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中은 美상장 막고 美는 中기업 퇴출…'빅테크 규제' 주도권 싸움

입력 2021/12/03 17:34
수정 2021/12/03 22:20
디디추싱 美서 반년만에 상폐
금융시장에 또 '차이나 리스크'
홍콩증시 간다지만 상장 불투명

美규제당국도 회계기준 강화
中정부 통제받는지 공개 요구
"美서 200여개 中기업 퇴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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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디디추싱의 뉴욕 증시 상장폐지 결정으로 세계 금융시장에 '차이나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로 주목받았던 앤트그룹의 홍콩·상하이 증시 동시 상장이 좌초된 이후 중국의 잇단 빅테크 규제로 벌어졌던 전 세계 자본시장 혼란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실제 중국 기술 기업이 대거 상장된 홍콩 항셍테크지수는 이날 디디추싱의 상장폐지 발표에 1.53% 하락 마감했다. 장중 한때 알리바바가 5.3%, 음식 배달 서비스 업체 메이퇀은 4.8%, 인터넷 기업 텐센트는 3.2%까지 하락하는 등 대형 기술 기업 주가는 일제히 약세를 나타냈다. 일본 소프트뱅크 주가도 이날 한때 2.66% 급락했다.


팩트셋에 따르면 소프트뱅크와 미국 차량 공유 기업 우버는 디디추싱 전체 지분의 30%를 소유하고 있다. 특히 미국 당국도 최근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는 중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미·중 금융시장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더욱 빨라지는 모양새다.

일단 중국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은 당분간 보기 힘들 전망이다. 이른바 '디디추싱 효과'다. 결국 중국 당국에 굴복한 디디추싱 사례가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하는 다른 중국 기업들에 확실한 교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지난 6월 30일 디디추싱이 뉴욕 증시에 상장한 직후부터 집요하게 디디추싱에 상장폐지 압력을 넣어왔다. 디디추싱의 뉴욕 증시 상장 직후 이 회사를 상대로 인터넷 안보심사를 개시하고 디디추싱 관련 앱의 신규 다운로드도 금지했다. 또 중국 당국은 회원을 100만명 이상 가진 자국 인터넷 기업의 해외 상장 때 인터넷 안보심사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외신에서는 중국 당국이 디디추싱을 국유화하려고 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에런 코스텔로 케임브리지어소시에이츠 아시아 지역 대표도 "중국이 더 이상 기술 기업이 미국 시장에 상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같다"며 "따라서 미국에 상장된 거의 모든 기술 회사가 홍콩이나 중국 본토에 다시 상장할 것이라는 게 우리의 견해"라고 CNBC에 밝혔다.

대신 중국 당국은 자국 기업들에 자신들이 확실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홍콩이나 본토 증시에 상장하라고 유도하고 있다.

실제 이날 디디추싱도 홍콩 증시를 대안으로 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디디추싱의 홍콩 증시 상장도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디디추싱의 전체 차량 호출 사업 중 20~30%만이 중국 내 운영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운영 요건 미달이 디디추싱이 홍콩 증시에 상장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디디추싱의 발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감찰 조사를 거부하는 중국 기업을 상장폐지시킬 수 있는 '외국기업문책법(HFCAA)'의 세부 규칙을 확정한 지 하루도 안 돼 나왔다.

SEC는 2일(현지시간)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외국기업문책법 시행을 위한 세부 규칙을 발표했다. 먼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은 앞으로 중국 정부가 소유하거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 연례 보고서에 △정부 기관이 소유한 주식의 비율 △정부 기관과 기업의 재정적 이해관계 여부 △이사진으로 등록된 중국 공산당 간부 이름 등을 기재해야 한다. 또한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감찰 조사를 3년 연속 거부하는 중국 기업을 상장폐지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외국기업문책법은 증시에 상장된 모든 외국 기업에 적용되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외국기업문책법은 지난해 회계 부정으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수조 원대 손해를 끼친 중국 루이싱커피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미국에서 증권을 발행하고 싶은 외국 회사가 있다면 PCAOB의 감찰 대상이 돼야 한다"며 "50개국 이상이 PCAOB의 회계 조사에 협력해왔으나 역사적으로 중국과 홍콩 두 곳만 조사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이 규칙으로 미국 증시에서 200개가 넘는 기업이 퇴출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기업 89개를 추종하는 나스닥 골든 드래건 차이나 인덱스는 이날 2.09% 하락했다. 중국 중심의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는 크레인셰어스의 브렌던 어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 기업들은 인질로 잡혀 있으므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불행히도 정치적인 문제가 됐고, 중국 규제 당국은 중국 기업이 PCAOB에 감사 자료를 제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어헌 CIO는 "이 문제는 규제기관을 초월해 무역 대표단 선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며 "패자는 결국 이들 기업의 투자자들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 = 신혜림 기자 / 베이징 = 손일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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