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책을 읽어주지 않는다고요?…아이에게 죄를 짓는 일이에요

입력 2021/11/29 17:23
수정 2021/11/29 17:26
유네스코 한국 컨퍼런스 참여
라나 다자니 타그히르 대표


요르단서 시작한 낭독모임
'위 러브 리딩' 운동
전세계 52개국으로 전파
'영향력있는 아랍여성' 12위

"책 읽어줄때 아이는 잠재력
어른은 자신감·리더십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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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다자니 대표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사진 제공 = 라나 다자니]

낭독 바람이 분다. 4시간30분 동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천천히 낭독하는 영상(유튜버 '따듯한 목소리 현준') 조회수가 211만회, 신은경 전 아나운서가 읽는 6시간짜리 성경 낭독 영상 조회수가 113만회씩 나온다. '밀리의서재' '윌라' 등 오디오북도 꾸준한 인기다. 시각과 청각을 매료해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낭독의 힘 때문이다.

낭독의 숨은 힘을 일찌감치 알아채 세계 52개국에 '낭독 운동'을 전파한 라나 다자니 타그히르 대표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자니 대표는 30일과 다음달 1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최하는 '2021 브릿지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한다.

다자니 대표는 2010년 요르단 암만에서 비영리단체 '타그히르'를 설립하고 낭독 프로그램 '위러브리딩(WLR)'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동네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다자니 대표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며 "책과 사랑에 빠진 아이들은 내면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책을 읽어주는 어른들은 자신감과 리더십을 되찾는다"고 낭독의 힘을 강조했다.

시작은 소박했다. 분자생물학자인 다자니 대표는 미국 유학 중 아이를 자주 공공도서관에 데려다줬다. 미국 전역에는 9000여 개 공공도서관이 있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하지만 요르단에 돌아와 보니 이곳에는 공공도서관이 전무했다. 아이들은 학습용 책은 읽어도 읽는 재미를 몰랐다. 미국 아이들이 1년에 책 11권을 읽을 때 아랍권 아이들은 책을 1년에 채 반 권도 읽지 않았다. 다자니 대표는 모스크를 빌려 다른 아이들에게도 낭독해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는 1시간 동안 2~3개 이야기를 동화구연하듯 생생하게 읽어줬다. 읽은 책은 아이들에게 선물로 들려 보냈다.

토요일 아침 부모에게 떠밀려 억지로 왔던 아이들은 2주가 지나자 책을 들으러 가자며 부모 손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4~10세 아이 25명으로 시작한 읽기 모임이 전 세계로 퍼져갔다. 요르단에만 330여 개 공공도서관이 생겼다.


다자니 대표는 "책을 낭독하고 이를 듣는 행위는 수천 년간 진화를 거쳐 갖게 된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은 '더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을 깨우쳐 읽는 즐거움, 배우는 기쁨을 아는 성인으로 자라난다는 설명이다.

이 운동이 전 세계에 뿌리내리게 된 데는 또 하나의 비결이 있다. 타그히르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료로 낭독 훈련을 제공했다. 대신 그들도 다음 자원봉사자에 지식을 전수하는 조건이다.

낭독은 듣는 사람은 물론 읽는 사람 삶도 바꿨다. 시리아 내전으로 16세에 요르단 자트리 난민캠프에 오게 된 소녀 아스마는 학업 중단에 유산까지 겹쳐 우울증을 앓았다. 그는 WLR 낭독 훈련을 받으면서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아스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잡지에 연재했다. 2년 후에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교사로 일하게 됐고 지금은 난민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직접 조직할 정도로 성장했다. 다자니 대표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그는 2017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상했다. 모국어 발전과 보급에 기여한 공로다. 그는 "낭독 봉사자를 100명 이상 더 훈련할 수 있게 됐다"며 "WLR 프로그램이 어떻게 자존감과 리더십을 키워줬는지, 아이들의 장기적인 학습능력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에 대한 연구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자니 대표는 본업인 분자생물학 연구에서도 논문 여러 편을 발표했다. 그는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교육전문가로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2015년에는 현지 매체가 꼽은 아랍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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