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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명함이 사라지면 존재가 사라지는 사람:삶의 의미(1)

김인수 기자
입력 2020.05.21 10:10   수정 2020.05.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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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이다. 정신과 의사인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교수(기업정신건강연구소장)의 강의를 들었다. 신 교수는 명함이 사라지면 지워지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잠깐 했다. 그날 하루 그의 얘기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신 교수에게 상담받는 이들 중에는 대기업 경영자나 고위 임원 출신들이 꽤 있다고 했다. 한때 사회에서 한가락 했던 그들도 퇴직으로 명함을 잃고 나면 삶의 허무와 허탈함에 시달린다고 했다.

나도 명함을 잃을 나이가 점점 가까워져서일까? 신 교수의 말이 가슴 깊은 곳에 와닿았다. 내가 명함을 잃는다면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다. 명함이 사라지면 내 존재 자체가 지워질 것만 같다.

# 인간은 사이 존재

인간은 '사이 존재'라고 한다. 만약 나와 당신이 아무 ‘사이’가 아니라면,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신 역시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 내가 이 세상 누구와도 어떤 사이가 아니라면, 나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절대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명함이 사라지면, 내가 맺은 수많은 '사이'가 사라진다.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 회사 동료 사이, 거래처 파트너 사이 등이 없어진다. 그들에게 나는 한 명의 벌거벗은 인간일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이 내게 인간적 애정을 갖고 있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발길에 부딪히는 작은 돌멩이 하나보다 못할 수 있다.

명함에 대기업 대표나 임원 직함을 찍고 다니며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라고 다를 바 없다.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그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던 부하 직원과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이제 그는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가 된다. 어쩌면 휴대폰에서 연락처를 지우고, 카카오톡에서 차단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만 남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경우를 몇 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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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퇴직 등으로 명함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허탈과 허무에 빠진다. <출처=Image by Niek Verlaan from Pixabay> # 회사가 준 힘과 이익으로 맺은 사이

명함에 적힌 직함으로 맺어진 사이는 회사가 준 힘(권력)과 이익에 기반한다. 최고경영자나 임원은 부하 직원의 승진이나 좌천, 보너스 액수를 결정할 힘을 갖고 있다. 그러니 부하 직원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예스맨이 된다. 임원은 지시하고, 부하는 이행하는 '지시자-이행자’ 사이가 된다.

부하 직원이 ‘지시-이행’의 사이를 받아들이는 까닭은 그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상사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야 승진이나 보너스 산정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다. 상사의 지시에 토를 달고 이의를 제기할 경우 자칫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명함이 지워지면 회사가 만들어준 힘과 이익의 관계 역시 사라진다. 임원은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고 강요할 힘을 잃는다. 부하 직원이 그 지시를 이행해 얻을 이익도 없게 된다. 이제 두 사람 사이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회사에서 맺은 인연이 명함이 사라진 뒤에도 의미 있는 '사이'로 남기를 상사들은 기대한다. 상사인 당신이 부하 직원과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척도가 하나 있다. 부하 직원이 당신 앞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느냐 여부다. 부하 직원이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고 자기 의견을 밝히는 게 위험한 짓이라고 느낀다면 그와 당신은 권력관계다. 그 권력은 명함이 없어지면 사라진다. 그 관계 역시 사라진다. 하지만 부하 직원이 당신을 반대할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당신과 그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이는 명함이 없어져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니 두려움을 무기로 부하 직원을 조종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닐 때, 당신은 그에게 의미 없는 존재가 된다.

# 내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내 존재가 명함에 의지하고 있다면, 내 존재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그 명함에 적힌 직위를 줬던 조직이나 그 조직의 권력자가 내 존재의 주인인 셈이다. 그 조직이 내게 명함을 줌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주었고, 이제 그 명함을 빼앗음으로써 내 존재의 의미를 박탈하려고 한다.


조직이 내 삶의 주인이다.

실제로 우리는 아침 일찍 회사에 들어가 해 질 무렵 회사에서 나온다. 그동안 우리의 시간과 노동은 조직이 소유한다. 우리 노동의 결과물 역시 조직에 귀속된다. 신발 장인이 아무리 열심히 신발을 만든다고 해도 그 신발의 소유주는 신발 회사다.

우리는 조직에 자신의 소유권을 내어준 대가로 명함을 받는다. 그 명함에 적힌 직위에 부여된 힘을 얻는다. 급여도 받는다. 그 힘과 돈으로 우리는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 등등의 관계를 맺는다. 생계를 잇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조직이 더는 내 주인 노릇을 하기 싫다고 한다. 명함을 거둬들이고는 네 마음대로 살라고 한다. 이제 드디어 내 몸과 마음은 온전히 내 소유가 된다. 하루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써서 내 몸과 마음으로 무엇 하나 의미 있는 걸 만들 힘이 내게는 없는 거 같다. 남에게 무언가 가치 있는 걸 줄 힘도 없는 거 같다.


이제 내 존재가 참을 수 없게 가볍게 느껴진다. 이는 오랫동안 나 자신의 주인으로 살지 못한 대가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느새 주인으로 사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가?

# 명함이 사라지는 진실의 순간

흔히들 죽음을 진실의 순간이라고 한다. 그 순간에 내 삶에 무엇이 진짜 중요하고 무엇이 부차적인지가 드러난다고 한다. 그래서 현인들은 죽음의 순간을 맞았다고 미리 상상해보라고 조언한다. 내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미리 파악해 지금 삶을 의미 있게 살라고 가르친다. 남의 기대대로 사느라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충고한다.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역시 진실의 순간인 거 같다. 순전히 내 힘과 능력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남에게 줄 수 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럴 힘과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과 의미 있는 ‘사이’를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게 바로 지금 명함을 들고 다니는 모든 직장인들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명함이 없어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나는 그런 앞날에 대응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생각해보자. 그 준비를 하면서 하루를 산다면 그 하루는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인 삶은 더욱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다. 미국의 수필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이런 말을 했다. "죽을 때가 됐을 때,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말자." 마찬가지다. "명함이 사라졌을 때, 나 자신의 주인으로 산 적이 없다는 걸 발견하지 말자."

[김인수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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