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국식 사회주의로 G2 올랐지만…더 짙어진 불평등·인권 그늘 [글로벌 이슈 plus]

입력 2021/06/24 17:36
수정 2021/06/24 19:15
내달 1일 창당 100년 맞는 중국 공산당

열강 침입·산업화 혼란 속
당원 53명 초라한 출발
100년후엔 14억 인민 통치

사회주의에 자본주의 결합
70년간 GDP 1500배 성장
빈부격차·불평등 심화로
농민·노동자 민심 이탈

대만·홍콩·신장 문제 놓고
서방과 마찰도 해결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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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대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교내 광장에 `경축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라고 쓴 대형 펼침막을 깔아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FP = 연합뉴스]

중국 대륙은 지금 '붉은색(紅色)' 일색이다.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100년을 경축하는 선전물과 공연물이 넘쳐난다.

공산혁명 성지로 불리는 징강산(井岡山)을 비롯해 대장정 후 중공 수도였던 옌안(延安) 등에는 '홍색 관광' 열기가 뜨겁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와 같은 애국주의 노래 역시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중국 공산당의 헌신을 그린 100부작 다큐멘터리가 TV에서 방영되고 공산당원의 충성심을 다룬 사연이 언론 매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홍색 캠페인'의 배경에는 지난 100년간 중화민족을 근대의 치욕에서 구원해 세계 중심에 다시 우뚝 서게 만들었다는 공산당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내면에는 공산당이 미래 100년에도 중국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다음달 1일 창당 100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의 공과 그리고 미래를 살펴본다.

◆ 초라했던 시작과 100년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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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의 출발은 초라했다. 서구 열강의 침탈이 가속화되던 1921년 7월 23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의 작은 벽돌건물에서 창당대회가 열렸을 때 참석자는 마오쩌둥(毛澤東) 등 13명에 불과했다. 전국 당원 수는 53명이었다.

하지만 성장세는 빨랐다. 외세의 침입과 군벌의 난립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형성된 노동자 계층의 현실에 대한 불만은 공산당이 몸집을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 특히 국민당의 탄압을 받은 공산당은 대장정을 통해 민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옌안에 새 근거지를 마련하고 마오쩌둥 지도체제를 본격적으로 확립한 것도 이때다. 이후 일본이 1945년 미국 연합군에 항복하자 공산당과 국민당은 1946년 중국 본토 주도권을 놓고 내전에 돌입했다. 공산당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국민당 군대를 대만으로 쫓아낸 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고 중국 대륙을 차지했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은 영국과 미국을 뛰어넘겠다며 1958년 대약진 운동을 시작했다.


산업화 국가로 변신하겠다는 목표였지만 아사자 수천만 명이 발생하며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1966년부터 약 10년간 진행됐던 문화혁명도 당원 300만명이 숙청되고 경제가 피폐해지는 등 혼란만 야기했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이후 공산당의 2세대 지도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의 공이 칠이라면 과오는 삼"이라는 이른바 '공칠과삼(功七過三)'의 논리를 앞세워 중국 인민을 달랬다. 그러면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해 중국 사회주의에 자본주의를 결합한 것이다.

이후 중국의 국가 지도자 바통을 이어받은 장쩌민(江澤民)은 자본계급을 껴안으며 공산당의 기반을 확대했고 후진타오(胡錦濤) 시절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이어 권력을 잡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한 '중국몽(中國夢)'을 앞세워 또 다른 공산당의 미래 100년을 꿈꾸고 있다.

◆ 기적 같은 경제성장과 짙어진 그늘


공산당이 내세우는 최대 치적은 중국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중심 국가로 키워낸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은 1952년 679억위안에서 2020년 101조5986억위안으로 1500배 가까이 불어나며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무역규모는 2020년 기준 4조6463억달러로 세계 1위다. 1950년(11억3000만달러)보다 4112배 커졌다. 외화보유액도 3조1982억달러(5월 말 기준)로 세계 2위인 일본(1조3785억달러)을 크게 뛰어넘는다. 특히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년을 맞아 14억 인구가 빈곤에서 탈출하는 '샤오캉(小康) 사회'를 달성했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의 신속한 통제로 상징되는 효율성도 중국 공산당의 자랑 중 하나다. 하지만 성장에 드리운 그늘도 점차 짙어가고 있다. 일단 일부부터 잘살게 만들고 다른 곳으로 부를 확산시키자는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을 앞세워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계층 간, 지역 간 소득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대표적 소득분배 지표인 지니계수는 0.5 근처까지 치솟았다. 지니계수가 0.5를 넘으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소요와 폭동으로 사회체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양극화로 인해 공산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자와 농민의 민심이반이 심각해지면 공산당의 존립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공직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시 주석 취임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토착화된 공무원들의 부패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외부 여건도 만만치 않다.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규정한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대만, 홍콩,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 등을 놓고 서방세계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시 주석 장기집권의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헌법의 국가주석 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한 만큼 법적인 걸림돌도 없다. 베이징 소식통은 "내년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열리는 이번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는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공식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 손일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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