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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 두보는 겨울산에서 반바지를 입고 떨어야 했다

허연 기자
입력 2020.08.08 00:08   수정 2020.08.1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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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712~770)

과거낙방·전란·가난…기구한 삶이 만든 경지
천재성에 기대지 않고 뼈로 시를 완성한 '詩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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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杜甫)의 매력은 '징글징글한 현실성'에 있다. 이백(李白)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 시를 썼다면, 두보는 땅에 발을 딛고 그 속의 인간사를 시로 만들었다.

두보는 시 1470편을 남겼는데 이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건 '곡강(曲江)' '춘망(春望)' 같은 시들이다. 권력이나 삶의 허망함을 노래한 시들인데 두보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두보 시의 백미는 앞서 말했듯 '현실성'에 있기 때문이다. 두보가 한 시절 생계 때문에 약초꾼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보 시 중에 약초꾼 시절에 쓴 것이 있다.


"하얀 줄기야! 제발 내 눈에 띄어다오. 몹시 탐이 나는구나 / 너한테 의지하여 내 목숨을 이어간다 / 하지만 둥굴레 새싹은 아직 돋아나지 않았고 산속에는 눈만 깊은데 / 짧은 바지 아무리 잡아 내려도 무릎이 드러나네."

장에 내다 팔려고 둥굴레를 캐러 갔는데 아직 싹이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전히 눈이 남아 있는 추운 산에서 짧은 바지를 입고 덜덜 떨고 서 있는 두보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가엾고 징글징글한가.

두보는 기구했다. 그래서일까. 두보 시에는 벼랑으로 몰린 자의 한탄과 자포자기가 드러난다. 그 한탄이 발전해 두보의 경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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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을 비롯한 당송 시대 다른 시인들의 시는 다분히 현실도피적이다. 다 좋은데 삶이 빠져 있다. 하지만 두보 시에는 눅진한 삶이 담겨 있다.

"아침에 부잣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 해 질 녘에 살찐 말의 고삐를 붙잡고 / 말 발굽에서 나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아와 / 마시다 남은 술과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얻어먹는다 / 가는 곳마다 슬프고 가슴 쓰린 생활뿐이구나."

이런 장면은 사실 8세기 중국 서민들의 보통 모습이었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은 힘겹고 고달팠다. 두보의 시는 과장이나 엄살이 아닌 현실이었다. 두보는 허난성의 유복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집안은 급격하게 몰락했고, 두보 자신은 빼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과거에 낙방한다. 관직을 얻지 못한 그는 온갖 잡일로 생계를 꾸리지만 어린 아들이 굶어 죽을 정도의 극심한 가난에 내몰린다. 44세 무렵 간신히 지방 관직을 얻었지만 이조차 안사의 난 등 평지풍파에 휘말려 변변치 않게 끝이 난다. 두보는 58세로 객사할 때까지 한 번도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천재성을 발휘하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 무거웠다. 두보의 시는 천재성에 기대지 않고 한 문장 한 문장 뼈로 써내려간 것들이다.

송나라 때 문필가 왕안석은 "두보는 슬픔과 기쁨, 막힘과 통함, 밖으로 발함과 안으로 거두어들임, 아래로 내리누름과 위로 올라감, 빠름과 느림, 종횡 등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보는 삶을 시로 완성한 '시의 순교자'다. 체면이나 도피, 혹은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을 시로 쓴 유랑시인이었다.


두보 시 중에 '한탄스럽다(可嘆)'는 제목의 시가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흰옷 같더니 / 갑자기 변했네, 강아지 모양으로 / 세상사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무쌍한 것/ 인생만사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없겠네."

산전수전의 경지가 읽히는 시편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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