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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이상훈의 터무니찾기] 내로남불·짬짜미에 상 주는 정치

이상훈 기자
입력 2020.09.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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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팀워크다. 11명이나 되는 선수가 한 팀으로 뛰는 데다 경기장도 넓어 자칫 제각각일 수 있기 때문에 짜임새가 생명이다. 수비수 네다섯이 한 줄로 그은 듯 오프사이드 라인을 만들어 공격을 무력화하는 모습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한 선수가 저 멀리 공을 차 보내고, 어느새인가 다른 선수가 그곳에 달려가 있다.

영국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가 얼마 전 한 경기에서 네 골이나 넣었다. 감탄에 감탄을 했다. 그런데 축구에 눈이 트인 사람들은 손흥민과 함께 동료 해리 케인을 극찬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골잡이다. 한마디로 에이스. 손흥민이 네 골을 넣는 데 결정적인 패스를 했다. 케인이 공을 차 보내면 그곳으로 손흥민이 달려가 골을 넣는 장면이 반복됐다. 경기 후 두 선수 평점은 모두 10점 만점. BBC는 누구를 MOM(경기 최우수 선수)으로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내놨다.


손흥민과 케인의 엄청난 공격력에는 보상 시스템이 작동한다. 일종의 룰이 있고 그 룰이 보상을 보장한다. 케인은 최전방 공격수다. 어찌 골 욕심이 없을까. 하지만 축구에는 득점왕과 함께 도움왕도 있다. 최종적으로는 득점과 도움의 숫자를 합쳐서 한 선수의 공격포인트가 산정된다. 도움의 가치를 인정하는 룰이 선수에게 보상을 하는 거다. 무리하게 골을 넣는 것보다 더 적합한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하는 게 낫게 만드는 룰이다. 그러니 이 모습은 양보가 아니고 윈윈이다. 손흥민의 네 골은 고스란히 케인의 도움 네 개로 기록됐다.

축구 얘기를 길게 한 건 정치권 현실이 답답해서다. 우리 정치가 고질적으로 욕을 먹는 지점이 '내로남불' '진영논리'다. 그 결과는 쟁점마다 밀리면 끝이라는 식의 대응이다.

요즘 여야에서 제각각 불거진 의혹들을 보자. 만약 사안 자체만 놓고 평가하라고 한다면 아닌 건 아니라고, 맞는 건 맞는다고 했을 거다. 객관적으로 봤다면 말이다.


그러나 사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부각되는 순간 '내로남불'이 작동한다. 뭐가 문제냐, 그 정도는 약과 아니냐, 그러는 당신들은 당당하냐, 이런 대응으로 간다. 똑같은 일이 상대 진영에서 불거졌다면 그랬을까.

이제 예산심사 계절이 다가온다. 그때마다 나오는 비판이 쪽지 예산, 짬짜미 예산이다. 나라 전체의 이익보다는 내 지역구 몫을 챙기는 거다. 여기서만큼은 여야가 일심동체. 각별함을 넘어 무리하게 챙기기도 한다. 안 챙기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문제는 내로남불과 짬짜미 예산 같은 것이 어느덧 보상을 가져다주는 룰이 됐다는 거다. 이 룰을 충실히 따르는 의원은 보상을 받는다. 내 편을 옹호하면 할수록 강성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위상이 높아진다. 지역구를 크게 챙기면 챙길수록 다음 총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룰을 바꿔야 한다. 내로남불과 지역구 챙기기가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의원이 보상을 받도록, 지역구보다는 나라 전체 예산을 먼저 챙기는 의원이 실익을 얻도록 룰이 달라져야 한다.

그게 되겠냐고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시간이 걸릴 거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차기 지도자 중에 이런 생각을 가져 인식과 룰을 바꾸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아니라면 차차기 중에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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