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삼성 통큰 투자에도…美 "반도체 승자는 아시아" 견제

입력 2021/11/25 17:43
수정 2021/11/26 07:49
올해 반도체 투자 1460억弗
미국 비중은 14%에 불과해

"아시아 국가에 칩 생산 의존
국가안보 심각하게 위협받아"

美반도체협회 "정부지원 규모
최소 2500억달러 이상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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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공장.

삼성전자가 TSMC·인텔에 이어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는 "반도체 미래의 승자는 아시아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향후 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질 수 있는 대목이다.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24일(현지시간) 국영 방송인 미국의소리(VOA)를 통해 외국 반도체 기업에까지 정보를 요구한 것에 대해 "미국 정부는 공급망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 이유를 파악하려는 것일 뿐"이라면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를 왜 공급받을 수 없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병목 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그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며 "기밀 정보를 받더라도 기밀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페르난데스 차관의 발언은 대만 정부와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반발하면서 미국 정부 측 요청에 응하지 않은 가운데 나왔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외국 반도체 기업을 압박하는 까닭은 반도체 생산이 안보와 직결된다고 판단해서다. 데일 가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이제 더 많은 국가가 아시아의 칩 공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기업들은 464억달러에 달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약 절반을 차지한다"면서도 "하지만 대표적인 퀄컴이나 엔비디아는 반도체를 직접 만들지 않고 해외에서 아웃소싱(외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생산에서 미국 비중은 여전히 낮다.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발표한 올해 투자액은 약 1460억달러로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약 50% 급증했다. 하지만 투자금액 중 80%는 아시아 몫이며 미국은 14% 남짓이다.


또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생산 중 4분의 3은 한국, 대만, 일본, 중국에서 이뤄진다. 미국은 13% 수준이다. 1990년 전후만 해도 세계 반도체 생산에서 미국이 40%를 차지했지만, 인건비 상승 등으로 해외에 위탁하면서 오늘날 미국 내 반도체 공급 대란을 촉발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투자 유인책을 발표하고 있다. 상원이 미국 반도체법(CHIPS for America Act)의 후속 조치로 칩 제조 시설에 520억달러 규모 보조금을 추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올해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은 하원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또 텍사스주 테일러시는 삼성전자에 총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 세제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기업들은 이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고, TSMC는 애리조나주 공장을 위해 120억달러(약 14조2000억원)를 투자한다. 인텔 역시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약 24조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시아에 대한 투자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TSMC는 소니와 손잡고 일본 남부에 70억달러 규모 공장을 건설할 방침이고, 중국 SMIC는 90억달러를 투자해 상하이 인근에 새 칩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또 WSJ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2030년까지 약 4500억달러를 반도체에 투자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향후 10년간 새롭게 추가되는 세계 반도체 생산 규모에서 미국 비중은 고작 6%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정부가 앞장서 더 큰 유인책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크 그래너핸 아이디얼세미컨덕터 대표는 "520억달러 지원은 3나노 규모 2개 공장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자금에 불과하다"면서 "미국이 기술 혁신의 세계적인 선도자가 되려고 한다면 최소 2500억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주요 생산국이 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공장 운영 비용 면에서 미국은 한국과 대만에 비해 30% 이상 높고 중국보다는 최대 50% 높다.

앞서 모리스 창 TSMC 회장은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대만보다 비싸다"면서 "수천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도 공급망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비용만 더 높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 = 이상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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