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日총선 D-3] 기시다 밋밋한 17분 유세에 퇴근길 시민들 환호는 없어

입력 2021/10/28 05:00
수정 2021/10/29 16:32
"여러분 목숨과 삶 지켜낼 정당 어디냐" 호소했지만 수백명 차분한 반응
유권자 "우유부단하단 느낌…스가보단 나은데 선거 얼굴인지 모르겠다"
확성기를 타고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으나 지켜보는 관중 속에서 열광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본 집권 자민당을 이끄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유세 현장 분위기가 딱 그랬다.

26일 저녁 도쿄도(都) 다치카와(立川)시 JR다치카와역 북쪽 출구 앞 도로.

지난 19일 후보 등록과 동시에 일본 유권자가 정권을 선택하는 제49차 중의원 선거(총선)의 막이 올랐다.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총리는 후쿠시마(福島)를 시작으로 당일치기 지방 유세를 계속하다가 투·개표일 닷새를 앞두고 수도권인 이바라키(茨城)현을 거쳐 마침내 격전지인 도쿄에서도 유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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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26일 저녁 도쿄도(都) JR 다치카와역 주변 도로에서 유세차량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 유세 첫날에 기시다 총리가 그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찾아간 곳이 다치카와시였다.




다치카와가 속한 도쿄 제21선거구는 자민당이 공천하고 연립여당 공명당이 추천한 오다와라 기요시((小田原潔) 후보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공산당 등 다른 야당의 지원을 받는 오카와라 마사코(大河原雅子) 후보, 그리고 제3당인 일본유신회의 다케다 미쓰아키(竹田光明) 후보와 3파전을 벌이는 곳이다.

지역구에서 낙선한 뒤 부활 당선한 비례대표를 포함해 중의원 3선 경력을 쌓은 오다와라 후보는 기시다 총리가 외무상 시절에 외무성 정무관으로 함께 일했다.

현 기시다 내각에선 외무성 부대신으로 중용됐을 정도로 기시다 총리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현 판세로는 입헌민주당의 오카와라 후보에 다소 밀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도쿄 유세 첫날에 다치카와시로 달려가 목소리를 높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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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JR다치카와역 북쪽 출구 앞에 설치된 도쿄 제21선거구 총선 출마 후보 안내 게시판.

기시다의 전임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자민당 총재 자리에서 사실상 축출된 것은 소통 능력 부족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그를 선거의 얼굴로 내세우기 어렵다는 당내 여론 때문이었다.

그가 지원하는 후보는 예외 없이 낙선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였다.

위기에 빠진 자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기시다 총리의 다치카와역 앞 유세 시간은 애초 오후 6시 30분으로 예고됐다.




자민당 홍보요원은 확성기로 약 1시간 전부터 오다와라 후보가 기시다 총리와 함께 연설에 나선다고 반복해서 고지해 다치카와 역사를 빠져나가는 퇴근길 유권자의 발길을 붙잡았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실제로 연단에 나타난 것은 후원회장 등 8명의 지지 연설이 끝난 뒤 마이크를 잡은 후보 본인 연설이 늘어지고 있을 즈음인 오후 7시 15분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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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26일 저녁 JR다치카와역 주변에서 유세하는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는 행인들.

'새 시대를 여러분과 함께'라는 구호가 부착된 유세차량에 오른 연설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자민·공명' 연립정권이 유지될 수 있도록 오다와라 후보와 자민당에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총선이 정권을 선택하는 선거임을 강조하면서 '반대만 하는 야당을 찍어선 안 된다'고 한 찬조 연설자가 주장할 때 '자민당 정권이나 물러나라'는 외침이 들리기도 했지만, 주변의 소음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외무 부(副)대신인 오다와라 후보가 북한 미사일 문제 등에 확실하게 대응할 능력을 갖췄다며 지지를 호소하는 찬조 연설자도 있었다.

이에 화답해 오다와라 후보는 이번 총선이 시작된 날의 북한 미사일 발사를 용인할 수 없다고 고함치듯 웅변했다.

일본공산당과 손잡은 입헌민주당이 나라를 제대로 지킬 정치 세력이 아니라는 주장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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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26일 저녁 JR다치카와역 주변에서 유세하는 모습을 행인들이 지켜보고 있다.

오다와라 후보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기시다 총리가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로 "내각총리대신, 자민당 총재 기시다 후미오"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연설을 시작하자 역 앞 차도를 중심으로 차려진 유세장 주변에는 길 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면서 군중이 눈에 띄게 불어났다.

그가 연설하는 약 17분간 유세장 주변은 수백 명의 일반 군중에 자민당원, 경비경찰, 경호원 등이 뒤섞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코로나19 대책, 경제정책 등을 중심으로 자민당의 공개된 공약을 나열하듯 언급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선 2차 접종률이 마침내 70%에 달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 높아지는 상황이 됐다며 자민당 정권이 이룬 성과임을 강조했다.

유권자들이 귀를 쫑긋 세우는 이슈인 경제 문제에 대해선 "성장의 과실을 일부가 독점하지 않도록 하면서 개개인의 소득, 급여를 올리는 형태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성장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번 선거 기간에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 열도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벌여 불투명한 안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도 목소리를 높인 기시다 총리는 "국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 삶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당인지, 어느 후보인지를 판단해 달라"며 자민당과 오다와라 후보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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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일본공산당과의 선거 협력을 강화했다. 도쿄지역 한 선거구의 입헌민주당 후보 포스터에 '비례대표 표는 공산당에 주자'는 문구가 눈에 띈다.

기시다 총리의 연설 중에 간간이 손뼉 치며 호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군중의 대체적인 반응은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차분한 모습이었다.

'기시다'를 연호하거나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는 등 거물급 인사의 거리 유세에서 기대되는 그런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군중의 열광을 부르지 못한 밋밋한 연설이었다.

기쿠치라고 성(姓)만 밝힌 20대 후반의 남성 회사원은 "기시다 총리가 좀 우유부단하다는 느낌이다. 어필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스가(전 총리)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자민당을 대표할 선거의 얼굴인지는 모르겠다"고 평했다.

그는 2014년, 2017년 중의원 선거 때는 지역구와 정당(비례대표) 투표에서 모두 자민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지지 정당으로 소비세 5%포인트 인하 등 봉급생활자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공약을 많이 내놓은 일본유신회를 골랐다고 했다.

지역구 후보로 누구를 찍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자민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난 것 같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러면서 기시다 총리의 자민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종전보다는 의석수가 적잖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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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산당 지지자들이 26일 오후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거리 유세를 앞두고 같은 장소에서 자민당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다치카와역 북쪽 출구 앞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등장하기 약 3시간 전에 일본공산당 지지자들의 유세전도 펼쳐졌다.

지금의 자민·공명 연립여당으로 미래가 없으니 정권 교체를 위해 투표해 달라는 그들의 외침에 관심을 두는 행인들은 많지 않았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보이긴 했다.

오는 31일 일본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회사원 스즈키(25·여) 씨는 "4년 전에는 대충 투표했는데 이번에는 좀 더 신중하게 찍을 후보와 정당을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취재보조: 무라타 사키코 통신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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