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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 "책을 불태우자, 재가 될때까지 불태우자…"

허연 기자
입력 2020.08.0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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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 (1920~2012)

"인간이 없다면 우주도 우주론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인간의 얼굴을 한 SF소설 쓴 美 과학소설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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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난 레이 브래드버리는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못했지만 타고난 글재주가 있었다. 그는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 LA로 이주해 신문 배달 등을 전전하면서 꾸준히 소설을 쓰고 발표했다. 하지만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서른세 살이 되던 해인 1953년 브래드버리는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UCLA 도서관 지하에서 30분에 10센트를 내고 타자기를 빌려 소설을 쓴다. 이렇게 탄생한 소설이 '화씨 451'이다. 화씨 451은 종이에 불이 붙는 온도를 의미한다.

브래드버리는 당시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라디오나 TV 같은 뉴미디어에 취해 읽고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사람들을 보면서 '화씨 451'을 구상했다. 소설은 책을 읽는 행위가 범죄가 되는 미래 세계가 배경이다.

주인공은 몬태그라는 소방수(fireman)다. 그런데 미래 사회에서 'fireman'은 '불을 끄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집들이 불연성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불이 날 일이 없다.


그래서 미래 사회의 'fireman'은 '불을 지르는 사람'이다. 소방수가 아닌 방화수인 것이다.

이들이 주로 불태우는 건 책이다. 책이 발견되면 바로 불태워 버리는 게 이들의 임무다. 어떨 때는 책 주인까지 함께 불태우기도 한다. 미래 사회에서는 책을 쓰거나 읽거나 소장하는 건 중대범죄다. 사람들은 통제된 시스템 아래서 똑같은 인간으로 살아간다. 일을 끝낸 사람들을 오로지 커다란 벽면 텔레비전과 '귀마개 라디오'라고 불리는 도구에 몰두한다. 그들은 TV 등장인물을 실제 가족과 동등하게 인식한다. 자유 의지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죄악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방화수들의 슬로건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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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는 빈센트 밀레이를, 수요일에는 휘트먼을, 토요일에는 포크너를 재가 될 때까지 불태우자. 그리고 그 재도 불태우자."

그래도 어느 시대에나 저항 세력은 있는 법. 미래 사회에도 몰래 책을 읽거나 유통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책을 암기한다. 책을 통째로 외워서 기억 속에 저장하고 후세에 책의 내용을 전수한다. 인간의 뇌가 도서관이나 서점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소설 중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혹시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싶지 않소? 바로 내가 플라톤의 '국가'라오. 아니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읽고 싶소. 그렇다면 시몬스를 찾아가시오. 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요."

주인공 몬태그는 어느 날 클라리세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 TV 대신 꽃에 대해 이야기하고, 빗물에 대해 말할 줄 아는 소녀다. 몬태그는 소녀를 통해 비밀 책모임에 가담하게 되고 방화서장을 죽인다. 방화수가 저항 세력 주동자가 된 것이다.

브래드버리는 소설에서 시종일관 인간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지구의 멸망이 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공상과학소설가였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소설'을 주장했다. "생각하는 인간이 없다면 우주도 우주론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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