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건희가 탐낼만 했네"...삼성전자 '라이벌' TSMC 성공비결은

입력 2021/04/24 06:01
수정 2021/05/08 20:42
[한중일 톺아보기-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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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tsmc는 각각 한국과 대만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들이다. [사진=매경DB]

대만에서 TSMC의 위상은 한국의 삼성전자 이상이다. 설립 30년이 조금 넘은 이 회사는 2010년대 이후 불어닥친 스마트폰 열풍과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삼성전자를 대체할 만한 기업은 없다. 대만의 TSMC 역시 마찬가지다. 대만에 큰 자연재해나 단전 사고 등이 발생하면 외신들이 가장 먼저 체크하는 건 총통부가 아닌 TSMC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반도체 웨이퍼를 TSMC에 의존하는 미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대표는 중국에 의한 대만해협 리스크 대비책과 관련해 "플랜B는 없다. 모든 것이 TSMC의 어깨 위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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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급성장에 이어 올해도 전년 대비 6% 성장한 738억달러로 전망된다. [그래픽=조보라]

물론 삼성전자는 간판인 반도체 외에도 휴대폰, 가전 등 다른 사업들도 영위한다.


파운드리(위탁생산)만 하는 TSMC와 달리 설계(팹리스)까지 하는 IDM(종합 반도체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 반도체 품귀와 맞물려 기업들이 속속 투자확대를 천명하면서 파운드리 업계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 역시 파운드리 육성 전략이나 수주 현황에 많이 좌우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삼성전자를 가장 경계하는 TSMC는 3년간 1000억달러(약 116조원)라는 역대 최대 설비투자 계획으로 응수했다. 첨단공정에서 삼성전자와 TSMC에 밀려났던 인텔도 200억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고 파운드리판 복귀를 준비 중이고, SK하이닉스도 투자 확대를 언급한 상태다. 날로 치열해지는 쟁탈전 속에서 60% 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TSMC의 성공 비결은 뭘까.

56세에 新산업 개척…대만 '반도체의 대부' 모리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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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모리스 창은 1989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만을 방문했을때 그로부터 직접 영입제안을 받았었다고 밝혔다 [사진=바이두]

TSMC의 일류기업 도약에는 창업자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전 회장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모리스 창은 대만에서 '반도체 산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로, 보통 은퇴를 생각할 시점인 56세에 수많은 반도체 회사들이 외면하던 파운드리 분야를 손수 개척했다.

1985년 모리스 창은 대만 정부의 부름에 미국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I)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를 박차고 고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이와 신분을 내려놓고 TSMC 설립자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는 2018년 대만 경제지 '상업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창업 자금 2억2500만달러를 모으는 데 1년 정도 걸렸다"며 순탄치 않았던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당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일본과 미국 회사들이 지배하고 있었고, 99%는 칩의 설계부터 제조, 판매까지 원스톱으로 연결되는 수직통합형이었다. 파운드리는 큰 공장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오더만 넘겨받는 수준이었다. TSMC의 모델이 생존할 수 있다고 여기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 반도체 대기업들은 파운드리가 제대로 된 업종이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TSMC 설립 2년 후 냉전 종식과 함께 변화를 맞았다. 대량의 IT기술이 민간으로 풀려나오고 '미·일 반도체 협정'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설계회사들이 대거 등장했다. 팹(제조공장)을 설립할 자금은 없던 이들에게 TSMC는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최적의 협력 대상이었다.

미국 주도로 반도체의 수평분업화가 탄력을 받는 가운데, TSMC는 경쟁 상대가 전혀 없는 독점 상태를 7~8년간 계속 누렸다. TSMC는 설계업체들의 생산물량을 모아 처리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형성하고 투자와 회수의 선순환에 성공했다. TSMC가 세계적 분업화의 물결에 올라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변화를 기민하게 감지한 모리스 창의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기밀누출 우려에 "고객과 無경쟁" 원칙으로 신뢰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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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는 지난 2015년부터 애플 아이폰의 AP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애플 입장에선 경쟁사인 삼성전자 보다 파운드리 업체 TSMC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자체가 기술과 자금 문턱이 높은 분야지만, TSMC가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고객사의 신뢰였다. 1000개에 육박하는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설계도의 기밀 유지는 기업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설계도를 파운드리 회사에 보내 생산을 위탁하는 과정에서 기밀이 샐 우려가 컸다. 때문에 TSMC 이전에는 파운드리 모델로 성공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모리스 창은 이것을 가능케 했다. 수많은 고객사와의 긴밀한 협업과 서비스 등 결벽에 가까운 관리는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의 작은 생산라인을 시총 약 5580억달러(약 623조원)의 인텔의 두 배를 넘어 삼성전자를 추월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모리스 창 역시 스스로 TSMC 성공의 비결로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이 가장 주효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4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해 온 건 고객의 신뢰"라며 "항상 가볍게 약속은 하지 않았고, 일단 수주하면 손실이 나도 감수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 AT&T, 퀄컴, 미디어텍, 애플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들이 자사의 첨단제품을 TSMC에 안심하고 발주하게 됐다. TSMC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외주 하도급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설계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고객사들의 신뢰 확보를 위한 경영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리스 창은 위탁생산에 초점을 맞춘 계기로 창업 당시 대만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대만의 반도체 제조 기술은 최첨단보다 2세대 반 정도 뒤처져 있었고, 설계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수율(양품률)은 높다는 장점이 있어 일부 미국 회사들보다도 나았다. 난 여기 주목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폭 지원과 위기를 기회로 삼는 공격적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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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의 자본금과 기술개발을 지원한 대만 공업기술연구원(좌)과 TSMC본사가 위치해 있는 신추과학공업단지 모습(우)

