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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 헤세는 텃밭에서 인생을 깨달았다

허연 기자
입력 2020.07.04 00:08   수정 2020.07.0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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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1877~1962)

"인간만이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난 듯 착각을 한다"
정원 가꾸면서 영적 깨달음 얻은 독일 출신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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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7년.

마흔 살의 헤르만 헤세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조국 독일을 버린 것이다. 평화주의자였던 헤세는 전쟁을 일으킨 조국을 더 이상 인정하기 힘들었다.

스위스 몬타뇰라에 정착한 헤세는 그 순간부터 평생을 고향 잃은 방랑자이자 영적 가치를 탐구하는 수행자로 살아간다. 수행자 헤세에게 삶의 목표는 즐거움이 아니었다. 그는 꽤나 유명해진 다음에도 직책을 맡거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거나 풍족하게 먹거나 잘 차려입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즐거움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정원 가꾸기였다.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로지 밤에만 글을 쓸 정도로 정원 일을 아꼈다. 1962년 뇌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50년을 정원에 매달린 그는 정원의 달인이었다고 전한다. 정원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오른 헤세는 관련된 글도 많이 남겼다.


국내에도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등이 출간돼 있다.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부지런함과 노동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성급함이나 걱정 따위는 없다. 경작의 밑바탕에는 경건함이 있고 대지, 물, 공기,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생명력에 대한 확신이 있다."

땅에 무엇인가를 키우고 가꾼다는 것은 삶의 본질에 가까이 가는 일이자 겸손해지는 일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은 씨앗값도 안 나오는 경작에 몰두한다. 그들에게 땅을 경작하는 것은 씨앗값을 버는 일이 아니다. 사는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자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분석마저 뛰어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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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노인이 된 헤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텃밭에 서 있는 노벨상 작가 헤세를 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남겼다.

"헤세의 정원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상류사회 인간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오직 필요한 것은 모양이 다 망가진 창이 넓은 밀짚모자뿐이었다.


"

널리 알려진 것처럼 헤세는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선교사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를 다닌 그에게는 기독교 영성이 자리 잡고 있었고, 성장한 뒤에는 불교를 비롯한 동양의 신비주의에도 깊이 천착했다. 헤세가 정원에 대해 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불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내 작은 정원에 봄이 온 것을 기뻐하면서 콩과 샐러드, 레세다, 겨자 따위의 씨앗을 뿌린다. 그러고는 먼저 살다 죽어간 식물들의 잔해를 거름으로 준다. 그러면서 죽어간 것들을 돌이켜 생각하고, 앞으로 피어날 식물들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본다. 이 질서 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사실로 받아들인다."

얼마나 불교적인가. 헤세가 1922년 펴낸 소설 '싯타르타'는 텃밭에서 구상한 것이었다.

헤세는 "인간만이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난 것처럼 살아간다"고 개탄했다. 그는 생의 덧없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이 뭔가 특별하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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