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文 "베트남이 남북관계 개선 도와달라" 도대체 무슨 말일까

입력 2021/07/17 11:01
수정 2021/07/1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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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응우옌푸쫑 베트남 국가주석이 지난 2019년 3월 1일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공식환영행사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짜오 베트남-150]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전화 통화를 갖고 글로벌 정세 등에 대해 협의했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당서기장은 베트남 국가서열 1위입니다. 지난 1월 베트남 새 지도부 출범 이후 양국 정상 간 교류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여러 얘기가 오간 가운데 양 정상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은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를 제공하고 주요 계기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지해줘 감사하다"면서 "북한과의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인 베트남이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쫑 당서기장은 "베트남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적인 협의 대화를 지지한다"고 답했다고 하네요.

베트남이 북한과 사회주의 체제라는 공통점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정례적으로 친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지곤 하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베트남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2019년 열린 하노이 미·북(美北)정상회담의 그날이 떠오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하노이행이 결정된 이후 그곳에서 체류하던 저는 바빠졌습니다. 하노이 구시가지에 있던 북한대사관에 기자들이 진을 쳤습니다. 김 위원장 방문이 예정된 후 그곳의 공기는 달라졌습니다.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나무를 자르고 청소를 하고. 그래도 잘 끓여진 오뚜기 카레처럼 누렇게 변색된 쇠락한 공간 자체를 통째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반면 하노이에 있는 한국대사관은 하노이 최고 럭셔리 건물로 꼽히는 롯데타워에 보란 듯이 멋있게 자리하고 있었지요. 또 하노이 최고 부자동네로 신축 건물을 지어 이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내친김에 하노이에 있는 북한 식당 몇 곳도 들러보았습니다. 호기심에 그곳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냉면을 팔아 외화를 만드는 곳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활짝 핀 억지 웃음으로 북한식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한국인 취객의 술주정을 받아내는 직원을 보며 문득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코리아'는 한국이지 북한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북한은 자기들보다 못사는 나라로 인식될 뿐입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말씀처럼 '한국은 베트남의 1위 투자국이고,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대상국이며, 베트남에 90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고, 각각 20만여 명의 양국 국민이 거주하고 있을 만큼 양국은 특별한 관계'입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베트남이 한 해 수출하는 금액의 30%를 한국 기업이 만듭니다.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한국어는 당연하게도 서울 표준어 발음이지 북한 말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북한에 "그렇게 있지 말고 한국을 본받아 핵을 버리고 개혁·개방 노선으로 잘 좀 살아봐라"라고 조언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의 의도도 그런 것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베트남의 최고 존엄은 단연 호찌민 전 주석입니다. 하노이에 있는 '호찌민묘'는 관광 스폿 중 하나입니다. 호찌민 전 주석도 김일성 전 주석도 '박제된 신화'로 몸만은 영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찌민에게 보내는 베트남 사람들의 존경은 '찐'입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이끌며 베트남을 지배하던 프랑스를 물리쳤습니다. 이후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베트남 통일의 기초를 닦게 되죠.

그는 통일을 몇 년 앞두고 사망했는데 당시 그의 유언은 이랬습니다.


'웅장한 장례식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을 화장시켜 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도자기 상자에 담아 하나는 북부에, 하나는 중부에, 하나는 남부에 뿌려라.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물론 그의 유언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아 그는 사망 당시 모습 그대로 하노이에 누워 있습니다만, 당시 그의 진심은 이랬습니다. 평생을 공식적으로 독신으로 산 그는 그의 자리를 물려받을 후손도 남기지 않았죠. 죽기 직전까지 극도로 검소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이 자식에게 자리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베트남은 '1인 독재'가 아닌 '집단 지도체제'로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베트남 1인자인 당서기장은 10여 년 전에는 베트남 서열 5위쯤 되는 국회의장 자격으로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당시 그가 1인자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베트남이 민주주의 국가는 당연히 아니지만 적어도 지도부 내에서는 정기적으로 물갈이가 되는 견제 구도가 살아 있습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지역별로 고른 인재가 집단 지도체제에 들어올 수 있게 시스템으로 배려해서 나라를 통합으로 이끄는 구도입니다. 이런 식으로 베트남은 정치에 걸리는 과부하를 조직적으로 분산하며 활발한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 대통령이 베트남에 북한 김 위원장을 상대로 1인 독재 시스템을 버린 호찌민을 본받으라는 말을 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베트남은 2018년부터 미국 주도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다국적 해상합동훈련 '림팩(RIMPAC)'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림팩이란 태평양 해군 간 연합작전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벌이는 기동훈련입니다. 'Rim of the Pacific Exercise'를 줄인 말로 주최국은 패권국인 미국입니다. 암묵적으로 태평양 인근에서 자국 영향력을 높이려는 중국에 대응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미국은 한때 총을 맞대고 치열한 전쟁을 벌인 국가이지만, 지금은 공동 해상 훈련을 하는 관계로 전환했습니다. 반면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훈련을 할 때마다 원색적인 비난성명을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북한도 베트남을 본받아 미국과 공동 훈련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나아가라고 권유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마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북한과의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해 베트남이 도와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모르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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