급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수요층이 크고 다양하니 부가가치가 높은산업과 연동되기도 쉽습니다.

노동력 면에서도 일본은 1970년대 이미 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학교가 생겨 애니메이터 양성이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또 그보다 더 이전인 1960년대부터 만화와 상업 미술 등이 발달해 제작 스튜디오들이 필요 인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기도 용이했죠. 현재 일본 전국의 제작 스튜디오 중 약 90%가 몰려 있는 도쿄는 인력뿐 아니라 투자자와 제작위원회 구성을 통한 자금 조달에 이르기까지 최적의 입지 환경을 갖춘 아니메 클러스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日아니메, 에도 시대 '우키요에' 계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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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사이가 만년에 그린 우키요에 홍법대사수법도(弘法大師修法図)에는 도깨비 등 공상적 존재가 그려져 있다 [사진=일본 위키피디아]

일본은 자국 애니메이션이 역사적 연원이 깊다고 주장합니다.


애니메이션과의 연관성이 제일 많이 언급되는 건 17세기 에도 시대에 유행했던 대중 풍속화 '우키요에(浮世繪)'입니다. 우키요에와 애니메이션은 모두 기본적으로 평평한 2차원 공간을 한정된 색으로 균일하게 채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닙니다. 또한 다루는 소재에도 비슷한 점이 발견됩니다. 단적으로 애니메이션에는 주로 공상·환상적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역시 환상적 대상을 그린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사실 우키요에는 일본에서 20세기 이전까지 수백년 동안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소재가 고상하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를 위해 대량 생산·판매됐으며, 화가 신분이 높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애니메이션·만화가 세계적 인기를 끌자 일본에서도 우키요에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일본 당국이 우키에를 통해 자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성을 홍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키요에와 현대 만화·애니메이션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시간 차가 존재하는 만큼 직접적 관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호쿠사이 만화'에는 '만화(漫畵)'라는 한자가 쓰였지만, 당시 풍속과 정물 스케치를 모은 화집이라는 성격을 띠어 이야기가 있는 현대적 만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풍속화에서 발견되는 유사점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일본인의 선호도가 그들의 역사와 전통에서 비롯된 오랜 취향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쿨재팬'의 명암…日 전문가들 "쓸데없는 짓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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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쿨재팬 사업 누적 적자는 지난해 3월 220억엔(약 2260억원)을 넘어섰다.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2013년부터 본격 추진해온 '쿨재팬' 사업(문화 상품의 해외 진출 홍보사업)의 주요 대상입니다. 일본에서는 한류 인기가 한국 정부 차원의 지원 덕분이라고 보는 시각이 만연한데, 쿨재팬 사업도 이 점을 의식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쿨재팬 사업의 효과라고 단언할 순 없겠지만, 최근 몇 년 새 일본에서는 '4차 아니메 붐'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애니메이션으로 인한 해외 수익이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사업 매출 전체의 60% 이상이 애니메이션에 편중돼 있고, 지난해 3월 기준 누적 적자가 220억엔(약 2260억원)에 달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내에서도 국가가 주도하는 쿨재팬 시책에 대해서는 찬성보다 반대 의견이 많습니다.

애니메이션 연구자이자 니혼대 예술학부 강사 쓰카타 노부유키(津堅信之) 씨에 따르면, 제작자들은 국가가 관여한다는 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한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공무원들이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익명의 감독은 "아니메와 일본 만화는 과거부터 어떠한 지원도 없이 작가와 팬들 힘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라며 "쓸데없는 짓은 말고 내버려 두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회의적 반응은 제작자뿐 아니라 비평가와 팬들로부터도 대체로 공통된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 애니메이션, 웹툰 앞세워 도약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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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한미일 합작 애니메이션 `신의 탑`

한국도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을 위해 나름 노력해 왔고, 한일 간 격차가 계속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혹자는 한국이 잘하는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분야에 집중하면 된다고 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언제까지 미국과 일본의 하청에 머무르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은 "한 나라의 지적재산권(IP)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 산업이 동반 상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애니메이션은 현재 한국 IP 산업 중 가장 약한 고리인데, 애니메이션 산업 발달로 관련 산업의 부가가치와 IP 산업 전체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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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카카오의 웹툰 플랫폼들은 일본 등 세계 디지털 만화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최근 한국 웹툰이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해외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웹툰을 애니메이션화해 인기를 끄는 작품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웹툰 '신의 탑'을 기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미국 내 인기 SNS '레딧' 랭킹에서 일본 아니메를 제치고 1위에 올랐고, 한국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달라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웹툰 기반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서는 기존에 아동용에 편중됐던 한국 애니메이션의 장르와 수요층이 다각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한 원장은 "웹툰을 잘 영상화한다면 한국도 애니메이션 강국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현재 가장 절실한 건 민간의 공감과 투자"라고 말했습니다.

흔히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한다지만 애니메이션도 다르지 않습니다. 향후 웹툰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산업이 더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이 과연 지금보다 얼마나 진일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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