국가 경제의 핵심 기업인 만큼, 대만 정부의 전폭적 지원도 TSMC의 성장에 큰 보탬이 됐다. 애초에 TSMC는 설립 자본금의 절반을 대만 ITRI에서 출자 받은 공기업이었다. ITRI는 자금 보조뿐 아니라, 공동 개발한 원천기술을 TSMC를 비롯한 자국 반도체 기업에 이전했다.

1992년 대만 정부가 지분 대부분을 처분하면서 TSMC는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지분의 7%가량은 대만 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보유하고 있으며, 모리스 창 회장의 경영권을 지속 뒷받침했다. 덕분에 TSMC는 투자와 기술 개발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있어 신속히 대처할 수 있었다.

'대만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신주과학공업단지(新竹科學工業園區)는 사실상 TSMC를 위한 산업 클러스터 역할을 해왔다. 입주 기업들은 5~9년간 법인세 면제, 낮은 대출금리, R&D 보조금 등 각종 혜택을 받았다. 신주과학단지에 본사를 둔 TSMC는 정부 차원의 장학 혜택과 산학 연계 교육모델을 발판으로 대만 국내외 우수 인재들을 흡수해 왔다.

특히 TSMC는 '주식보너스 제도'를 통해 순수익의 10%가량을 신주로 발행하고 액면가로 직원들에게 나눠줬는데, 대만 정부는 시세 차익에 대해 비과세하는 식으로 혜택을 제공했다. 이 제도는 TSMC가 인재를 유치하는 데 중요한 인센티브 역할을 했는데, 직원들은 매년 지급받은 주식 보너스만으로 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 핵심 인재가 TSMC 기술력 발전의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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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보라

공격적인 투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TSMC 영업이익률은 평균 30~40%인데, 벌어들인 이익을 기술 개발과 설비에 아낌없이 재투자해왔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모두 자본 지출을 줄였지만, TSMC만 설비 투자를 크게 늘렸다.

상황이 TSMC에만 호의적일 리는 없었다. 2005년 한 번 은퇴를 선언했던 모리스 창은 TSMC의 매출이 급락하는 등 위기 속에서 3년 만에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해고 직원을 복직시키고 2009년부터 매년 100억달러에 달하는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연구개발 비중도 높였다. 그 결과 2010년 TSMC 매출액은 전년 대비 41.9% 늘어난 4195억대만달러(약 17조1659억원)를 기록했다.

격화되는 글로벌 반도체 쟁탈전…삼성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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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한국의 인재 수준을 언급하며 "삼성전자는 TSMC의 강력한 경쟁자"라고 말했다 [사진=대만 연합보]

"삼성전자는 TSMC의 강력한 경쟁자로 향후 대결이 불가피하다"

지난 21일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일본과 중국은 현재 반도체 제조에 있어 대만의 라이벌이 될 수 없고, 미국 역시 장기적으로 대만을 앞서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인재 수준을 언급하며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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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했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 [사진=매경DB]

한편, 그 다음날인 22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 3개월 만에 열린 공판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후발 주자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전력투구중인 TSMC에게 선장이 부재한 라이벌의 상황은 예기치 않던 호재다. 반면, 삼성의 반도체는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결단력이 빛을 발해 온 대표적 사업군인 만큼 총수의 부재는 악재라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지난 1월 오너의 공백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반도체 쟁탈전에서 의사결정을 더디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은 사실상 TSMC, 삼성전자에 의해 과점화된 만큼 한쪽이 항복해야 끝나는 치킨게임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자본집약적이고 제조공정의 세대교체가 빠른 특징으로 인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쟁터와 같다. 반도체 수급이 경제를 넘어 군사안보적 파급력을 갖는 가운데 압도적 시장 1위와 후발주자 간의 선두 쟁탈전. 승부는 의외로 기술과 투자문제가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결정될지도 모른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TSMC와 정치가 발목을 잡는 삼성전자에 더욱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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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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